책이라는 개념으로 치환된 진리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by 최소여의 모험
이 세상 만물은 책이며 그림이며 또 거울이거니 _ p.50

나 같은 독자를 일컬어 ‘출판업계의 빛과 소금’이라고 한다.

책을 사들이는 속도가 읽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고, 책장은 늘 포화상태다. 방 한 구석에는 아직 펼쳐보지도 못한 책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책을 소유하는 것만으로는, 실제로 그 책이 품은 지식과 진리가 내 것이 되지 않음을 알면서도,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책을 모으는 걸까.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속 장서관은 거대한 미궁이다.

설계도는 수세기 동안 은밀히 감춰졌고, 책의 대출여부를 결정하는 권한도 오직 사서계 수도사에게만 있다. 책의 위치와 내용을 아는 자 역시 그들뿐이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책 만큼은 빌려주지 않는 (차라리 새 책을 사서 선물할 망정!) 나에게, 이 사서계 수도사의 고집과 집착은 너무나 익숙하게 다가온다.


그러니 장서관이 불길에 휩싸이는 장면에서 얼마나 애가 타던지. 책을 구해내려 애쓰는 윌리엄을 보며, 문득 책은 단순한 지식의 저장소가 아님을 깨닫는다. “책”은 인간의 힘으로 도달할 수 없는 무한한 미로 속의 진리라는 개념을 물질로 치환한 매개체다. 우리가 책을 소유하려는 행위의 본질은, 진리 자체에 가까워지고 싶다는 동경과 염원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러니 <장미의 이름> 속 연쇄 살인 사건, 그리고 그 모든 죽음의 원인과 단서가 말 그대로 “책”속에 있었다는 사실은 여운 깊은 아이러니를 품고 있는 것이다. 책은 진리를 향한 갈망이자, 동시에 파멸로 이끄는 위험한 독이기도 하다. 에코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작가 스스로 정성을 다해 묘사했던 미궁 같은 장서관을 불태워 버린다. 윌리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 권의 책도 구해내지 못하고 잿더미가 되어 날리는 장면은, 마치 모든 의미가 결국 흩날리고 사라져 “장미의 이름, 그 덧없는 이름뿐”으로 남는다는 선언 같았다.

장미는 모든 것- 진리, 비밀, 욕망, 사랑- 이면서 또 동시에 아무것도 아닌 것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수도사들이 좇았던 그 금서처럼, 내 책장에 빽빽이 꽂힌 책들도 언젠가 나를 파멸시킬지 모르겠다. 파산에 이르거나, 끝내 읽지 못한 책들을 보며 죄책감에 잠식당하거나, 뭐 책장 끝에 독이 묻어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해서 나만의 장서관을 채워갈 것이다. 읽지 않은 책, 이해하지 못할 책, 그리고 언젠가 펼칠지도 모를 책까지. 어쩌겠는가? 진리란 결국,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무한한 책장 속에 있는 거니까.


그러니, 이 세상 출판사의 빛이자 소금들이여, 오늘도 밖으로 나가 새로운 책을,

우리들의 장미를 발견해내자.


내 서재는 내가 읽은 책이 아니라, 내가 아직 읽지 않은 책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이 진짜 도서관이다.
_ 움베르토 에코


벽돌책 2권 세트인 <장미의 이름>을 읽기가 조금 버거우시다면,

숀코네리 주연의 영화를 먼저 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영화는 조금 더 '살인사건'에 포커싱 되어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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