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티드 하우스 러브스토리

카를로스 푸엔테스, <아우라>

by 최소여의 모험
“이 집은 우리에게 소중한 추억이 가득한 곳이에요. 제가 죽어야 저를 여기서 끄집어 낼 수 있겠죠.” _ 28p

어둡고 눅눅하며, 시공간이 뒤틀린 듯 모든 것이 모호한 콘수엘로 부인의 집. 발을 들이는 순간 나는 강한 기시감을 느낀다.

분명해, 공포영화 동호회의 열혈 멤버인 나의 촉에 의하면, 이 낯선 남미소설 <아우라>는 공포다.


공포영화에는 이런 설정이 종종 등장한다. 누군가의 분노, 슬픔, 집착 혹은 사랑이 오랜 세월 켜켜이 쌓여 현실을 왜곡하고, 그 공간이 저주의 그릇”이 되는 이야기. ‘링’의 우물, ‘주온’이나 '힐하우의 유령' 속 집처럼 말이지.

01.34171092.1.jpg 넷플릭스 시리즈 <힐 하우스의 유령> - 꽤 재미있게 본 시리즈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빛조차 힘을 잃고, 바깥과 고립되어 시간이 흐려지는 공간. 지금이 밤인지 낮인지 헷갈리고, 내 앞의 존재가 누구인지조차 알 수 없는 공간. 누구든 발을 들이면 죽기 전까지는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저주의 장소. 바로 콘수엘로 부인의 집이다. 그리고 그 그늘진 저주의 집에서 유일하게 생명력을 발하는 존재가 있는데, 바로 이 공포소설의 히로인, 아우라다.

노파가 아우라에게 무언가 비밀스러운 힘을 행사하는게 아닐까 생각해보자. 그래, 그 소녀. 녹색 옷을 입은 너의 아름다운 아우라가 이 낡고 그늘진 집에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갇혀살 순 없는 거야. _35p


우리는 젊고 아름다운 아우라와 사랑에 빠지는 동시에, 늙어 쪼그라진 콘수엘로와도 시간을 보낸다. 점점 흐려지는 두 사람의 경계는 천천히 피아식별이 불가한 상태로 이끌어 우리의 감각을 마비시킨다. 푸엔테스는 끝까지 그것이 환영인지 실제인지 명확히 하지 않는다. 그 모호함 속에서 아우라는 우리 곁에 계속 남는다


콘수엘로 부인의 남편인 장군이 생전에 남긴 회고록에서, 한 때는 젊고 아름다웠을 콘수엘로에게 바친 편지를 발견한다. 그러나 나에게 그것은 단순한 연서가 아니다. 사랑의 언어로 쓰였으나, 실은 그녀를 100년째 봉인해 버린 녹색의 사슬이다. 사랑과 집착이 뒤섞여 ‘영원히 아름다운 존재’를 강요하는 집요하고 서늘한 저주.

“콘수엘로의 녹색 눈. 내 어린 인형, 녹색 눈을 가진 내 어린 인형. 100년이 지나도록 항상 녹색 옷을 입고 아름다운 그녀” _ 41p

이제 우리는 알게 된다. 이 집은 장군과 콘수엘로의 욕망과 슬픔, 그리고 하염없이 흘러가는 시간이 만들어 낸 기억의 침전물이자 저주의 그릇이라는 사실을. 이 녹색의 사랑은 부패하지 않는 기억이자, 끝없이 반복되는 서사로서 사랑의 이름으로 아우라를 옭아매는 저주이며 당신을 미혹하는 ‘헌티드 러브’의 화신이다.

아우라는 장군의 사랑과 집착이 만들어 낸, 콘수엘로의 젊음을 재현하는 녹색의 형상일 뿐인가.


문득 생각한다. 그렇지 않은 사랑에 대한 기억이 있을까. 우리는 누구나 지난 사랑에서 한없이 순수하고 어린 나를 기억한다. 그 추억 속에서 끝없이 재현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미화되고 꾸며진 아우라일지도 모른다.

상처와 열망, 기대와 후회가 무한히 반복되는 서사 속에서, 기억은 어쩌면 저주일지도 모른다.


그 모호함 속에서 나는 다시 처음의 문장을 떠올린다.

“제가 죽어야 저를 여기서 끄집어 낼 수 있겠죠.”


시공간이 뒤틀린 집, 봉인된 녹색의 저주. '아름다운 존재'에 대한 집착이 아우라의 이름으로 무한히 재현된다. 이것은, 공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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