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삶의 형식은 정말 당신의 것인가.

매켄지 워크, <보도블럭 아래 해변>

by 최소여의 모험

새 해가 밝았다. 2026년 한 해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라는 문장을 삶의 모토로 생각한 적 있었다.

불안하지 않기 위해 하루를 잘게 쪼개 관리 하고, 대신 인생 전체에 대해서는 지나친 기대나 우려를 갖지 않으려는 태도였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이 문장조차 무의미하게 느껴졌다고 해야 할까. 성실하다는 것은 무엇인지, 되는대로 라는 것은 어디까지 허용하는 것인지. 이 둘은 과연 공존할 수 있는 태도일까.


이런 고민 중에 읽게 된 <보도블럭 아래 해변 - 상황주의 인터내셔널의 일상적 나날과 영광의 시간들>.

범상치 않은 표지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 쉽지 않다. 이론서라기엔 불친절하고, 에세이라기엔 지나치게 아카데믹하다. 소설은 더더욱 아니고. 상황주의 인터내셔널이 정확히 어떤 철학을 말하고자 했는지, 그래서 그들이 남긴 영향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손에 잡히지 않는다. 보도블럭 아래 해변 모래알 처럼, 문장 사이로 스르르 빠져나간다.

그러다 문득, 이 읽기 경험 자체가 어쩌면 상황주의자들이 지향했던 삶의 태도와 닮아있다는 생각을 한다. 목적 없이 도시를 걷듯 책을 읽고, 이미 존재하는 개념과 이미지를 비트는데 주저하지 않으며, 이해되지 않음과 실패를 기꺼이 감수하는 미완의 태도. 그들이 맞서 싸운 것은 거대한 체제라기보다, 우리를 구경꾼으로만 남게 만드는 일상의 구조라고 했으니, 그들은 거창한 새해 목표보다도 우리가 하루를 어떻게 쓰는가에 더욱 집중 했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처음 말했던 문장을 다시 생각해본다.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전체는 되는대로"라는 말은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에게는 꽤 설득력있는 생존 전략일테다. 그러나 상황주의자들은 그 '성실' 이라는 것 부터 의심했을 것이다. 그 성실함은 누구의 리듬에 맞춰져 있는가. 매일 같은시간, 정해진 동선으로 출퇴근하며 생산성과 효율을 기준으로 움직이는 하루는, 그들의 눈에 이미 스펙터클 사회에 순응하는 구경꾼의 하루 일 뿐이다.


그렇다고 상황주의자들의 '목적없음'이 체념이나 방임을 의미 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인생전체를 '되는대로' 살아가자는 말 역시 곧이 곧대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상황주의자들은 의도적으로 다른 리듬을 만들어 내려는 시도를 계속 했을 테고, 그런 과정을 통해 보도 블럭 아래 해변을 찾아내고자 했을 것이다.


"우린 이 도시가 지겹다"고 말하는 사람들. 나 역시도 그 반항적이고 일탈적인 문장에 끌리는 편이다. 보도블럭 아래 해변이 정말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누군가는 그 단단해 보이는 표면을 들어 올려보려 했다는 것을 이 책은 기록하고, 익숙한 삶의 태도들을 다시 의심하게 시도하는 책이다.

이 삶의 형식은 정말 당신의 것인지, 묻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겪어 본적없는 1965년 언저리를 살아가던 젊은이들의 마음에 묘한 향수를 느꼈다.

어쩌면 책을 읽는 내내 배경음악으로 들었던 밥 딜런의 음악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https://youtu.be/MGxjIBEZvx0?si=QxtdjlACgXXrhxsu

Bob Dylan - Subterranean Homesick Bl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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