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한번 놀아볼게, 살아볼게

장기자랑 | 이소현

by 최소여의 모험

배우자를 잃은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가 존재하고,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부르는 단어도 존재한다.

하지만 자식을 잃은 부모를 부르는 말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 너무나 두렵고 받아들이기 어려워서 이름을 붙이지 않기로 한 그런 일인 것이다.

_과달루페 네텔, <이네스는 오늘 태어날 거야>


그래서 그 엄마들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늘 지나치게 조심스러웠습니다.

그 조심스러운 마음이 본의 아니게 어떤 거리감 같은 것들을 만들어 내기도 했죠.

즐거울 때 웃고, 슬플 때 우는 나와 같은 ’사람’이 아니라 ‘슬픔’의 의인화로 여기고 있었는지도 몰라요.

그랬기 때문에, 그 엄마들이 연극을 한다고 하니 좀 놀라웠고,

아마도 연극이라는 형태를 빌어, 슬픔과 비통함을 발산하는 무거운 내용일 것이라고 짐작했어요.

연극의 이름은 <장기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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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대신 그 무대에서 한번 놀아볼게

416 가족극단 ‘노란리본’이 올리는 연극 <장기자랑>은 세월호가 나오지 않는 수학여행 이야기입니다.

엄마들은 연극 속 아이들의 역할을 맡았고,

이 간절한 대체현실 속에서 아이들은 무사히 제주도에 도착합니다.


동명의 다큐멘터리 영화 <장기자랑>은 이 연극을 준비하는 엄마들의 시간을 담은 기록입니다.

랩을 좋아했던 영만이를 대신해, 영만이 엄마는 랩을 연습하고,

예진이를 대신해 무대에 오르는 예진이 엄마는 매일 운동을 해요,

더 예쁜 예진이의 모습으로 무대에 서려고요.


아이들을 대신해 제주도 수학여행을 즐기고, 장기자랑 무대에 오르고

아이들의 몫까지 삶을 살아갑니다.


이 무대에 올랐을 엄마들의 마음을 감히 생각해봅니다.

영화 <햄넷>에서 죽은 아들을 위해 희곡 <햄릿>을 써 내려가며 문학의 세계 안에서

아들을 영원히 살려낸 셰익스피어의 마음과 꼭 닮아있습니다.

현실에선 이루지 못한 '당연한 삶'을 예술의 힘으로 완성해 내는 것이죠.

연극이, 영화가 아이들은 무대 위에서, 영상 속에서 계속 살아가겠지요.

또한 그 연극이 아네스를 위로했듯이, 이런 경험과 기록들이 엄마들을 위로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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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속에서 영만이 엄마가 말해요.

누군가는 뭐가 저렇게 신나고 좋을까 할지도 모르겠지만,

내 마음밭에 살고 있는 영만이가 행복하려면, 내가 먼저 행복해야 해요. 더 멋지게 살고 싶어요.


문득문득 찾아오는 슬픔은 여전히 아득하고 거대합니다.

하지만 아프게만 기억하면 지쳐버릴까봐,

엄마들은 더 오래, 더 선명하게 기억하기 위해 기꺼이 멋진 삶을 선택합니다.

슬픔에 매몰되는 대신 삶을 택한 용기있는 엄마들을 온 마음으로 응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식을 잃는 것은 처리할 수도 극복할 수도 없는 슬픔이라 믿습니다.

그런 일이 있고도 계속 살아가는 것이 마치 부당하거나 염치없는 일이라는 듯 말이지요.

하지만 아시나요?

저는 그 어려운 일을 해낸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

_ 과달루페 네텔, <이네스는 오늘 태어날 거야>



함께 추천드려요.

[책] 과달루페 네텔의 <이네스는 오늘 태어날 거야>

작가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딸을 키우는 친구를 보며 이런 이야기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했대요.

여전히 사회적 터부로 여겨지며 고립되는 상황을 바꾸고 싶다는 의지로 쓰인 소설입니다.

단순히 출산에 관한 내용을 넘어, 세상에 존재하는 유대감, 관계, 그리고 가족이 되는 다양한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하는 (Diego Gandara) 매력적인 소설이었어요.


이네스는 오늘 태어날거야.

이네스를 만날 수 있게 너도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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