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나, 조현철 (2023)
셈셈 - 사람은 왜 죽을까?
하은 - 정답! 늙고 병드니까!
하지만, 어떤 죽음은 도저히 정답이 될 수 없는 것 같아요.
늙지도, 병들지도 않은 채 '정답이 아닌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그해 4월의 아이들에게
저는 여전히 아무런 말도 남길 수가 없어요.
그저 기억할 뿐입니다. 기억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이 안타깝지만,
계속 기억하는 것이, 그 애들에게 닥쳐온 그 정답 아닌 죽음에 대한 유일한 저항이라고 믿으면서요.
파괴된 존엄을 회복하는 고집 센 기억
드니 빌뇌브의 영화 <그을린 사랑>을 떠올려 봅니다.
주인공 나왈은 자신의 비극적인 과거를 침묵 속에, 죽음과 함께 묻어둘 수도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끝내 쌍둥이 자식들에게 유언을 남겨 고통스러운 진실의 여정을 떠나게 합니다.
그 지도의 끝에서, 자식들이 마주한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참혹함이었으나,
동시에 그 진실만이 그녀를 '이름 없는 피해자'가 아닌 "나왈 마르완"으로 존재하게 했으니까요.
외부의 폭력으로부터 오염된 개인의 역사를 회복시키는 것은 결국 기억의 힘입니다.
조현철 감독의 <너와 나>를 보면서도 같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왜 계속 세월호 이야기를 하고, 음악을 만들고, 영화를 만드는 걸까요?
세미와 하은이의 하루를 봄결같이 보드랍고 뽀얀 화면에 담아준 감독에게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그 아이들의 서사를 우리 마음속에서 이어가게 해주는 것 같아서요.
세미도 이 영화를 봤다면, 분명히 좋아했을텐데요.
304라는 숫자 뒤의 이름들
이 영화에는 이름이 많이 등장해요.
하은이의 먼저 떠난 강아지 제리, 세미의 앵무새 조이, 길에서 만난 진식이(사실은 똘똘이).
단역으로 지나칠 법한 인물들에게도 모두 이름이 있습니다.
세미와 함께 빙수를 먹던 예진이와 한나, 놀이터의 꼬마 다은이.
세미의 경계 대상인 다애와 미진이, 선영이,지현이.
박정민 배우가 미진이에게 "넌 이름이 뭐니, 그래 미진이"하는 장면에서 눈물이 핑 돌았던 이유는,
우리 모두가 고유한 이름을 가진 존재라는 점을 상기시켰기 때문입니다.
저마다 우주에서 하나 뿐인 태몽을 품고 태어났을,
매일의 사소한 계획이, 취향이, 이름이 있었을 존재를
'세월호 참사 통계 속의 희생자 304명'이라는 말로는 감히 다 안아내지 못할 거예요.
언젠가 기타노 다케시는 말했다.
"5천 명이 죽다는 것을 '5천 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이라고 한데 묶어 말하는 것은 모독이다.
그게 아니라 '한 사람이 죽은 사건이 5천 건 일어났다'가 맞다."
...
나는 비로소 '죽음을 세는 법'을 알게 됐다.
죽음을 셀 줄 아는 것,
그것이야말로 애도의 출발이라는 것도.
_신형철, <인생의 역사>
영화라는 장례식
수학여행 전날, 그 길고 길었던 하루의 끝에서 세미와 하은이가
갈게, 잘가, 진짜갈게, 진짜 잘가를 서로 반복하며 인사를 나누는 장면은
마침 장례식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미 알고 있었으나 더없이 잔인한 그 장면을 보면서 생각해 봤어요.
우리가 끝내, 그 아이들을 진짜 잘 가, 하고 보내 줄 수 있는 때가 과연 올까요?
갑작스러운 상실은 국경을 가리지 않습니다.
미국 내 학교 총기 난사 사건을 다룬
애니메이션 <혹시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과 다큐멘터리 <텅 빈 모든 방>은
어제까지 똑같이 등교했던 아이가 돌아오지 않고, 주인을 잃은 물건들만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풍경을 담고 있습니다.
<너와 나>가 가리키는 슬픔과 정확히 같은 곳을 바라봅니다.
모두가 사라진 세미의 꿈속에서, 앵무새 조이의 날개깃만 바닥에 떨어져 있었던 것처럼,
세상 무엇보다 분명한 흔적으로 존재했으나 지금은 "여기 없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이야기를 계속해야만 합니다.
누군가 이제 그만 하자고, 잊자고 하더라도, 기억할 수 있도록 계속 이야기해야 합니다.
영화의 제목인 <너와 나>는 비단 세미와 하은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닐 테니까요.
그게 전부 살아남은 사람의 기억으로 쓰여 있었다.
지우는 사람이 기록하는 사람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_김홍, <말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