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어린이 유치원 나비반 힌드

최소여의 오늘 본 영화

by 최소여의 모험

힌드의 목소리 | The Voice of Hind Rajab | 카우타르 벤 하니야 | 2025

★★★★★

6살 힌드의 마지막 기도가 닿은 곳에, 이제는 우리의 목소리를 보태야 할 때.


인류가 달을 향해 유인 탐사선을 쏘아 올리고, OTT로 그 탐사를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시대.

스크린 속 압도적인 우주적 체험에 감탄하는 경이로운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인류의 연대와 낙관주의가 승리하는 서사에 열광하면서 말이죠.


하지만 그 찬란한 빛의 반대편,

가자 지구에서는 기본적인 인도주의적 안전망조차 처참하게 부서지는 중입니다.

그 비극은 어린아이들에게도 여지없이, 오히려 더 처절하게 찾아옵니다.


영화 <힌드의 목소리>.

영화라기보다, 어쩌면 우리 시대의 기록 그 자체인 <힌드의 목소리>는

그 지독한 비극을 우리 눈앞에 들이밉니다.


이 작품은 적신월사에 남겨진 6살 아이 힌드의 실제 구조 요청 음성을 그대로 사용합니다.

적신월사 직원들의 역할을 맡은 배우들의 연기는, 연기라기보다,

힌드의 목소리에 반응하고 대응하는, 반사판으로서의 역할에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연기가 기계적이었다라는 말은 아닙니다.

배우의 연기에 관객이 매몰되지 않도록, 그래서 똑바로 이 상황을 직시할 수 있도록 연출한 것이 느껴집니다.

힌드의 목소리 파일은 배우들도 촬영현장에서 처음 들었다고 해요.

대본으로는 숱하게 접해왔을 말들을,

실제 당사자의 목소리로 듣게 되었을 때의 배우들의 감정은 쉬이 상상조차 되지 않습니다.

격해진 감정으로 배우들의 연기가 순간적으로 멈추는 순간들이 있었고,

몇몇 부분은 배우의 목소리 위로, 실제 적신월사 직원들의 목소리를, 혹은 영상을 오버랩했다고 합니다.

가공하지 않은 날 것의 힘, 힌드의 목소리가 온전히 우리들에게 전해지도록 노력한 것이 느껴집니다.


힌드의 목소리가 세상 밖으로 나와 준 덕분에

전쟁, 갈등, 정치, 종교, 체제, 시스템 그 뒤에 사람이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뉴스에서 스치듯 보았던 사망자 수라는 익명의 통계 숫자들도 모두가 이름이 있었음을,

새삼스러울만큼 아프게, 괴로울만큼 절박하게 깨닫게 됩니다.


제네바협약, UN, 적십자(적신월사), 민간인 보호.

최소한의 인권 보호를 위해 국제 사회가 미리 정해둔 약속과 조직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에 따라, 민간인, 특히 어린이, 구급차를 공격하는 것은 명백한 전쟁범죄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구급차를 출동시키지 않는 적신월사의 매니저를 보면서 의아했습니다.

극 중 매니저는, 저보다 전쟁을 더 잘 알고 있었던 거에요.

전쟁이라는 비인간적인, 비이성적인 상황 앞에 약속 같은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을요.

적외선 카메라가 탑재된 탱크가 현장을 계속 돌아다니고, 힌드의 전화도 충분히 도청 가능한 상황.

생존자인 어린 힌드가 홀로 그 차안에 남겨져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몰랐을리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군은 힌드를 미끼로써 남겨둔 채 지켜보고 있었던 걸까요?

어째서 국제사회는 이 전쟁범죄를 방관하고 있는 걸까요?

전쟁은 원래 이런 것일까요?


제가 세상을 얼마나 순진하게 믿어왔는지는 새삼스럽게 깨닫습니다.


한국이라는 비교적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안락한 극장 안에서 이 비극을 목격하며 느끼는

무력감과 부채감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힌드의 목소리를 들어주실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언론의 출입조차 통제된 가자지구에서, 정말 기적처럼 세상으로 나온 힌드의 목소리를 들어주세요.

그것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묵념이자 추도가 될 테니까요.



Ps.

제가 <힌드의 목소리>를 본 지난 주 금요일은 고난 주간의 성금요일이었습니다.

우리 인류의 죄를 대신 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금요일이죠.

힌드는 홀로 남겨진 차안에서 두려움을 이겨내고자 기도문을 암송 합니다.

비록 언어는 다르지만, 하나님을 찾고,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나쁜길로 들게 하지 마시고

구원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아멘이라고 기도를 마무리해요.

나와 같은 신에게, 같은 기도를 올리는 힌드를 보는 장면이 무척이나 마음이 아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깔끔하게 아수라장을 만들어 놨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