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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May 22. 2017

영화 <자전거 탄 소년>

Le gamin au vélo, 2011


멀어지는 아이의 작은 뒷모습, 긴 여운.

시릴,

하고 소년의 이름을 소리 없이 불러보는 것만으로도 주책스럽게 코가 찡해진다. 

작은 인생에 닥쳐온 시련을 온몸으로 부딪혀 온 너에게 

설익은 위로나 순간의 연민은 오히려 상처이겠지만, 그저 그렇고 그런 무의미함이겠지만,

툭 털고 일어나 다시 자전거 페달을 밟는 너의 뒷모습에 

내 마음이 무너져 내린다.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 아이야, 

아무것도 해줄 것이 없어서, 

너의 멀어지는 작은 등을 바라보는 것 밖에는 해줄 것이 없구나. 

미안하다는 말도 차마 할 수 없이 시려오는 마음으로, 너의 고단한 삶을 위해 기도할게. 




시릴은, 새삶을 찾아 떠나간 아빠를 아직 믿을 수가 없다. 

그래서 아빠를 찾아 탈출하고, 도망가고, 매일매일 달린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우리에게 시릴은 과격하고, 거칠고, 고집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아빠가 떠난 빈집을 확인하기 위해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의 그 고단한 아이의 옆 얼굴과

숨막힐듯 가로막힌 벽 앞에 멈추어 선 아이의 뒷모습과

약속한 장소에도 나타나지 않는 아빠를 찾아가 아빠의 기분은 맞추려는 아이의 애달픔과

결국 면전에서 찾아오지 말라는 말을 듣고 돌아가는 아이의 웅크림을 보게 된다면, 

그 아이의 작은 어깨 한 번 보듬어 주지 못한 스스로를 후회하게 되리라. 

 



사만다는 누구일까.

어린시절 시릴과 같은 사연이 있었을까, 비슷한 남동생이라도 혹은 아들이라도 있었던걸까.

아니면 원래 성모마리아 같은 숭고한 여인이었을까.


갑자기 매달려 앵글 속으로 들어와버린 사만다는,

왜 그렇게 이 아이에게 끌린걸까.

"a woman who helps a boy emerge from the violence that holds him prisoner."

다르덴 형제가 오래동안 생각해온 fairy tale은    

평생을 교육자로, 또 부모로 살아온 우리 엄마에게는 "애착"이었고

유기견이었던 천둥이와 함께 살고 있는 나에게는 "뿌리칠수 없음"이었다.


고집스러운 아이가, 사랑에 고픈 아이가 

힘겹게 내뱉은 "주말에 아줌마 집에 놀러가도 되요?" 한 마디에 담긴 고독한 조난신고를 읽어준 단 한사람. 

누군가에게는 '구원'일테고 '그래도 살만한 세상'일 수 있는 이야기.



<자전거 탄 소년>이 주는 큰 여운은 마지막에 있는데, 

불량배의 꾐에 빠져 범죄에 가담한 시릴이 피해자 가족과 가게에서 마주친다. 

사만다가 보호자로서 합의를 하고 용서를 구한 사건이지만, 

피해자 가족의 아들은 시릴을 용서 할 수 없다. 

시릴은 그의 공격에 반격하지 않고, 그저 가여운 작은 짐승처럼 나무 위로 도망칠 뿐인데, 

그가 던진 돌에 맞아 높은 나무에서 떨어지고 만다. 


6년 전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나는, 이 장면에서 안타까움과 동시에, 당연함을 느꼈다. 

'거친 소년이 이제야 안식처를 구했지만 결국 자기의 과거에서 비롯된 비극적인 신파'의 엔딩.

피해자 가족, 아니 이제 가해자가 된 가족도 시릴이 죽었다고 생각했고, 

나도 그랬다. 


그리고 순간, 

시릴은 아무런 말 없이 툭툭 털고 일어난다. 

모든 과오는 자기 몫이라는 듯 

원망의 눈길 한 번 없이, 

아프다는 내색한번 없이,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자전거를 일으켜 

한 손에는 숯봉지를 들고 

사만다 아줌마의 집으로 그렇게 자전거를 타고 가버리는 것이다. 


자기 인생을 오롯이 혼자 감내하는 이 숭고한 소년에게 

내가 감히 미안하다고, 보살펴주겠다고 할 수 있을까?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가도록, 나는 그저 소년의 인생이 조금 덜 고단하기를 바라고 바랄 뿐이었다. 


Trivia

1) 마음을 후벼파는 눈빛, 시릴역할은 '토마 도레'가 맡았는데 100명의 오디션 중 50번째 참가자였다고.

2 )사만다의 직업은 원래 의사로 설정됐었는데 '치유'와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미용사'로 바뀌었다고 한다. 

3) 다르덴형제는 영화에 음악을 삽입하지 않지만, 이번 영화는 긴긴 고민 끝에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가 딱 4번 삽입된다. 아버지에게 버림 받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자해할때와 마지막 엔딩 장면을 포함해, 시릴을 다독여주고 싶은 장면에 음악을 등장시킨다. 



#2m1m   #2movies1mon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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