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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맨 May 09. 2019

어느 노교수의 고별 강연

Sover, Naked Strength 그리고 생존 부등식

2005년 9월 29일 오후 5시, S대 경영대학 한 대형 강의동에서는 어느 노교수의 고별 강연이 열렸습니다.

강연장은, 그리고 식순은 소박했습니다. 경영대 학장님이 간단한 약력을 소개하고 곧바로 강연이 열렸습니다. 소위 ‘동원’되어 온 것으로 보이는 학생도 없었고, 경영학과 교수의 고별 강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소박하다 못해 초라한 대학 최고경영자과정으로부터 온 화환 하나가 장식의 전부였습니다.
 
강연은 인간의 존재에 부과된 무거운 의미를 깨닫기 위해 10만 Km 거리에서 본 지구, 10억 Km 거리에서 본 태양계, 10만 광년 거리에서 본 우리 은하... 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렇게 더할 수 없는 신비한 생명을 가진 소중한 한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그러한 고민을 하기에도 벅찬 데, 왜 이렇게 스스로 생을 버리는 사람들이 많은가... 라시며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이날의 강연에서 언급은 안 하셨지만, 그분의 책(‘경영, 경제, 인생 강좌 45편’)에서 스스로 생을 버리지 말라며 주셨던 글이 기억납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 대충의 의미를 옮겨 보지요.
... 자연에도 부조리가 존재한다. 열심히 땀 흘려 열매를 맺은 나무를 자연은 중력이라는 이름으로 끊임없이 괴롭혀서 결국 가지를 부러뜨린다...
... 자연에도 그러할진댄 인간사에는 또 얼마나 많은 부조리가 있겠는가. 경쟁이라는 이름 하에 패한 자는 어디서 하소연도 하지 못한 채 살아 나간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생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켜나가야 한다. 생명! 생은 명령이다(生은 命也라).
 
그렇습니다. 인간에 대한 사랑 없이는 경영학자가 도저히 연구하거나 관심을 가질 수 없는 부분입니다. 쓰인 글을 보기엔 쉽지만, 그 누가 열매를 맺은 나무의 가지를 부러뜨리는 자연을 부조리로 느끼고 인간사에 그것을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강연은 다시 이어집니다. 인간을 가장 열심히 탐구한 사람은 인류학자보다는 대문호(文豪)라며 농을 하십니다. 그러한 문호 - 인간의 비극을 탐구한 셰익스피어, 인도적인 마음을 탐구한 톨스토이... 그러나 또한 시인 중에도 그러한 분들이 계시다고 합니다… Alfred Lord Tennyson, William Wordsworth…
 
참 이상하지요? 경영학자의 고별 강연에 시인이, 그리고 시가 등장합니다.
 
강연은 Alfred Lord Tennyson의 ‘The Oak’ 란 시 속으로 계속됩니다…


The Oak
                 Alfred L. Tennyson

Live thy life, 
Young and old, 
Like yon oak, 
Bright in spring, 
Living gold; 

Summer-rich 
Then; and then 
Autumn-changed, 
Soberer hued 
Gold again. 

All his leaves 
Fall'n at length, 
Look, he stands, 
Trunk and bough, 
Naked strength.

 
노교수는 이 시의 四季에 나타난 Oak의 모습을 인생에 비유합니다… 
Bright in spring… 10대.
Summer-rich… 2~30대. 여기서 노교수는 ‘rich’를 이야기합니다. rich란 내가 배불리 먹는 것이 아니고 내가 열심히 노력하여 열매를 맺어 남들이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Autumn-changed, Soberer hued... 가을. 4~50대. sober hued. 여기서 노교수는 ‘sober’를 오늘의 ‘탐구주제 I’로 삼습니다...^^
 
Sober… 술, 환상, 유혹에서 취해있던 상태에서 깨어나 바른 정신을 회복한 상태.
예전 교과서에서 배운 적 있는 미당 선생의 ‘국화 옆에서’의 한 부분을 인용하십니다.
...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바로 그 모습이 sober가 아니겠느냐 말씀하시네요. 저도 이제 조금 나이가 들었는지 조금은 끄덕여지는군요...
그러면서 여러 말씀 중에 젊은 이들이 왜 이렇게 좌절감을 느끼는 가 하면 아마도 일확천금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하십니다.
"여기 72학번 제자들도 와있지만 내가 그때는 이만큼 강의를 못했어요, 30년을 나름에 노력한 결과가 겨우 요모냥이요." 그러면서 하나의 명제를 주시는군요. "이 사회! 얕볼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새가 둥지 하나를 짓기 위해 1,000번을 나가서 나뭇가지를 물어와야만 하는 자연을 알면 일확천금의 환상에서 sober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시면서 일생을 sober하지 못한 슬픈 페르 귄트의 이야기를 다룬 노래 ‘Solveig Song(https://youtu.be/R8AD75_sNJM)’을 들려주시며 작은 지휘를 하시는군요... 꼭 한번 들어보십시오. 아마 익숙하실 겁니다. 강연을 들을 때는 잘 몰랐는데 나중에 인터넷을 통해 이 노래의 배경을 보니 ‘아, 그래서 이 곡을 선정하셨구나’ 싶습니다.

 
공자님의 15세에 志于學, 30세에 立, 40세에 不惑을 말씀하시며, 그분도 40세에 sober 하셨던 것이다... 고 하시는군요. 새삼 sober와 불혹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집니다. 노교수께선, "나는 항상 sober를 머릿속에 넣고 있으니까 이게 sober로 보이는 거야" 하하... 그렇군요.
 
다시 The Oak 시로 돌아와 볼까요.
 
이제 겨울입니다. Naked strength… 이번엔 ‘벌거벗은 힘’을 ‘탐구주제 II’로 하시는군요.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2분 연설이었던 링컨 대통령의 1863년 GETTYSBURG 연설, 그 일회성 연설이 이렇게 항구적으로 남아 있게 된 것… 
Suez운하 개통 경축용 음악이던 오페라 AIDA(음악도 들려주시고, 역시 작은 지휘도 보여주셨습니다)가 역시 일과성으로 사라지지 않고 불후의 명작이 된 것… 
바로 그들에 내재되어 있는 힘, 시에서 표현된 것처럼 All his leaves fallen… 된 상태에서도 버텨낼 수 있는 힘, naked strength가 있었기에 그들이 아직도 살아있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인간의 경우에는 보직(옷)을 벗은 후에도 남아 있는 힘이 바로 naked strength일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인간적인 미(美), 자기희생, 헌신적 생활 태도를 말씀하십니다. 아마 저들이 naked strength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 생각하셨겠지요.
 
기업의 naked strength를 그 유명한 ‘생존부등식’으로 설명을 하십니다. 즉, 600원짜리 라면에 대하여 소비자가 느끼는 가치가 1000원이라면, 그 라면을 만드는 기업은 1000원(가치, V) – 600원(가격, P) = 400원(순가치, V-P)을 사회에 주는 은혜로운 존재...라고 하시면서 기업의 富에 대한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하십니다.
 
어느덧 강의는 마지막 페이지를 남겨두고 있습니다.
 
그 마지막 슬라이드에서는 강의가 남기는 여운... 이라시며 3가지 질문을 던져주십니다. 
... 나는 어떤 착각(유혹)으로부터 sober 할 것인가? 
... 나는 naked strength를 기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것인가? 
... 내 생존 부등식(V>P)이 만족되고 있는가?
 
취업을 앞둔 젊은이들에게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말씀 주십니다.  
"내가 받는 월급만큼 일하면 되겠지, 생각하지 말라. 월급의 수십 배, 수백 배만큼 노력해야 naked strength가 쌓이지 않겠는가..."
 
강연은 끝나고 정식으로 꽃다발 증정 시간이 없다 보니 언제 꽃다발을 드려야 할지 몰라 기회를 엿보는 사람들 사이로 사전 약속 없이 하나둘씩 일어난 사람들이 어느덧 전원 기립 박수를 치고, 그런 사람들에게 수줍어하시며 앉으라고 권하시는 가슴 훈훈한 장면... 그렇게 노교수의 ‘고별 강연’은 막을 내렸습니다. 72학번, 73학번 제자로부터 05학번 학생들까지 자리를 메운 자리였습니다. 경영대 교수라면 그 흔한 대기업 화환 하나 없는 고별 강연식이었고, 중소기업의 생라면과 요구르트 선물세트, 그리고 정식 식당도 아닌 강의실 앞 좁은 곳에 마련된 작은 케이터링이 참석자들에 대한 소박한 답례였습니다.
 
네... 저 노교수가 누군지 아시겠습니까? 지난 2005년 8월 말에 정년퇴임을 하신 윤석철 교수님이십니다. 
 
윤 교수님은 원래 독어독문학과에 입학하셨다가 (사실 그 당시는 독일이 우리 경제 발전의 모델이자 선망의 대상이었지요) 물리학, 화학, 수학 등을 두루 공부하시며 서울대를 수석 졸업하신 뒤에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전기공학 박사와 경영학 박사를 받으시고 서울대 경영대 교수로 재직하여 오셨습니다. 자연과학과 공학, 그리고 사회학을 넘나드는 지식과 혜안으로 경영, 그리고 인생을 탐구해오셨습니다. 
 
제가 그분을 존경하는 이유는 서울대 수석졸업도 아니요, 어찌 보면 이공계 출신이실 수 있는 분께서 경영대 교수를 하셔서도 아닙니다. 
 
바로, 요즘과 같이 ‘현상’에 집중하고 있는 수많은 이들과는 달리 바로 ‘본질’을 탐구하셨다는 점 때문입니다. 자연의 진리를 알고, 그로부터 겸양을 알고, 생명이란 자연으로부터 주어진 이 한 생을 소중히 성실히 가꾸어 나갈 명령임을 깨닫고, 그로부터 인간이 존재하고 있는 이 사회와 가치를 주고받으며 상생할 수 있도록 하는 기업의 올바른 모습을 가꿀 수 있도록 학생들을 가르치셨던 것이지요. 사실 우리 주변에 보면 얄팍한 현상들을 피상적으로 알면서도 자신들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양 허장성세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면서 그 얇은 현상을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팔면서 자본에 편승하는 얇은 선비(一片之士)들이 또 얼마나 많습니까. 
 
사실 그런 길이 달콤하고 혹한 길이 었겠지요… 그럼에도 그러한 유혹에서 'sober'하셔서 학기 중에는 학생들에 대한 강의를 위해 외부 강연을 하지 않으셨던, 1년에 6권의 책을 낸다고 자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10년에 겨우 한 권의 책을 내셨던, 인간에 대한 가슴 싶은 사랑으로 생을 저버리는 사람들에게 거대한 대자연에서조차 피할 수 없었던 부조리를 알려주고 싶었던, 그래서 이렇게 퇴임의 마지막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진정으로 존경할 수밖에 없는 'naked strength'를 보여주셨던 윤 교수님.
바로 그러한 분이 sober와 naked strength를 말씀하셨기에 그 단어가 살아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스며들었을 것입니다.
 
누군가 명문대를 나왔다는 선민의식으로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대하고 있을 때, 또 실재하지 않는 학문의 경계에 갇혀 곡학아세를 하고 있을 때, 이번 윤 교수님의 강의는 그 시작과 끝이 지구요, 우주요, 인간이었습니다. 미국, 한국이 아니었고, 경영학이, 공학이 아니었습니다. 


책 한 권 권합니다. 윤석철 교수님의 ‘경영, 경제, 인생 강좌 45편’.  
아마 20대에는 별 감흥이 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30대에는 조금 그 맛을 느낄까요.  
40대부터는 읽을 때마다 새로울 듯싶습니다.  
부디 책상 한 켠에 고이 간직하시며 삶이 힘들다고 느끼실 때마다 펼쳐 보시길 바랍니다.


14년 전에 일기장에 썼던 글 입니다만... 돌아보며 이 공간으로 다시 옮깁니다. 

by Dol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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