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olias Apr 04. 2024

똥고집

손해 봐도 소신 있게?

나는 학습을 할 때도 완벽하게 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대충 이해가 가면 안다고 생각하고 넘어가서(상당히 자만한 학습자네요 ㅎㅎ) 디테일한 부분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반복을 안 하니 딱 공부를 잘하는 스타일은 아닌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좋은 성적을 내는 스타일이 아닌 것. 하지만 하나의 문제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생각하기를 좋아하고 응용력은 나름 괜찮은 편이다. 하여 OPIc를 보는 상황에서도 내 학습성향과 특성이 드러나서 후회하기도 하지만 뭐 어때, 하고 싶은 대로 해야지 합리화를 하며 스스로 토닥거려 준다. 


하지만! 일정 수준의 점수를 받아 패스를 하는 경우는 다행인데, 만약 절대평가가 아닌 상태평가인 경우 내 고집대로 시험에 임한다면 절대 안 될 일이다. 


최근 OPIc를 볼 때도 내 고집은 고스란히 드러났다. 다음날 학교 독서 그룹활동이 있는데 교수님과 연락해서 활동에 대한 계획을 세워보라는 문제였다. 모임에 대한 일시, 참석인원, 장소 및 빠진 준비사항을 확인하는 정도로 대답했으면 얼마나 편했겠는가? 하필 시험을 치던 바로 그 시기에 내가 한 작가에게 홀딱 빠져있었으니, 반드시 그 작가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 보다. 문제는 그토록 빠져있던 작가의 이름이 생각이 안 나는 것이다. 어젯밤까지 읽었던 좋아하는 작가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는 좌절감과 어떡해서든 이름을 말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그러니까... 음... 그 벨기에 작가인데요~아주 매력적이고 독특한. 이름이 생각이 안 나서 저도 당황스럽습니다만... 요즘 제 기억력이 많이 나빠졌어요. 죄송합니다. 이름은 생각나지 않는 그 작가는요..." 횡설수설하면서 이름을 기억하려고 하다가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정작 확인해야 될 사항은 전혀 말하지 않고 작가의 매력과 작품에 대한 말도 안 되는 설명과 내 기억인출에 대한 실패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시간이 다 가버렸다. 시험장을 나오는 순간 작가의 이름은 떠올랐다. 아멜리 노통브! 



마지막 문제는 처음 해외출장을 가는 동료와 전화하는 것이었다.  나의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은 불편한 상사와 같이 출장을 가게 되면 어떨까? 였다. "어떡해요, 처음 가는 출장인데 많이 걱정되겠어요. 마음의 준비가 많이 필요하겠어요.."'로 시작을 하더니 어떤 몰상식한 사람은 양주나 화장품 부탁을 하기도 한다면서요. 혹시 그런 사람이 있나요? 거절하기도 뭐 하고 참 난감하네요~직장 생활이 다 그렇지요~로 넘어가더니 평범하게 돈 벌고 산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닙니다... 했던 것이다.   

얼마나 쉬운 보너스 같은 문제였던가? 마지막이니 끝내고 돌아가하는 배려가 있는 주제라는 생각마저 정도로. 출장의 목적, 도착지, 기간에 대해 묻고 안부를 전하면 술~술 쉽게 풀리는 문제가 아니었던가?


이런 바보! 시험의 목적은 좋은 점수를 얻는 것이며 꼭 내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적당하게 내용을 지어서 대답하면 되었다. 그런데 나는 늘 꼭 내 이야기가 들어가지 않으면 거짓이라도 되는 양, 준비했던 내용들을 깡그리 잊어버리고 실제 상황에서 불쑥 올라온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OPIc에서 뿐이 아니라 다른 시험이나 면접에서도 일반적인(정상적인??) 답을 하면 좋았을 걸, 소신 있게(?) 아주 주관적이고 황당한 답을 해서 얼굴이 화끈거린 적이 있다. 혹시 모른다. 이런 똥고집을 좋게 봐주는 아주 소수의 개성 있는 심사위원이 있을지도. 하지만 현실에서 나는 상황파악을 못하는 사차원으로 여겨져서 처참한 결과를 얻은 경험이 적지 않다. 



'손해 봐도 소신 있게 밀고 나가야지...'라며 합리화했던 내 모습이 오늘은 많이 다르게 여겨진다. 그건 소신이 아니라 당면한 현재의 내 위치를 망각하고 있었던 결과라고. 나만의 세계에 빠져서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다 보니 목표에서 빗나가 허우적대는 상황일 뿐이라고. 똥고집은 아직 경험이 많이 없는 아이적에나 봐줄 만하지 되풀이되는 실패에도 변하지 않는 똥고집은 내 성장을 막고 있는 장애물일 뿐이라고. 다음번에는 순간적으로 밀려오는 내 스토리를 꾹꾹 참고 준비된 내용으로 반응해 보리라....^^  



작가의 이전글 잃어버린 유머를 찾아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