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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lias Mar 27. 2024

아빠와의 이별은 안녕(12)

내가 레즈비언?

레즈라고? 설마...

진짜야, 국어선생님 그만두셨잖아? 그것도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는데?

말도 안 돼. 나 둘 다 좋아하는데. 멋있는 애들은 뭔가가 있다니까. 아깝네. 나도 레즈나 되어볼까?

야, 농담으로라도 그런 말 하지 마라. 너 혹시?

애가 왜 이래, 내가 미쳤냐. 널 좋아하게. 난 좋아하는 남자선배 있다.

뭐? 왜 나한테 말 안 했어? 누군데, 응?


소문이 돈다. 내가 레즈비언이라고. 그녀는 나 때문에 쫓겨난 거나 마찬가지라고. 어쩐지 내가 남자애들한테는 관심이 없었다며. 여자들한테 인기가 많은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며. 나는 학교에서 이미 레즈로 통한다. 나완 무관하게. 물론 소문을 퍼트린 사람을 알고 있다. 소정이. 그 애가 휘와 함께 있는 것도 안다. 휘에게서 오는  파장에 다른 파장이 섞여올 때가 있다. 소정이가 휘의 손을 만질 때, 아마도 내 이름이 새겨져 있는 부위를 만지면 한동안 파장이 섞여있다. 소정이가 그녀와 내가 레즈비언이었다고 열정적으로 떠들고 다녔다. 그럴싸한 상황이라 아이들은 쉽게 믿었다. 물론 내 절친들은 아닌 걸 안다. 이럴 때 아니라고 맞서면 더 시끄러워진다. 사실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지만 내 절친들도 함께 오해를 받을 수 있으니 가만히 있을 순 없다.


수학시간에 선생님께서 갑자기 심부름을 시키셨는데, 운도 없지, 담임선생님이 수업을 하고 있는 남자반이었다. 우리 학교는 남녀공학이지만 여자반이 1~4반, 남자반이 5~10반까지 있다. 종례 후 담임선생님이 교무실로 따라오라 한다. 심부름 갔을 때 뭔가 있었나 보다. 전혀 모르겠는데.

"연수, 너. 요즘 이상한 소문도 돌고. 오늘 보니까 남자애들도 반응이 이상하던데. 여자애들이 반에 심부름 오면 남자애들 소리치고 난리가 나는데 말이야. 네가 들어오니까 조용하다 못해 엄숙한 느낌이 든 건 뭐니? 평소 어떻게 하고 다니길래. 너 정상적인 여학생이 맞긴 한 거야? 연수야, 네가 걱정돼서 그래. 내가 널 얼마나 생각하는지 알잖아. 난 네 담임이지만 네 친구이기도 하잖아, 맞지? 되어주기로 했으니까... 말 좀 해봐"

"할 말이 없는데요, 남자애들이 절 조금은 무서워하는 것 같긴 한데... 이게 이상한 일인가요? 정상적인 여학생이란 어떤 것인지요?"

"또 시작이다. 너무 따지지 말라니까. 연수야. 이렇게 살다 보면 너 다친다. 학생은 학생다워야지. 참, 지난번 반성문 때는 내가 잘못했다. 내가 졌어. 그건 나중에 얘기하고. 너 감정이라는 게 있는 사람이니? 사춘기 여학생의 뭐 그런 설레는 마음 같은 것 전혀 없어? 소문이 진짜인 거야?"

"저 좋아하는 애 있는데요"

"그렇지? 레즈비언 아닌 거지? 누구야, 네 선택을 받은 놈이?"

"비밀입니다"

"말하지 않아도 결국 알게 될 거야"

"얼마 뒤 알게 될 거예요, 저 가도 되지요?"


방법이 저절로 생겨났다. 좋아하는 애를 만드는 거다. 나도 똑같이 소문을 퍼뜨리는 거지. 내가 레즈비언이라는 소문을 덮어버릴. 휘? 휘를 남자로 좋아하는 건 아닌데. 방향이 다른데. 괜히 휘를 힘들게 할 수 있어. 아니야, 어차피 휘 뒤에는 소정이가 있으니까 힘들게 하는 애들은 소정이가 처리해주지 않을까? 아니야, 좋은 생각이 아니야. 그렇다면... 누가 좋을까.


나는 학교에 일찍 간다. 가능한 아이들을 만나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텅 빈 운동장에 들어서면 기분이 좋다. 아무도 없는 교실에 들어서는 것도 좋다. 무언가 생길 것만 같은 조용한 공간. 그 공간의 냄새가 좋다.

오늘도 학생으로는 제일 빠를 거야 하며 운동장을 걷는데 무언가 날아온다.


"김여언수~~" 툭!

장미꽃다발이다. 놀란 건 꽃보다 나보다 일찍 등교하는 애가 있다는 것. 내가 등교하는 시간을 알고 있으니까. 어떤 애지?

떨어진 방향을 따라 고개를 들어보니 교실 창문에 보였던 형체가 사라졌다. 비겁한 놈이네. 꽃다발을 줬으면 얼굴을 알려야지, 숨으면 누군지 어떻게 알아. 알리고 싶지 않은 건가? 오~바로 너구나. 내가 좋아하는 남자애가. 저기가 몇 반이지? 5,6,7,8, 9. 9반이다. 좋아. 9반이면 찾을 수 있다. 기다려~


음악선생님의 도움을 받아보기로 한다. 음대를 지망하는 내 절친 진여사 덕분에 음악선생님과 꽤 친한 편이었음에도 부탁을 드리는 게 많이 민망했다.  

"저... 선생님, 제가 좋아하는 아이가 생겼는데요. 9반이라는 것만 알고 아는 게 없어서요. 선생님이 담임이시잖아요. 도움이 필요합니다...ㅎㅎㅎ"

"뜻밖이네, 연수에게 좋아하는 아이가 있다니. 찾는 걸 도와달라는 거지? 인상착의를 말해봐"

이건 생각을 못했는데. 인상착의라는 게 있을 리가. 이와 이렇게 된 거 마음껏 지어내어 볼까?

"눈매는 서글서글하고요, 키는 175? 피부는 조금 까무잡잡한 편인데, 스타일이 괜찮아요"

"이건 너무 어려운데... 일단 점심시간에 음악실로 네가 좋아할 만한 애들 좀 불러볼게. 맞으면 신호~"

"감사합니다~선생님!"


나의 좋아하는 남자아이 찾기가 일주일 이상 지속되었지만 없었다. 아직 절반 이상이나 남긴 했는데 하긴 원래 있는 애가 아니니 누구라도 말하기만 하면 되는데 아무리 가짜로 만들어내는 거지만 어느 정도는 마음에 들어야 하는 게 아닌가. 거짓이라고 아무나 할 수는 없었다. 조금씩 짜증이 나고 지쳐갔다. 이런 생황들은 나의 그녀에 대한 그리움을 더욱 커지게만 했다. 그녀를 사랑했는데 아니 지금도 사랑하는데 뭐 하는 짓인지. 어쩌면 그녀가 여성이라는 측면에서만 보면 나는 레즈비언이 맞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여성 이상이다. 아는 그녀를 만나지 않아도, 만지지 않아도 여전히 그녀를 사랑한다.


남자아이 찾기가 드디어 십 일째에 들어서고 포기할까 하는 생각도 들 때, 한 남자애가 음악실로 들어섰다. 크피아노 뒤 커튼에 숨어 몰래 보던 내 눈에 남자애는 바로 휘. 흡... 숨이 멎을 것 같다. 그런데 휘가 변했네. 이미지가. 선생님 뭐지? 내가 말한 인상착의와 맞지 않는 애를 불렀잖아. 키는 훌쩍 크고 피부고 새하얗고.


"어서 와~갑자기 불러서 놀랐지, 강휘야. 요즘 반 애들 다 불러서 이런저런 애기 좀 하고 있다는 건 알지? 진학문제도 있고 해서. 요즘에 네가 많이 달라져서 너무 좋더라. 친구들하고도 조금씩 어울리고 웃기도 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이번 기말고사 기대해 볼게. 나한테 뭐 할 말 있을까? 우리 강휘는?"

"선생님... 만약에요. 누군가를 좋아하면 선생님은 그 비밀을 지키고 있을 건가요, 아니면 고백할 건가요?"

"뭐? 갑자기... 요즘 이상하네.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 나라면... 음 상대도 나를 좋아할 거하는 마음이 들면 고백하고 아니면 비밀? 누구 좋아하는구나? 오늘도 네 뒤에 따라온 소정이는 아닐 거고... 소정이 이 사실 알면 운다. 소정이하고는 어떤 관계야?"

"뭐 별 관계 아니에요. 아주 오랜 소꿉친구 같은 관계요. 다음 친구 왔네요. 저는 그럼..."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들킬 뻔했다. 휘가 나가자마자 커튼 뒤에서 나와버렸다. 숨이 막혀 너무 답답했다. 딱 그 시점에 다른 애가 들어와서 미처 숨을 시간이 없었다. 그 아이는 나를 보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얼굴이 빨개지더니 뒷걸음치다 도망가버렸다. 뭐지?

"재, 왜 저러지? 저런 애가 아닌데. 우리 반 반장인데, 몰라? 너도 반장이면서?"

에라 모르겠다.

"바로 저 애예요. 제가 찾던 애"

"뭐~벌써 몇 번이고 봤겠다. 전교회의 시간에. 이름은 박채. 연수 생각보다 남자 보는 눈이 있네. 진국이지. 이 사실 알면 난리 나겠네, 채이 좋아하는 여자애들 꽤 많거든. 어쩌면 여자친구가 있는지도 모르지. 한번 슬쩍 떠볼게. 오늘 선생님과의 약속을 어겼으니 진실을 말해야 한다면서... 내일 보자^^"


휘는 강 씨였구나. 강휘. 강휘야. 많이 변했네. 소정이에게 고마워해야겠어. 나를 이렇게 만들었긴 해도. 아까 그 애 이름이 뭐였더라. 채가 들어갔는데... 휘를 봐서 정신이 없는 바람에 충동적으로 그 애라도 해버렸는데 휘가 아니었더라고 선택했을 것 같다. 회의시간에는 전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하긴 우리 학교 남자애들에게 관심이 손톱만큼이라도 있어야 말이지. 그나저나 다행이다. 나는 이제 동갑 남자애를 좋아하는 여자애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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