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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lias Apr 30. 2024

아빠와의 이별은 안녕(15)

그리움은 스무살 될 때까지만.

"휘야, 소문 들었어? 연수 그 계집애 남자한테 관심 없는 것 같더니만 와~너네 반 반장이랑 사귄대. 그 사라진 사이코 선생님이랑 그렇고 그런 사이는 아니었나 봐. 이래서 애들 속을 모른다니까. 엉큼하긴. 누가 먼저 사귀자 했는지 모르겠지만, 모색 카페 있잖아. 거기서 둘이 있는 걸 봤는데 박태윤이 꽃다발까지 갖고 왔다나. 누군 좋겠다. 꽃도 받고. 나는 꽃다발은커녕 꽃 한 송이도 구경 못해봤는데... 휘야! 듣고 있는 거야?"

"나가!"

"뭐야, 우리 휘 기분 상한 거야? 연수가 박태윤하고 사귀니까 샘나는구나~나는 좋은데... 연수 같은 애가 무서운 거야. 내가 옆에 있으니 다행이지 까딱하면 우리 휘 넘어갈 뻔했다니까. 휘는 얼마나 운이 좋은지 모르겠네."

"농담 아니야, 나가"

"치~기말고사 공부해야 하니까 준비되면 불러"


김연수. 너 진짜야? 물론 네가 내 여자 친구도 아니고 그냥 딱 한번 만났을 뿐이고. 근데 난 누나도 떠나고 널 내 몸에 새겼어. 이상하단 말이야. 그 꿈 진짜 같거든. 꿈에서 네가 날 만졌을 때 너와 내가 남이라느껴지지 않았어. 그래서 살고 싶어 졌다고. 이 세상에 있는 내가 의미 있게 느껴졌어. 너와 함께 하기 위해서. 내가 위험해서가 아니라 혹시라도 스무 살 이전에 널 만나면 네가 위험해질까 봐 버티는 중이라고. 네게 부끄럽지 않은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근데 넌 박태윤과 사귄다고. 이것이 꿈이었으면. 당장에 네게 묻고 싶어. 진짜냐고.


누나는 어떻게 된 걸까? 누나가 행방불명되었다니. 먼저 떠난 건 나지만 그래도 누나라면 내게 인사 정도는 하고 사라져야 되는 거 아냐? 연수는 알까? 가끔씩 빛이 난다. 연수라고 쓰인 내 몸의 틈을 통해 금빛 가루가 떠다니는 착각이 든다. 착각이든 뭐든 좋다. 연수가 느껴지니까. 내 옆에 있는 것 같은 그때 소정이가 있으면 신경 쓰인다. 연수가 알 것 같아서. 아니지. 연수 너는 박태윤 사귄다는데 내가 소정이랑 사귄 들 뭔 상관이겠어. 어? 금빛 가루가 움직인다. 강휘야, 날 믿어. 네 곁에 있어.  정말. 연수 맞구나. 꿈도 맞고. 이 금빛 가루가 너구나. 나는 어떻게 네게 말을 하지? 네 마음을 읽을 수 있어. 진심이라면  정말? 연수야. 나 너랑 꼭 만날 거야. 스무 살에. 내가 말했지? 한 번의 만남으로 영원한 그리움의 대상이 되자고. 그런데 이제 싫어. 그리움은 스무 살 전까지 만이야. 겨우 사 년 남았네. 내게 요 정도 시간은 짧아



사라졌다. 또 올까? 어떻게 하는 거지? 연수는 어떤 존재인 거야? 흑마법이라도 쓰는 건가? 노파가 말한 가까이해선 안될 여자가 연수인 건가? 아닐 거야. 내가 새긴 문신때문인가? 문신을 통해 연수가 느껴지고 금빛 가루가 나오더니 글도 써. 문신을 지워버리면 모든 게 사라지나? 하지만 누나 문신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잖아. 내가 문신을 해서 일어난 일은 아닌 것 같아. 연수가 사람이 아니라면? 어차피 나 죽을 놈이었잖아. 연수가 아니었더라면 이미 없었을 나. 연수가 사람이 아니면 어때. 사람이라는 정의가 뭔데. 다들 사람이 아닌데 사람인 척 하고 살고 있는지도 모르지. 연수라는 존재가 나와 연결되고 나는 그래서 살고 싶다고. 너와 함께 이 세상에서. 이 세상이 의미가 있어졌다고. 김연수. 기다려.


"소정아, 밥 먹고 공부하자"

"뭐 하다 이제야 정신 차린 거야? 2시간이나 지났네. 잠깐! 이게 뭐야? 무슨 향기도 나고 네 얼굴에 반짝이가 묻었는데, 그 사이 뭘 한 거니?"

"만지지 마, 어디다 손을! 부정 타게!"

"뭐, 부정 타게? 말 다했어? 내가 더러워? 휘야, 너 진짜 너무한다. 너뿐이 없는 나한데 그런 말 할 수 있어? 이게 뭔데? 애들 장난하는 반짝이 같은 게 뭐라고. 부정 탄다고? 그 할망구가 내가 모르는 이상한 소릴 한 거야. 반짝이에다 향수까지 액땜하라 준거냐고! 너한테 난 뭐냐고? 너네 아빠한테 우리 엄마가 한 것처럼 밥 차려주고 뺄래도 해주고 네 뒤치다꺼리 해주는 가정부야? 거기다 공부까지 가르쳐주는 고급 가정부네. 너네 부자는 좋겠다. 우리 모녀가 지극정성으로 모셔서. 나쁜 놈들. 그 아빠에 그 아들!"


소정이가 내게 처음으로 화를 냈다. 아니 그동안 수없이 화가 났겠지만 내게 표현한 건 처음이다. 내가 좀 심했다. 소정이가 아직도 자기 엄마를 가정부라 생각하고 있나 보네. 너도 말 좀 심했다. 아빠도 아줌마를 좋아하는 것 같긴 한데 내 일이 아니니 좋아하건 아니건 상관없다. 그런데 소정이를 내가 가정부로 생각하고 있진 않은데. 생각해 보니 소정이는 가정부라기보다는 엄마다. 소정이 자식, 마음 많이 상했나 보다. 내가 연수를 좋아하다 보니 소정이 마음을 좀 알 것 같다. 하지만 절대 네겐 사과하지 않을 거다. 금빛 가루는 연수와 나의 세계다. 소정이가 만지면  사라질지 모른다. 미안하지만 사과하진 않을 거다. 미안해, 소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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