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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라이크 Sep 07. 2019

가볍거나, 무겁게

관계의 방법을 정하는 일

관계에 대한 불안함은 언제나 있었지만, 누군가의 관계를 부러워한 적은 없었다. 중 2 때 A와 친해지기 전까지 말이다. A는 만인의 친구였다. 우리 동네에는 초등학교가 하나뿐이었다. 거기다 5반뿐이었다. 우리는 6년 동안 5반에 섞이고 섞이며 같은 학년 아이들의 이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모두가 친구인 것은 아니었다. 우리 바로 윗선 배들까지는 모두 타 지역으로 중학교를 배정받았지만, 마침 우리가 졸업할 시기에 맞춰 유물이 발견되었던 중학교 터의 공사가 마무리되면서. 우리는 5반 그대로 중학교 1회 입학생이자 졸업생이 되었다.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 동네에서 제일가는 학원 특목반에 들어가게 되었다. 동네 아주머니 부축임에 엄마의 조바심이 실행에 옮겨진 것이다. 거기서 만난 친구들은 지난 6년간 나와는 전혀 접점이 없었던 친구들이었다. 6년 동안 한 번도 같은 반이었던 적이 없었던 아이들. 그들과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함께 공부하고 도시락을 먹으며 친해졌다. 그리고 개학날이 되었다.


A와 등굣길에 만나 걸어가는데 등교하는 모든 친구가 A에게 인사를 건넸다. A는 모두와 웃으며 안부를 전했다. 심지어 남자아이들도 A에게는 먼저 인사를 건넸다. 나는 신기했다. 어떻게 하면 이런 사람이 될 수 있지? A는 내게도 친절했다. 나도 앞으로는 A처럼 모두의 친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모두에게 인사받는 사랑스러운 사람. 그것이 내가 처음으로 목표라 정한 인간관계 상이었다. 그 후로 나는 A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A는 모두의 사정을 가볍게나마 알고 있었다. 누가 어디 다친 곳, 가족 여행 소식, 다른 학원 체계 같은 것들을 말이다. 나는 A를 따라 모두에게 친절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반 아이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무거운 얘기를 하지 않으며, 그들이 무언가를 할 때 함께 어울리는.

결과는 어땠냐고? 성공이었다. 대성공. 어느 순간부터 나는 등굣길에 인사를 하느라 바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모두에게 안부를 물을 수 있었고 문자도 심심하지 않게 누구나와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행복한 날들의 연속이 아닐 수 없었다. 내게는 100명 정도 되는 많은 친구가 생겼고 그들도 나를 좋은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학기를 보내던 중 소풍날이 다가왔다. 누구나 할 것 없이, 버스에 같이 앉을 '짝'을 정했다. 아니 이미 정해져 있었다. 다들 누구보다 친한 '단짝 친구'가 있었으니까.

나는 소풍 전날까지도 정하지 못했다. 내게는 버스 바로 옆자리에 앉아 MP3에 담아 온 음악을 공유할 '단짝 친구'가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다른 반에는 있었지만, 새로 만난 반에서 자리 잡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나는 소풍날 버스 남는 자리에 앉게 되었다. 누구와 앉았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짝을 찾지 못한 다른 아이와 함께 앉아야만 하는 상황이 되어 내가 먼저 "나랑 앉자!"라고 사람 좋은 척 손을 건넸다.


그러고 나서 나는 A를 다시 관찰하기 시작했다. 누구보다 먼저 '짝'을 고른 A였으니까. 그에게는 든든한 친구 B가 있었다. B는 A가 어디를 가든 꼭 같이 다녔다. A가 B를 누구보다 먼저 챙겼다. A에게 우선순위가 있었다면 B인 것이다. 나는 만인의 인사를 받는 그 모습에 가려 B를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고 나서 나는 플랜 B로 계획을 변경했다. 가볍게 모두와 친한 사람은 사실 '군중 속의 고독'을 그대로 직면하게 되어버린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껴버린 것이다. 나에게는 나의 이런 교활한 속마음을 들어줄 친구가 필요했다.


관계라는 것이 한순간에 쌓아지기도 무너지기도 하지만, 중학교 2학년 때 A를 보고 따라 했던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고등학교, 대학교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인간관계'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을 만나면 나는 꼭 이 경험을 얘기하곤 했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의 선택지가 있다. '깊고 좁은 관계'와 '넓고 얕은 관계' 물론 두 가지 모두 공존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인간관계에 체력이 많이 드는 타입인 나는 그럴 수가 없어 선택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주저하지 않고 전자를 택한다. '외로움'을 견디며 웃기에는 내가 사람을 너무 많이 좋아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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