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올 5월, 없는 돈 있는 돈을 다 털어서 경주로 향했다. 그마저도 여행 경비는 친구의 카드로 긁은 후 돈이 생기면 갚겠다고 빚을 지고 떠났다. 빚으로 시작한 여행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언제나 그랬듯 잘 먹고 잘 마셨다.
"지금이 아니면 먹을 수 없으니, 가격 걱정 말고 맘껏 먹자."
내가 이 친구와 여행을 가게 되는 이유는 이 코드가 딱 맞아서였다.
내 인생 최초의 해외여행이자, 장기 여행이었던. 22살의 유럽 한 달 배낭여행도 이 친구와 갔었다.
물론 매일 다툼의 연속이었다. 그렇다고 서로 치고받고 싸운 건 아니었지만.
아침에 내가 저기압일 때, 친구는 분위기를 풀려다 화가 나고
나는 혼자 저기압에서 벗어나 또 신나려 할 때 친구는 이미 저기압이 되어버리는 식으로.
우리는 서로 성격에 엄청난 패턴이 있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생각해보면, 우리는 첫 여행 치고 너무 혹독한 일들을 겪었다.
영국에서 체코로 가는 비행기를 놓치고 (집으로 너무나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럼 남은 3주의 모든 일정을 포기해야 했다). 독일에서 스위스로 가는 기차 편을 잘못 예약하고.
우리 딱 알아서 반반씩 가격을 정해 예약한 숙소에 불평하지 않기로 했지만, 언덕 높은 곳에 있던 공동 샤워실이 너무나 감옥 같았던 빈의 숙소는 불평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 바퀴벌레가 귀엽다는 걸 새삼 깨닫게 해 준 곳이었으니까.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잘 먹고 잘 마셨다.
매일 레스토랑에 갔고 스테이크 또는 정식 혹은 파스타를 마음껏 먹었다. 돈을 매일 쓰는 기분이 이상했지만, 우리는 이 순간을 위해 1년 전부터 열심히 돈을 벌고 준비를 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여행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다른 유럽 여행기들을 들으며 깨달았다.
여행을 위해 돈을 아끼고 아껴, 아침에 산 프랑스 딱딱한 바게트 하나로 하루를 버틴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여행의 가치가 사람마다 정말 다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 의미로 오늘 문득 갑자기 지난 5월 경주 여행에서 마지막으로 먹었던 떡볶이가 너무나 먹고 싶어 졌다.
하얀 크림 떡볶이는 사진을 찍고 나면 밑에 있는 벌건 국물의 정체를 드러낸다. 로제 크림 떡볶이가 되는 것이다. 매운 것을 잘 못 먹는 내 친구와 먹을 수 있는 딱 적당한 맵기
떡볶이는 언제나 옳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유럽여행에서도 나라마다 족발을 먹었다. (의도한 것은 아닌데, 대부분 나라의 족발 요리를 먹어버렸다) 여행이 매 순간 즐거울 수 없는 건, 일상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는 나의 육신과 정신 때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와서 다시 여행을 이 친구와 떠나고 싶은 건. 그런 못난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깨닫기 때문인 것 같다.
떡볶이가 언제나 옳듯이.
나와 함께 여행을 가주고 견뎌주는 내 동지들이 얼마나 옳은지 생각하게 되는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