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결혼을 결정짓는 가장 큰 집문제의 발표날, 매일 잘만 흘러가던 시간이었는데 그날은 유독 시간이 천천히 흘렀다. 5시 당첨자 명단에 내 이름을 발견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아직 지어지지 않는 미래의 신혼집의 동호수를 보면서 이제 다음 계획을 잡아야만 했다.
'이제 자기네 부모님 뵈러 가자.'
한 번도 이성 친구를 소개한 적이 없다고 말하며, 집 당첨이 확정된 후에 부모님을 뵈었으면 좋겠다는 남자친구의 말을 실행시킬 때가 온 것이다. 지방의 본가 그의 집 근처에 괜찮은 한정식집을 찾고, 부모님이 챙겨주신 곶감과 내가 준비한 꽃다발과 선물을 들고 그의 고향으로 향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하지? 나를 어떻게 생각하실까? 질문에 어떻게 답을 하면 좋지?
나는 '며느라기'가 되지 않기 위해서 나를 잘 지킬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가득 찼다. 당당하게 나의 의견을 내보이는 며느리가 되어야지라고 다짐했지만, 가부장의 끝판왕 집안에서 유교걸로 자란 나에게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나의 부모에게 내가 발악할 수 있었던 건 그나마 그들이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걸 알기에 그 사랑이라는 약점을 가지고 내가 원하는 대로 바꿔갈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어른이라면 말이 다르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있는 내가 다른 어른 앞에서 나의 요구를 대놓고 말할 수 있을지 걱정하며 도착한 약속 장소에서 시간은 생각보다 순식간에 흘러갔다. 차례차례 음식이 나오고, 오랜만에 고향에 온 남자친구는 근황을 나누고, 부모님은 나의 걱정과는 달리 나 그대로를 인정해 주시는 좋은 분들이었다. 나는 그 앞에서 그저 '하하', '호호' 웃으며 어른들의 말을 다 끄덕였다.
그 장면은 우리 부모님을 만났을 때 장면과 확연히 대비되었다.
나, 왜 우리 엄마아빠한테만? 나 나쁜 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