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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하루 Nov 24. 2018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610g

목숨의 무게를 잴 수 있다면

  "아이가 너무 작아 더 이상의 검사를 할 수가 없네요. 우선 하루 입원시키는 게 좋겠습니다. 상태에 변화가 생기면 새벽에라도 연락을 드리겠지만, 지금 상태가 너무 나빠서... 아마 그때는 사망한 이후일 겁니다."


  그 말을 듣고도 나는 그날 잠을 잤다. 심란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울기도 많이 울었던 긴 밤이었지만 어느새 눈을 떠보니 아침이었다. 일어나자마자 휴대폰부터 찾았다. 검게 내 얼굴을 반사하던 휴대폰 액정에 빛이 들어왔다. 아무것도 없었다. 밤새 온 연락은 없었다. 살아있구나, 살아있겠구나. 솜솜이의 지금 상태가 어떨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지만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눈물이 핑 돌았다.


  이른 아침부터 집을 나섰다. 나는 전문가가 아니고, 케어는 병원이 더 잘할테니 오늘 하루 동안은 병원에 둘 생각이었지만 그렇다고 집에 가만히 누워있자니 생각이 너무 많았다. 엄마는 하루 더 입원을 시킬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해 물었다. 어차피 무지개 다리를 건널 거라면 돈을 지불할 이유가 없다는 게 엄마의 말이었다. 화가 나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화를 내기엔 내게 돈이 없었다.


  고작 통장의 백만원을 믿고 나는 이 아이를 무슨 자신감으로 데려왔을까. 입원할 당시 솜솜이의 몸무게는 610g이었다.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보다 거의 100g이 줄어든 셈이었다. 그런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면서 나는 왜 이동장이 무겁다고 타박했을까. 그게 못내 마음에 걸렸다. 그까짓 것, 지금 느껴지는 마음의 무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가벼웠는데.


  그날은 애인과 함께 보내면서도 대화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오전 중에 병원과 통화했을 때 솜솜이가 화장실을 가렸다고 했다. 강제 급여한 초유를 삼켰다고 했다. 그렇다면 조금은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 이 아이가 아직은 내 곁에 있어주는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휴대폰에 불이 들어오기만 하면 심장이 땅에 떨어지는 것 같았다. 하루 종일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 무엇인지 느끼면서 시간을 보냈다.


  마침내 솜솜이가 입원한 지 24시간에 가까워져 병원에 발을 들였을 때, 솜솜이가 보고 싶으면서도 보고 싶지 않았다. 어제처럼 여전히 축 늘어진 채로 있다면, 초점이 흐릿한 가는 동공으로 나를 쳐다보지 조차 못한다면, 그런 솜솜이를 보고 내가 퇴원시키겠다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면. 머리 속에 너무 많은 생각이 나서 말을 뱉어내기가 어려웠다. 그, 고양이, 어제 입원을 시켰는데. 이름, 이름이요. 솜솜이요. 내가 말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도 분간이 잘 가지 않는데 카운터에 앉아계신 분은 깔끔한 목소리로 "솜솜이 보호자 분 면회오셨습니다" 하고 말했다.


  하루가 지나 다시 만난 솜솜이는 앉아있었다. 작은 뒷모습이 내게 얼마만큼의 벅찬 마음을 주었는지, 그건 죽음을 곁에 두었던 사람만이 안다. 솜솜아. 뒤돌지 않았다. 솜솜아. 귀가 한 번 움찔, 했다. 솜솜아, 언니 왔어. 그제야 솜솜이는 고개를 돌려 나를 봤다. 세 번은 불러야 쳐다보는 게 얼마나 고양이다웠는지. 웃음이 났다. 솜솜이는 나를 보고 여느때처럼 먀악, 했다.


  의사 선생님이 하루 더 입원을 시킬지 말지를 결정하라고 하셨다. 어느 쪽이 좋을까요. 내 질문에 의사 선생님은 애매하게 웃으셨다.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것은 가능성의 문제였고, 나는 선택해야 했다. 내가 곁에 바짝 붙어 계속 무언가를 먹이는 것과, 병원에서 케어를 받는 것 중에 무엇이 솜솜이를 살릴 수 있는지 결정해야 했다. 잘못된 것을 선택했을 경우 나는 평생 너의 무게를 가슴에 안고 살아가겠지. 솜솜이의 털은 여전히 보드라웠다. 나는 솜솜이를 퇴원시켰다.


  그날 밤, 나는 밤을 꼴딱 새가며 한 시간 간격으로 솜솜이에게 초유를 강제 급여했다. 몸을 붙잡고 치아 사이로 주사기를 밀어넣으면 죽어가던 녀석이 맞는지 싶을 정도로 맹렬히 나를 밀어내는 솜솜이에게 애원해가며 초유를 먹였다. 사이사이에 나는 줄곧 솜솜이의 배에 손을 올리거나, 털이 움직이고 있는지 빤히 바라보았다. 내내 잠에 들어있는 솜솜이가 마치 그 모습 그대로 죽어버린 것만 같아서, 살아있다는 걸 확인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다.


  12시 13분 1cc.

  1시 17분 3cc.

  2시 21분 3cc.

  3시 32분 5cc.


  먹이는 양을 조금씩 늘리면서 솜솜이가 살 수 있다는 희망도 함께 조금씩 늘어났다. 희한하게도 솜솜이는 입을 맞추는 게 애정표현이라는 걸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를 그렇게 밀어내다가도 내가 동그란 머리에 입을 두 세 번 맞추며 한 입만, 한 입만 더 먹자 하고 말하면 정말 딱 한 번만 더 주사기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받아먹었다. 매번 그랬다.


  그렇게 아침 7시 반쯤, 솜솜이는 슬슬 빨리 끝내는 게 낫다는 걸 깨달았는지 주사기를 들이밀면 씹어먹을 기세로 우유를 삼켰다. 우유에 AD캔(※고양이용 죽)을 조금씩 섞고, 나중에는 AD캔만 먹고, 이내 손바닥에 올려준 사료를 와드득 씹어먹기까지 꼬박 사흘 정도가 걸렸다. 눈에 생기가 돌아오고 솜솜이는 집 안을 다시 조금씩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스크래쳐 위에서 발톱을 갈고, 베란다에 나가 바깥 구경을 했다.


  살았다, 라는 마음이 들 즈음 솜솜이는 이미 펄쩍 뛰고, 우다다를 하고, 골골송도 부르고 꾹꾹이도 했다. 열심히 먹여 마침내 몸무게가 1kg를 넘겨 첫 예방 접종을 하던 날 그 사실이 얼마나 뿌듯하던지. 이동장은 여전히, 사실은 더 무거워졌지만 앞으로도 쭉 610g보다는 가벼울 예정이었다. 그건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610g이었으니까.


이제는 아프지 말자, 솜솜!


※ 건강해진 솜솜이의 더 많은 사진과 이야기는 인스타그램과 트위터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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