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마음이 아니더라도 존재하는 혐오에 대해
아이유의 콘서트에 직접 가고, 앨범을 구입하고, 유애나에 가입한 적이 있을 만큼 대단하진 않아도 제법 그녀의 팬으로 지내왔다. 그녀의 많은 노래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여전히 찾아 듣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Love wins all이라는 노래가 처음으로 공개되었을 때 느낀 그 막연하고 아득한 감각을 언젠가는 글로 적고 싶었다.
최초에 공개되었던 이 곡의 타이틀은 'Love wins'였다. Love wins는 2015년부터 성소수자 운동에서 널리 사용되어온 슬로건이다. 국내에서도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 는 문구로 변형되어 사용되었다. 이 슬로건이 처음 쓰인 것은 미국에서 동성혼 법제화가 이루어지던 2015년이고, 아이유의 Love wins all은 2024년에 발매되었다.
만일 아이유가 이 곡을 만들면서 Love wins라는 슬로건이 어디서 어떻게 쓰여왔는지를 확인하지 못했다면 그건 게으른 창작자라는 뜻이다. 만일 그 사실을 확인했지만 보통 명사의 조합이라는 이유로 성소수자 운동의 맥락을 지우고 차용했다면 그건 성소수자 혐오다. 아이유가 퀴어포비아라는 말이 아니다. 하나의 노래를 창작하는 과정에서 일상에서 매순간 존재가 지워지는 이들을 별다른 고민 없이 지우기로 선택했다는 뜻이다.
누군가는 물을지도 모르겠다. 사랑이 성소수자의 전유물인가요? 사랑은 항상 강한 힘을 갖고 있지 않은가요? 시스젠더 헤테로의 이성애에서는 사랑을 이야기할 수 없나요?
그렇다면 되묻고 싶다.
아이유가 이 노래에서 말하는 사랑은 무엇을 이기는가?
아이유는 이 노래의 소개글에서 '누군가는 지금을 대혐오의 시대라 한다.'고 포문을 열었다. 누군가는, 이라고 시작했지만 이어지는 문장을 보면 본인 역시 그 말에 동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째서 하필 '지금'이 대혐오의 시대인지, 그 문장에서 혐오는 어디에서 어디로 향하는지 생각해야만 한다.
젠더 갈등이라는 말이 국내에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2015년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페미니즘 리부트가 시작되었을 때부터다. 이전에도 우리나라에는, 전세계적으로도 역시 여성을 향한 성차별과 혐오(미소지니)가 만연했다. 그러나 더이상 여성들이 그에 침묵하지 않기를 선택하고, 다소 극단적인(하지만 인터넷 창을 끄면 사라지는) 방식을 선택하자 '젠더 갈등'이라는 말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한쪽이 김치녀, 된장녀, 보전깨, 삼일한 등의 다양한 언어로 일방적으로 차별 당하던 시대에는 그것을 혐오라고 부르지 않다가, 한남(충)이라는 하나의 단어가 생겨난 이후로는 이것을 '갈등'이라고 지칭하기 시작한 것이다.
세상에는 혐오가 만연하다. 동의한다. 하지만 굳이 '지금'을 짚어 대혐오의 시대라고 호명하려면 어째서 지금이 대혐오의 시대인지 이야기해야만 한다. 그녀가 무엇을 보고 혐오라고 생각했는지 물어야 한다. Love wins라는 슬로건을 곡명으로 차용하고 뮤비 내에서는 이성애 연애를 그리는 이 노래는 무엇이 혐오라고 생각하는가? 뮤비 내에서 두 등장인물들이 겪는 시련을 장애로, 이상향을 장애가 극복된 세계로 그리고 있는 이 노래는 무엇을 사랑이라고 생각하는가?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그래, 사랑의 힘은 강하지. 하지만 그 사랑이 '무엇'을 이겨내야 하는가?
Love wins라는 슬로건을 퀴어들이 사용했을 때는 대항군이 명확했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성소수자들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것에 대해, 성소수자를 향해 쏟아지는 차별과 혐오에 대해, 그것들을 사랑이 이겨낼 거라고 말하는 문장이었으니까.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니까. 소개글을 보더라도 아이유가 이 슬로건에 대해 모르는 채로 곡명으로 차용해왔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실제로 나는 Love wins라는 곡명을 처음 봤을 때 아이유가 처음으로 대놓고 퀴어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 건가 싶어서 심장이 뛰었다는 걸 부정하지 않겠다.)
아이유와 이담 엔터테인먼트가 이 노래의 곡명을 Love wins all로 변경한 것은 퀴어 운동 슬로건의 의미를 오염시킬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인정했다는 의미다. 곡명이 변경될 때 '이 곡의 제목으로 인해 중요한 메세지가 흐려질 것을 우려하는 의견을 수용하고, 다양한 모습으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모두를 더욱 존중하고 응원하고자 합니다.'라고 명시한 것만 보아도 명확하다.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며 살아가는 모두, 라는 애매모호한 워딩을 쓴 점은 아쉽지만, 아이유가 퀴어포비아의 스탠스에서 그 슬로건을 빼앗아가려는 악의로 노래를 만들지 않았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다만, 선한 의지에서 나온 선한 발화도 차별적일 수 있다는 부분을 이야기하고 싶다.
그녀가 창작자이기 때문에, 그것도 영향력이 아주 큰 아티스트이기 때문에 더더욱. 모두 사랑하며 살자는 말은 좋은 말이지만 그 말로 인해 실존하는 구조적 차별을 흐리게 된다면 그건 문제가 있다. 장애학에서 가장 기본으로 두고 시작하는 전제는 '장애는 극복해야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점이다. 그러니 아이유의 세계에서 '이상향'이 말을 할 수 없는 이가 말하게 되고 보이지 않는 이가 보게 되는, 다시말해 장애가 사라지는 세계로 그려졌다면 그것은 말 그대로 '가난한 상상력'에 불과하다. 누군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장애인 역시 동등한 시민으로 존중받을 수 있기 위해 싸우고 있으니까.
전장연에서 진행되는 지하철 시위는 출근길 바쁜 시민 직장인들의 이동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출근하는 시민들은 왜 하필 장애인 이동권 시위를 이 시간 이런 곳에서 하느냐고 불만을 표한다. 그렇다면 그 누구도 방해받지 않는 곳을 골라 시위를 해야한다는 말인가? 2001년 장애인이 지하철에서 추락하여 사망하는 사고로부터 시작된 장애인 이동권 보장 시위는 벌써 20년을 넘게 이어져오고 있다. 지하철 내 시위로 시민이 불편을 겪기 시작한 지 얼마나 되었나? 그들의 시위가 20년째 이어지고 있다는 걸,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은 태어난 이래로 줄곧 이동권을 보장받지 못한 채로 살았다는 걸 '비장애인 시민'들은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시민들의 분노의 화살은 20년째 지하철 역마다 엘리베이터 하나 설치해주지 못하고 있는 서울시를 향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나를 범성애자(pansexual)로 정의하고, 퀴어라는 이름의 집단에 소속되기를 망설이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멜로디와 가사가 무척 사랑스러운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불편함을 느끼고야 마는 마음이 무척 아쉽게 남는다. 아이유가 사회에 보내고 있는 다양한 사랑의 언행과, 선한 영향력들을 알고 있고 그녀의 그런 행보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그렇기에 더더욱, 앞으로 이어지는 아이유의 창작에 있어 소외받는 다양한 이들이 충분히 고려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