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도 조선인&중국인 강제동원 실상을 그린 책
저는 영화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영상보다 문자를 선호합니다(하는 척합니다). 그럼에도 '인생 영화'는 있습니다. '귀를 기울이면'도 그중 하나입니다. 생활인인 지금은 이 영화를 언제 봤는지 기억하지 못합니다. 다만 무척 좋아했던 건 기억납니다. 친구와 저는 영화 주인공 이름을 따서 세이지, 시즈크라고 불렀습니다. 주인공처럼 꿈을 향해 나아가고 싶었거든요. 유치했지만 나름 재미있었습니다.
이 영화가 다시 생각난 건 올봄입니다. 3월인가. 근대 일본 조선인 노동자 연구자가 '군함도에 귀를 기울이면' 책을 빌려줬습니다. '귀를 기울이면'이란 구절 때문인지 책이 친숙하게 느껴졌습니다. 연구자는 "이 책은 나가사키 재일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이 현지조사를 진행해 만들었다. 군함도 조선인 강제징용자의 실상을 '자세히' 다뤘다. 군함도 생존자들 인터뷰도 실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당장 읽어 내려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어 실력이 부족해 그러지 못했습니다. 글을 읽을 수 없으니 사진만 봤습니다. 그리고 5월 초 오카 마사하루 기념 나가사키 평화자료관(나가사키 재일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 창립자 오카 마사하루를 기념해 만든 자료관)을 둘러본 뒤 그곳에서 이 책을 샀습니다. 제가 읽을 수 있는 한자라곤 인권, 조선인, 중국인 강제연행 피해자, 군함도뿐이었습니다.
빌린 책을 반납하곤, 새 책을 책상에 올려뒀습니다. 나가사키 재일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이 발간한 '원폭과 조선인' 책자 1~7권 중 군함도 내용을 추려내 만든 '군함도에 귀를 기울이면'. 이 자료를 읽고 한수산 소설가는 소설 '까마귀'와 '군함도'를, 우리 정부는 보고서를 썼다는데... 그 내용을 모르니 답답했습니다. 우리 정부가 예산이 부족해 '군함도에 귀를 기울이면'을 번역하지 못했다는 소식을 듣자, 답답함은 더해졌습니다.
아쉬운 마음에 강치랑 책을 번역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다 "선인 출판사가 이 작업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내 일을 놓친 것 같아 허탈했습니다. 하지만 '잘됐다' 싶었습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좋으니까요. 그렇게 두세 달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 책 번역자 박수경 선생님이 나가사키 재일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에 나와서, 시바타 토시아키 사무국장과 상의하는 모습도 봤습니다.
번역본은 7월 말 세상에 나왔습니다. 시바타 토시아키 사무국장 인터뷰 기사를 쓴 전은옥 선생님도 함께 번역했더군요. 이 분은 오카 마사하루 선생님 자서전 '오직 한길로'(절판)도 우리말로 옮긴 분입니다. '군함도에 귀를 기울이면'을 읽어보면 전 선생님이 군함도 생존자 현장 조사할 때 동행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물 들어올때 노 저으라고 하지요. 실은 브런치 연재를 영화 '군함도' 개봉(7월 26일) 전에 마무리하려고 했습니다. 계획을 실행하지 못했는데요. 가장 큰 이유는 이 책 때문입니다. '군함도에 귀를 기울이면' 번역본이 발간되지 않아서 글을 쓸 수 없었습니다. 군함도를 기록하려면 이 책과 제가 취재한 것을 비교, 대조해야 했습니다. 제가 구연철 선생님 글을 먼저 쓴 건 이 분 얘기가 '군함도에 귀를 기울이면'에 게재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읽은 소감은 차차 전해드리겠습니다. 다만 '이 책을 읽어야 군함도 실상을 알 수 있다'는 점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군함도,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도 추천하고 싶습니다. 이 책은 군함도를 비롯한 강제동원 역사를 두루 살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마침 펀딩도 진행중이네요!)
'국립 나가사키 원폭 사망자 추도 평화기념관' 서점에는 일본인의 원폭 피해사실을 알리는 책이 있더군요. 심지어 한글로 된 책도 있었습니다(사진 참조). 하지만 일본의 '가해 사실'을 조명하는 책은 드물었습니다. 저는 이 책이 원폭 사망자 추도 기념관 서점에서도 판매되면 좋겠습니다. 이 꿈이 이뤄질까요. 일본에는 세이지, 시즈크가 많이 사니까, 기대해도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