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을 군함도에서 보낸 구연철 씨 기록
군함도(하시마 섬)를 알아보려면 먼저 무엇부터 해야 할까요.
가장 쉬운 건 자료를 찾는 겁니다. 자료 안에 귀한 얘기가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구글을 비롯해 교보문고, Yes24, 알라딘 사이트에 들어가 책을 찾아봤습니다.
키워드는 군함도, 하시마 섬, 지옥섬. 책은 별로 나오지 않더군요.
허탈한 마음에 몇몇 취재원에게 전화를 걸어 자문을 구했습니다.
"혹시 군함도 생존자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은 없나요?"
"일본에서 나온 책이 몇 권 있다"는 답변을 들었지만 일본어 바보라 그 책을 찾아볼 필요는 없었습니다.
(일본 책 얘기는 다음에 더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일주일 정도 지났을까. 한 취재원이 전화를 주셨더군요.
"일단 구연철 씨 기록을 찾아보세요. 군함도 강제징용자는 아니고, 군함도 일반 노무자의 자제 분입니다."
군함도에 '자발적으로' 들어가 '정당한' 급여를 받으며 일한 조선인이 있었다니 놀라웠습니다.
'빨치산 구연철 생애사-신불산'(안재성, 산지니, 2016).
교보문고에 들러 책을 샀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책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과거에 묻힌 줄 알았던 군함도가 현존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1939년부터 1945년까지 하시마 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구연철 씨의 기록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습니다.
책에 수록된 일부 내용을 소개하겠습니다. 책을 도용할 의도는 없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사서 읽기를 바라는 마음에 몇 구절 옮깁니다.
#17쪽
이주노동 중에서도 최악의 조건일 수밖에 없는 탄광에 들어간 조선인들은 짐승 우리나 다름없는 합숙소에 집단으로 기거하며 매일 닥쳐오는 죽음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었다. 가족까지 데려와 함께 살 수 있는 조선인은 드물었다. 일찌감치 도일해 약간의 돈을 모아놓고 단칸방이나마 사택도 얻어 가족을 초청한 아버지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아버지가 일하는 곳은 나가사키 현에 있는 하시마라는 곳이었다. 일본 열도의 맨 남쪽 규슈에 있는 작은 섬으로, 부산에서 관부연락선을 타고 시모노세키 항에 도착해 기차를 타고 나가사키로 내려와 다시 배를 타고 70리를 들어가는 곳이다.
#19쪽
일본인들에게도 흰 치마저고리에 흰 두건까지 두른 한국인 가족은 별나게 눈에 띄었다. 대한 해협의 해류는 거칠었다. 네 아이들은 그런대로 버텼는데 할머니와 어머니는 심하게 멀미를 했다. 밤새 토하고 또 토하며 완전히 탈진해버렸다. 일본인들은 힘들어하는 조선인 부녀자들을 동정심으로 쳐다보기는커녕 더럽다고 피하며 냄새나니 나가서 토하라고 욕을 해댔다.
#27쪽
거룻배에서 내려 선착장에 올라서니 제방을 뚫어 만든 동굴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시마로 드나들 수 있는 유일한 출입구였다. 입구 위에 붙여놓은 현판이 눈에 들어왔다. 한자와 일본어를 섞어 쓴 글씨를 찬찬히 읽어보았다. '영광의 문' 대일본제국의 영광을 위해 열심히 석탄을 캐라는 뜻이었을까? 대일본제국을 위해 석탄을 캘 수 있게 되어 영광이라는 뜻이었을까?
#33쪽
구연철이 살던 사택과 학교 사이에는 조선인 광부들의 합숙소가 있었다. 일본말도 잘 할 줄 모르는 이들은 양편으로 늘어선 허름한 방마다 40명 넘게 수용돼 있었다. 돼지우리에도 수십 마리를 한꺼번에 넣지는 않으니 말 그대로 돼지우리만도 못한 곳이었다. 일본인 감독들은 식민지 조선인들을 진짜 돼지처럼 취급했다. 식사는 나날이 형편없어지는 데다 혹독한 구타가 예사였다.
#35쪽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는가는 아이들이 더 잘 알았다. 학교 교실에 앉아 있으면 나카시마 섬이 빤히 내려다보였다. 섬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면 누군가 죽어 태우고 있다는 뜻이었다. 하시마에서 사람이 죽으면 장례식은 물론, 옷을 갈아입히거나 씻기거나 하는 절차 조자 없었다. 못 쓰는 가마니 짝 따위로 대충 덮어 거룻배에 싣고 가 기름을 부어 태워버렸다. 사람 시신이 타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52쪽
해방의 소식은 아이들도 들뜨게 했다. 아이들은 그 잔인하고 무섭던 일본인들이 사라져 버린 섬을 이리저리 마음껏 뛰어다니며 해방을 즐겼다. 구연철도 조선인 친구들과 어울려 어디 숨어 있는 일본 놈 하나 없나 하고 밤늦도록 제방 길을 뛰어다녔다. 유달리 조선인을 괴롭히던 악랄한 감독이라도 하나 잡으면 실컷 두들겨 패줄 생각이었다.
#52쪽
한참 신나게 돌아다니던 구연철 일행이 선착장에 가보니 동굴 입구에 붙어 있던 영광의 문이라는 현판이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힘차게 휘갈겨 쓴 새로운 현판이 붙어 있었다. '지옥의 문' 누군가 영광의 문이란 현판을 떼어내고 지옥의 문이라 써서 붙여놓은 것이다. 누가 써놓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의 땅, 원수의 땅에 강제로 끌려와 뼈만 앙상하게 남도록 혹사당하다 죽어간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듯했다.
책을 대충대충 읽고 내용을 파악한 뒤 출판사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신원을 밝힌 뒤 "구 선생님 전화번호를 부탁드린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전화번호를 받자마자 구 선생님께 연락드렸습니다. 인터뷰 취지를 구구절절 설명했습니다.
구연철 선생님은 단칼에 거절하시더군요.
"(내가 사는 부산에) 찾아와 무엇하겠소."
인터뷰를 할 수 없으니 구연철 선생님 책만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요.
2017년 3월 경. 마음만 앞서는 돌고래는 강치와 얘기만 나눴습니다.
그래도 강치 덕분에 그 어느 때보다 하루하루가 충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