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후쿠오카 렌트카 여행
나고야는 아내가 오래 붙들고 있던 고집이었다.
문제는 늘 그렇듯, 현실의 카드값과 충돌한다는 점이었다.
미루고 또 미루다 뒤늦게 비행기표를 검색했다. 3박 4일 휴가부터 질러놓은 상태. 나고야행 최저가 1인 40만 원.
‘이 돈이면….’
문장은 끝까지 가지 못했다.
늘 그렇듯 계산기가 먼저 말을 잘랐다.
대안으로 인도네시아 발리를 검색했다. 역시 성수기. 항공권은 당당했고, 환율은 오만했다. 10만 원 이하 리조트는 이미 가격표에서 퇴출된 상태였다.
그때 후쿠오카가 나타났다. 1인 20만 원대.
숫자가 단정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예약했다. 다시는 볼 수 없는 숫자였다. 이 시점에서 고민은 철학이 아니라 소음이다.
문제는 숙소였다. 방은 없거나, 있어도 우리가 아는 가격의 세계에 속해 있지 않았다. 숙소 예약은 아내에게 맡겼고, 나는 조건을 두 개만 제시했다.
첫째, 대욕장이 있을 것.
둘째, 저녁에 야키니쿠에 술 한잔할 수 있을 것.
인생의 본질은 이 두 가지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아내는 후쿠오카에서 조금 벗어난 이토시마를 찾아냈다. 조용하고, 가격도 합리적이었다.
다만 돌아오는 비행기가 아침 10시.
마지막 날 전날은 후쿠오카 시내에서 자야 했다. 그렇게 2박은 이토시마, 1박은 후쿠오카가 되었다. 여행은 언제나 타협의 예술이다.
일본은 당일 숙박이 쉽지 않다. 예약은 일본에서 일종의 예의다. 낯선 사람이 방문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현장에서 바로 숙소에 들어가기는 어렵다.
이토시마는 3인 1박 15만 원 선. 문제는 후쿠오카였다.
아내가 추천한 곳은 내가 작년에 묵었던 숙소였다. 대온천은 훌륭했지만, 주변이 지나치게 건전했다.
술 한잔할 만한 무질서가 없었다. 나는 다른 곳을 요청했다. 그 결과 하루 30만 원이 넘는 방이 예약되었다.
결제 완료 후 통보.
이럴 때 남편의 언어는 단순해진다.
“잘했네.”
비행기와 숙소가 정해지자 동선이 문제였다. 짧은 일정에서 시간을 잃는 건 치명적이다. 우리는 렌터카를 선택했다. 일본 운전은 늘 긴장되지만, 막상 달려보면 한국보다 온순하다. 모두가 약간은 배려심 많은 사람처럼 운전한다.
후쿠오카에서 차로 1시간가량 떨어진 이토시마.
검색해 보니 ‘볼 것’은 딱히 없어 보였다.
그래서 더 좋았다.
공항에서 빌려, 마지막 전날 하카타역 근처에서 반납.
3일 14,000엔. 숫자는 아름다웠다.
총정리해 보니 약 133만 원. 작년 제주도 4박 5일이 120만 원이었으니, 해외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여행은 늘 비교의 학문이다.
공항에서 인도받은 차는 귀여운 소형 지프였다. 작지만 버튼은 많았다. 게다가 4륜구동.
나는 갑자기 문명과 마주한 원시인이 되었다. 출발하려는데 경고음이 울렸다. '느낌표'와 ‘D/B off’. 심장이 먼저 반응했다. 렌터카 업체 문 앞에서 되돌아갔다.
설명을 듣고 보니 별일 아니었다. 수동 사이드 브레이크와 기어봉 버튼 문제였다. 우리는 갑자기 아무 일도 없던 사람들처럼 다시 출발했다.
그런데 또 경고음. ‘설마 방금 받은 차가?’그냥 달렸다. 좌측 운전에 익숙하지 않은 데다, 다시 유턴을 받아 돌아갈 자신이 없었다. 할 수 있는 건 직진뿐이었다.
이해하지 못한 채로 움직이는 것, 그게 여행의 기본값이다.
별일 있겠냐며 달리다 나중에 알았다. 뒷좌석 안전벨트를 하지 않았다는 경고음이었다. 차는 멀쩡했고, 문제는 우리였다.
구글 지도를 켰지만, 차에는 휴대폰을 둘 곳이 없었다. 아들이 옆에서 길 안내를 맡았다. 그때 아내가 말했다.
“차량 네비도 신청했어.”
문제는 일본어였다. 화면은 친절했지만, 나는 문맹이었다. 다행히 설정을 바꿔 한국어로 전환. 네비가 갑자기 고향 친구처럼 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목적지 검색은 여전히 완고했다. 온갖 수단을 동원했지만, 화면에는 단호하게 ‘검색 결과 없음’이 떴다. 기계는 언제나 솔직하다. 결국 구글로 대략의 위치를 본 뒤, 네비에는 비슷한 지점을 찍었다.
여행은 늘 ‘대충’과 ‘적당히’의 연속이다.
고속도로 톨게이트.
직원이 직접 돈을 받는 구조였다. 여유 있게 차를 세우고 창문을 내리려는데… 버튼이 없었다. 문짝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안전벨트를 맨 채 문을 열고 몸을 비틀어 돈을 건넸다. 직원은 우리를 보았고, 아내와 아들은 웃었다. 다시 차문 위로 몸을 기울여 잔돈과 영수증을 받았다. 직원은 끝까지 우리를 지켜봤다. 가족은 대체로 이런 순간에 하나가 된다.
출발할 때 경고등이 많이 들어와 있었기에 아무 버튼도 누르기 두려웠다. 아들이 장난스럽게 버튼을 누르려 하자 손대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그 버튼이 창문이었다. 창문이 내려갔다. 혼내려던 말은 목에서 멈췄다.
“역시 내 아들이네.”
버튼은 기어봉 앞에 있었다. 일본은 가끔 논리 대신 상상력을 택한다. 이후 톨게이트를 지날 때마다 차 안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엔진은 680cc. 거의 오토바이와 대화하는 느낌이었다. 아무리 밟아도 80km를 넘기지 않았다. 덕분에 모두가 비슷한 속도로 달렸다. 고속도로라기보다는 ‘저속도로’에 가까웠다. 그래서인지 이상하게도 차는 밀리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숙소는 Settle Glocal Hotel.
이토시마에서 나름 존재감이 있는 호텔이라고 했다.
예상보다 고급스러웠다. 체크인하면서 1인당 200엔 세금을 추가로 냈다. 방에 들어가니 침대는 싱글 두 개. 초등학교 6학년 아들과 함께 온 여행이었다.
우리는 침대를 붙였다.
가족은 종종 가구 배치를 통해 결속을 다진다.
창밖은 레이크뷰라기보다는 농촌뷰였다.
고요했고, 한적했다.
나는 이런 풍경에서 인간이 조금은 겸손해진다고 믿는다.
아내는 직원한테서 호텔에서 100m 떨어진 대온천탕을 추천받았다고 했다. 호텔 카드만 있으면 무료라고. 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일본은 대체로 아기자기하고, 대체로 작다. 그러나 여행은 대개,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이야기를 준비해 둔다.
오늘 일본에서 배운 건 세 가지다.
출발 전 모든 버튼은 먼저 눌러볼 것.
차선은 항상 왼쪽이라는 것.
직진이 막히면 ‘좌바우크’를 외칠 것.
(좌회전은 바로, 우회전은 크게 회전)
나는 외쳤고, 그래도 몇 번은 틀렸다.
그래도 괜찮았다. 우리는 살아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