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이토시마) 5. 여행의 마지막은 늘 흐리다

일본 후쿠오카 렌터카 여행

by 남해바다

출발하던 날, 인천국제공항은 스모그로 가득했다.

회색의 공기를 뚫고 비행기가 이륙하던 순간, 우리는 이미 다른 계절로 건너가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여기의 공기는 사치품처럼 맑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무료 제공’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오늘은 날이 흐리다.

체크아웃을 하고, 후쿠오카로 넘어가 내일 한국으로 돌아간다. 여행의 마지막 날은 늘 이상하다. 계획은 없고, 시간은 애매하게 남고, 마음은 벌써 공항 의자에 가 있다.


오늘도 특별한 일정은 없다. ‘일단 나선다’는 계획 하나면 충분하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을 뿐이다.


가는 길에 규슈대학교 표지판이 시야에 들어왔다.

갑자기 학구열이 솟은 것은 아니다. 그냥 표지판이 보였을 뿐이다. 여행에서 방향은 늘 그런 식으로 정해진다.


아내는 말했다.

“일본 대학 앞에는 아무것도 없어. 공부만 해야 해.”


실제로 그랬다. 학교 말고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학문의 순도가 이토록 높다니. 술집 또한 인생을 배우는 또 다른 상아탑이거늘, 이곳 학생들은 도대체 어디서 인생의 쓴맛을 배운단 말인가.

실망 섞인 감탄을 하며 교정을 빠져나가는데, 아내가 외쳤다.

“스타벅스다. 어, 서점이네.”


어떤 사람은 위기 앞에서 본능이 먼저 움직인다. 아내에겐 그게 서점이다.


아내는 출판편집자다.

서점은 아내의 '성지'였다.

순례자의 표정으로 입장하고, 신도의 자세로 계산을 한다. 계란 한 판 가격은 따지면서도 책은 아무리 비싸도 아끼지 않는다.


이틀간 단련된 일본 운전 실력을 발휘해 망설임 없이 유턴했다. 결혼 생활에서 방향 전환은 빠를수록 좋다. 브레이크보다 핸들이 관계 유지에 훨씬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나는 경험으로 안다.

서점은 예상보다 컸다. 책들이 층층이 쌓여 있었다. 종이 냄새가 폐 깊숙이 들어왔다. 인간이 나무를 베어 지식을 만든다는 사실이 이렇게 낭만적으로 느껴질 줄은 몰랐다.

아들은 일본 만화책 앞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글자를 읽지는 못하지만, 그림은 읽는다.


평소 애니메이션을 즐겨 보는 덕분에 가요도 막힘없이 따라 부른다. 발음도 제법 그럴듯하다. 뜻은 모른다. 글자는 더더욱 모른다. 그냥 좋아서, 귀로 익힌 소리를 그대로 흉내 낼 뿐이다.


아내는 그런 아들의 등을 바라보다가 히라가나 그림책을 한 권 골랐다. 언젠가는 음으로만 알고 있던 노래를, 스스로 읽으며 부르게 될 날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그 가능성에 값을 지불했다. 카드는 조용히 승인되었다.

성장은 대부분 할부다.

한적한 도로, 바다, 흐린 하늘.

여행의 마지막 날 풍경은 늘 약간의 필터가 씌워진다. 곧 사라질 것이라는 사실이 모든 것을 선명하게 만든다.

마지막을 장식할 쇼핑을 위해 라라포트 후쿠오카로 향했다. 여행의 끝에서 우리는 늘 계산대 앞에 선다.


추억은 무료지만, 기념품은 유료다. 작년 도쿄에서 3만 원에 건진 패딩을 교복처럼 입고 왔는데, 올해 같은 브랜드에서 다시 3만 원을 주고 새 패딩을 샀다. 값은 같았지만, 기분은 새것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여행을 이어 붙였다.

3만 원짜리 패딩으로 갈아입고, 아내가 과감하게 결제한 30만 원짜리 방에 체크인했다. 숫자는 같았지만, '0'이 하나 더 있었다.


일본에서 이런 넓이는 처음이었다. 거의 스위트룸에 가까웠다. 대형 트렁크를 완전히 펼칠 수 있을 만큼은.


우리는 잠시 부자가 된 기분으로 소파에 앉았다. 다만 창밖은 논뷰가 아니라 빌딩뷰였다. 여행은 늘 한 가지씩을 남겨둔다. 완벽해지지 말라는 듯이.

렌트카를 반납하고, 포켓몬 센터를 방문했다.

이곳은 아들의 '성지'다.

아이의 눈은 반짝였고, 우리의 카드는 묵묵히 긁혔다. 가방은 점점 무거워지고, 마음은 이상하게 가벼워졌다.


아이가 게임을 하는 동안 나는 다리가 아파 매장 구석 바닥에 잠시 주저앉았다. 직원이 다가와 어디가 불편하냐고 묻자, 아내는 재빨리 “스미마셍”을 외치며 내가 큰 잘못이라도 한 사람처럼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나를 단단히 붙잡아 일으켜 세웠다.


그 모습은 낯설지 않았다. 이 여행 내내, 아내는 조금씩 더 일본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마지막 밤은 나의 '성지'인 이자카야에서 보냈다.

다만 성지라고 해서 자율권까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아내라는 관리자가 상주한다.


작은 접시들이 차례로 나오고, 맥주는 조용히 비워졌다.

그러다 기본 안주로 나온 생 양배추를 집어 들었다. 된장에 찍어 한 입 먹었는데, 이상하게도 멈출 수가 없었다. 아삭거리는 소리가 하루의 피로를 대신 씹어주는 듯했다.


“이거 한 번 더 달라고 할까?”


직원을 부르려는 순간, 아내의 손이 내 손목을 잡았다.


“여긴 공짜 없어.”


단호했다. 마치 국제 조약이라도 낭독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잠시 억울해졌다.
나는 여행자다.


여행자는 약간의 실수를 할 권리가 있다고 나는 믿는 편이다.

한국에서 외국인이 그런 부탁을 한다면 나는 아마 웃으면서 설명해줬을 것이다.


문화라는 건
원래 그런 식으로 배워가는 거니까.


하지만 아내는 일본에 오면 달라진다.


말수가 줄고,

표정이 신중해지고,

행동이 정교해진다.


예전에 이곳에서 살았던 기억 때문일까.

그녀는 관광객이 아니라,

잠시 귀환한 현지인처럼 군다.


나는 그게 조금 못마땅하다.
나는 배우러 왔는데,

아내는 이미 정답지를 가진 사람처럼 조심한다.


일본만 오면 아내는

안전벨트를 두 번 확인하는 사람처럼 변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그렇지 않다.


유독 여기서만,

모든 행동에 괄호를 단다.


나는 그럴 때마다 약간의 반항심이 생긴다.
모든 규칙을 정확히 지켜야 한다면,

그건 여행이 아니라 시험 아닐까.


여행에는

약간의 오답이 허용되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물론 결국

양배추는 추가되지 않았다.


대신 우리는

그 작은 충돌을 안주 삼아 맥주를 비웠다.


이상하게도

그런 사소한 마찰이

가족이라는 구조를 조금 더 또렷하게 만든다.


우리는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지만,

각자 다른 나라를

여행하고 있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여행은 늘 이렇게 끝난다. 조금 피곤하고, 조금 아쉽고, 생각보다 많이 행복한 상태로.

그리고 다시, 회색 공기 속으로 돌아간다.


대신 이번에는 안다.

맑은 공기를 한 번 마셔본 사람은,

다시 떠날 핑계를 이미 알고 있다.



짧은 여행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