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이토시마) 4. 정면보다 뒤편

일본 후쿠오카 렌터카 여행

by 남해바다

도자기 마을의 여운을 뒤로하고 우리는 식당을 찾았다. 역사는 무거웠고, 배는 가벼웠다.

이 균형을 맞추는 일은 언제나 중요하다.


나는 “간단한 걸로”를 주장했고, 아들은 스시를 외쳤다. 아내는 잠시 검색창을 응시하더니, 마치 분쟁 지역의 중재자처럼 결론을 내렸다.


“여기 어때? 해산물 돈부리 전문점, Trosaku.”

지도 앱 속 작은 점 하나가 우리의 운명을 결정했다. 문을 열자 종이 울렸다. 시골 일본 식당 특유의, 무심한 환영.


나는 튀김덮밥을,

아내는 도미 머리 조림을,

아들은 회정식을 주문했다.

튀김덮밥에는 친절한 설명이 따라왔다.

튀김을 먼저 즐기고, 나중에 밥에 육수를 부어 먹으라고 했다. 하나의 메뉴에 두 번의 인생이 주어진 셈이다.


도미 머리 조림은 점심 10개 한정.

‘한정’이라는 단어는 인간을 비이성적으로 만든다. 아내는 이미 승리한 표정이었다.


회정식은 청어, 광어, 참치가 각자의 표정으로 누워 있었다.

바다에서 막 건져 올린 것 같은 윤기.

아들은 그 앞에서 잠시 말을 잃었다.


아이가 조용해질 때, 부모는 안도한다.

도쿄나 오사카에서 먹던 일식과는 다른 종류의 맛이었다. 세련됨 대신 진심이 있었다. 반찬 하나하나가 ‘이건 내가 만들었다’고 말하는 느낌.


음식은 도시에서 브랜드가 되고, 시골에서 사람이 된다. 역시 맛집은 댓글이 아니라 배고픔과 우연이 결정한다.


오후 두 시.

숙소까지는 한 시간. 우리는 곧장 돌아가기엔 아직 여행자가 덜 된 기분이었다.

그래서 근처를 더 돌아보기로 했다.


구글에서 발견한 이름, Zwinger Palace.

독일 드레스덴의 바로크 건축물인 츠빙거 궁전을 떠올리게 하는 이름이었다.


일본 산골에서 독일 궁전이라니. 여행은 이런 농담을 아무렇지 않게 던진다.

어설프게 흉내 낸 곳이면 실망만 남을 것 같아 잠시 망설였다. 그래도 마땅한 목적지가 없다는 이유로, 우리는 그 농담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내비게이션은 또다시 모른다고 했다. 모르는 길은 늘 약간의 기대를 품게 한다. 산속으로 접어들자 시야가 갑자기 트였고, 넓은 공터가 나타났다. 그리고, 생각보다 그럴듯한 궁전이 서 있었다.


나중에 알았다.

이곳의 정확한 이름은 이마리 포세린 테마파크였다. 네비가 길을 잃은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일본의 하늘 아래, 독일의 흉내를 낸 성.

설명이 없으면 꿈이라고 믿을 풍경.


우리는 잠시 유럽 관광객이 된 기분으로 산책했다. 사진을 찍고, 광각으로 찍고, 괜히 멀리 서서도 찍었다. 성 내부는 전시관이었지만 오래 닫혀 있는 듯했다. 화려함과 적막이 함께 있었다.

성 뒤편으로 돌아갔을 때, 진짜 이유가 나타났다.

공원을 관리하던 아주머니가 아내에게 말했다.


“저쪽은 뱀이 나와요.”


우리는 잠시 멈췄다.

아내와 아들은 돌아가자고 했다.

나는 그냥 궁금했다.


뱀도 보이지 않았고, 뒤편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갔다.

걷다 보니 멀리 길게 누운 돌담 같은 것이 보였다.

허물어진 성벽의 일부인가 싶었다.

사진을 찍을 만한 각도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자, 낮은 안내문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가마.’

도자기를 굽는 그 가마였다.


그리고 그 아래에 적힌 이름.

이삼평.

순간, 풍경의 해상도가 달라졌다.

방금 전까지는 유럽을 흉내 낸 일본의 궁전이었는데, 이제는 조선에서 건너온 한 사람의 시간이 누워 있는 자리였다.


구글 사진에도, 후기에도 이 가마 이야기는 없었다. 다들 성의 정면만 찍고 돌아간 모양이었다.


우리는 뱀 경고를 무릅쓰고 뒤편으로 간 덕분에

엽서가 아니라 각주를 발견한 셈이다.


약 100미터에 달하는 가마는 복원된 것이었다.

원래의 불은 이미 꺼졌겠지만,

그 불을 기억하려는 형태만은 길게 남아 있었다.


유럽의 살롱을 장식했을 접시들의 시작이

이 산속 어딘가였다는 사실이,

그제야 실감 났다.


기술은 이동했고, 그릇은 건너갔고, 이름은 남았다.


이삼평.


그는 조선에서 건너온 도공이었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바다를 건넜고, 이 땅에서 흙을 만졌다.


그 이동이 강제였는지, 선택이었는지는 기록마다 다르다.

이곳에서는 일본 도자의 시조로 기려지지만,

바다 건너에서는 조국을 떠난 사람으로 기억된다.


같은 이름이, 서로 다른 역사 위에 놓여 있다.


그의 손끝에서 시작된 기술은 지금도 그릇에 남아 있지만,

그가 어떤 마음으로 가마 앞에 섰는지는 남아 있지 않다.


우리는 완성된 도자기를 바라보지만,

그 선택의 무게까지 함께 굽지는 못한다.


유럽 건축물을 보러 왔다가, 가마를 발견하고, 그 안에서 한 사람의 이름을 다시 만났다.

우리는 정면이 아니라 뒤편에서 시간을 만났다.

사전 정보를 모두 알고 오는 여행은 시험 준비와 비슷하다. 현장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여행은 소설에 가깝다. 전자는 암기이고, 후자는 장면이다.


궁전은 사진 속에 남겠지만,

가마는 기억 속에 남는다.


소주 한 잔과 온천을 핑계로 떠난 여행에서

기억에 남은 것은 우리가 일부러 찾지 않은 것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