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9. 소통의 길

코타오는 길이 하나다.

by 남해바다

이 섬엔 복잡한 사거리도, 방향을 고민하게 만드는 갈림길도 없다. 길은 단순하고, 목적지도 명확하다. 그래서일까. 섬을 좌우로 한두 번만 왕복하면, 어제 본 사람을 오늘도 다시 만난다. 거리에서 스쳐 지나며 하이파이브를 건넨 사람이, 저녁 무렵엔 해변 카페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다. 또 어느 날은 해변 산책로에서 잠깐 마주친 그가, 다음 날 다이빙 샵에서 강습을 받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렇게 사람들은 우연처럼 자꾸 겹친다. 그러나 이건 어쩌면, 같은 길 위에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섬의 구조처럼, 이곳에서의 관계도 단순하다. 이름을 묻지 않아도, 연고를 따지지 않아도 된다. 목적은 달라도 방향은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에 대한 이해관계가 없기 때문에, 인간관계의 본질적인 피로감이 없다. 그냥 ‘그 순간을 같이 지나간 사람’이라는 사실 하나로 충분하다.


낯선 여행자들과의 이런 소통은,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늘 부담스러워하던 내게는 참으로 낯설고 따뜻한 경험이었다. 섬이 작기 때문에 오히려 마음의 거리는 넓어졌다. 그리고 처음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냥 함께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



사실 나는 오랫동안, 사람 사이에 놓인 복잡한 골목들을 헤매 왔다. 어떤 길은 처음엔 환하게 빛나 보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미로처럼 얽히고설켰다. 더 잘 이해하려고 할수록 오히려 길을 잃었다. 그 미로 끝에서, 나는 종종 “이해받지 못했다”는 감정과 “내가 다가갈 수 없다”는 거리감 사이에서 방황했고, 결국엔 나만의 길로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하지만 그 외로움은 또다시 새로운 골목으로 나를 이끌었다. 누군가를 다시 이해해보려고, 나도 이해받아보려고.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길을 기웃거리며 걸었지만, 종착지는 대개 막다른 골목이었다. 이런 내게 꼬따오는 하나의 질문이자, 작은 위로였다.


"길이 하나뿐일 때, 우리는 누구와 어떻게 마주하게 되는가?"


꼬따오의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은, 결국 그 누구도 나를 설명하라 하지 않았고, 내가 그들을 이해하길 바라지도 않았다. 그들은 그저 같은 리듬으로 섬을 걷는 동행일 뿐이었다. 우연이 반복되면 운명이 되듯, 이 작은 만남들은 내게 ‘함께 걷는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묻게 했다.

소설가 밀란 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이해받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스스로를 이해하는 법을 배워가는 존재다.”


코타오에서의 그 단순한 길 위에서 나는, 더 이상 애써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은 관계, 굳이 애쓰지 않아도 따뜻한 거리감을 처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 복잡하게 얽힌 마음의 미로에서 잠시 벗어나, 그냥 ‘같은 길을 걷는 존재들’로 존재할 수 있었던 시간.


그건 분명, 내 안의 또 다른 섬 하나가 열리던 순간이었다. 차라리 가슴으로만 통하는, 다른 행성의 사람들이 더 편할 수도 있겠다고. 적어도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려 하기보다 존재 그 자체를 인정하는 방식으로 관계를 시작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