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13. 내가 원하는 건

아직 끝나지 않은 이 길 위에서

by 남해바다

그녀와의 여행은 목적지가 아니라, 삶을 향해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을 향해 나아간 시간이었다. 태국 남부의 강렬한 태양 아래서, 우리는 매 순간 길을 잃었다가, 다시 찾고, 또 잃었다. 예측 불가능한 로컬버스의 정차처럼, 우리의 감정도 멈췄다가 출발하길 반복했다. 그리고 그 끝에서 마주친 문장 하나.


도대체 당신이 원하는 게 뭐요?



혼자 걷는 길은 자유로웠다.


방콕의 흐린 아침, 목적지도 없이 지하철을 타고 종점까지 갔다.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에 멍하니 시선을 두다가, 어떤 역에서 문득 내렸다. 비에 젖은 담배 연기 냄새가 코끝을 스쳤고, 나는 커피 한 잔을 들고 낡은 벤치에 앉아 사람들의 발걸음을 오래 지켜봤다. 아무도 나를 궁금해하지 않았고, 나 역시 누구에게도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뮌헨의 한적한 골목에선, 허름한 간판 불빛에 이끌려 들어간 작은 술집에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옆자리 노인이 들려주는 인생 이야기는 잘 알아듣지 못했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다. 그날 밤, 작은 호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다가, 그냥 그렇게 흘러가는 나를 느꼈다.

파리의 겨울밤, 센 강 다리 위에 서서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한참이나 있었다. 그 강 너머의 불빛은 아름다웠지만, 마음 한구석엔 이름 붙일 수 없는 허기가 있었다. 그건 아무도 채워주지 못할 종류의 공허함이었다.

혼자였기에 멈추고 싶을 때 멈출 수 있었고, 한없이 걸어가고 싶으면 그만큼 걸었다. 모든 결정은 오로지 나의 몫이었다. 머무를지 떠날지, 무엇을 먹을지, 어떤 감정에 머무를지도 내 마음대로였다.


그 자유는 분명 짜릿했다. 원하는 만큼 머물고, 원하는 만큼 떠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자유는 동시에 잔혹했다. 아무도 나에게 괜찮냐고 묻지 않았고, 눈물이 흘러도 닦아줄 사람은 없었다. 길을 잃었을 때, 나를 붙잡는 손은 오직 내 손뿐이었다.


그 고독은 내 안의 가장 솔직한 얼굴과 마주하게 해 주었다. 길을 잃는 순간마다 조금씩 새로운 나를 발견했고,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감정에 몸을 맡기며 점점 단단해졌다. 말 걸어줄 사람은 없었지만, 대신 내 안의 목소리를 더 뚜렷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혼자라는 외로움이었지만, 동시에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가장 순수한 여행의 형태였다.


함께 걷는 길은 달랐다.


낯선 공항에서, 습한 골목에서, 처음엔 서로를 살피느라 걸음이 어색했다. 그녀는 내 뒤를 따라오며 주변을 둘러보고, 나는 한 발 먼저 나아가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다 조금씩, 발걸음이 나란히 맞아갔다. 빠르면 멈춰 기다리고, 지치면 자연스레 속도를 늦췄다. 어느새 우리만의 리듬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때로는 파도 소리보다 더 고요한 침묵이 있었고, 그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리듬으로 그리고 아무 말 없이도 서로를 이해했다.

같은 골목을 헤매던 어느 오후, 길을 잘못 들어 웃음이 터졌다. 혼자였다면 짜증 났을 수도, 그녀와 함께라면 작은 사건이자 기억이 되었다. 같이 음식을 먹으며 나눴던 작은 차이들도 소중했다. 맵고 강한 맛을 즐기는 나와, 담백한 맛을 고르는 그녀. 서로의 접시에 음식을 덜어주며 “이건 네가 더 좋아할 거야”라고 말할 때, 음식은 단순한 끼니가 아니라 서로를 알아가는 언어가 됐다.


가끔은 지쳤고, 작은 불만이 차올랐다. 그러나 그 순간마다 삼키고 다시 마주 보는 법을 배웠다. 피곤한 표정 속의 묵묵한 배려,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작은 숨결. 그렇게 우리 사이에는 혼자서는 도달할 수 없었던 감정의 층위가 생겨났다.

함께 걷는 길은 단순히 나란히 걷는 일이 아니었다. 같은 풍경을 보고, 같은 속도로 움직이고, 때로는 같은 감정에 머물렀다. 어디서 멈출지, 무엇을 바라볼지, 모든 것이 더는 혼자의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 풍성했다. 혼자였다면 지나쳤을 순간도, 함께라면 머물 이유가 생겼다. 길을 잃어도 괜찮았다. 그 길 위에서 주고받는 짧은 시선, 건네는 물 한 모금, 뜻밖의 풍경에 나누던 소소한 감상. 그 모든 순간이 우리를 조금씩 더 가깝게 만들었다.

며칠을 함께 걸으며 나는 깨달았다.
그녀와 함께라면 어떤 풍경도 새로워지고, 어떤 실수도 결국 이야기가 된다는 걸.


돌아보면, 내가 정말 원했던 건 멈추지 않는 경험이었고, 그 안에서 서서히 변해가는 우리였다.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 길 위에서, 앞으로도 그녀와 계속 걸어가고 싶다는 걸.


그것이, 내가 가진 가장 솔직한 대답이었다.

그리고 그 대답은, 나에게 더없이 소중한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