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 흘러 피피섬으로
그 선택의 첫 장면은 12월의 인천공항이었다.
찬바람이 목덜미를 파고드는 한겨울.
나는 반소매와 반바지, 그리고 크록스 한 켤레만으로 여행을 준비했다. 그녀 역시 내 말대로, 등에 가벼운 배낭 하나만 메고 나타났다. 겨울의 무게는 공항에 두고 가기로 했다.
세탁소 대신 출입기자실 구석에 옷가지 몇 벌을 툭 던져두고, 그렇게 그녀와 나는 이 여행의 첫 페이지를 열었다.
그녀와 나는 각자 따로 끊은 항공권을 손에 쥐고 있었다. 방콕에 들어가 푸켓에서 나오는 일정만 정해진 상태. 그 사이 어디를 거칠지, 어떤 길을 따라갈지는 나도 알 수 없었다.
“어디로 가는 거예요?”
그녀가 물었다.
“아직 몰라요. 가면서 생각해보려고요.”
말투는 짧고 건조했다. 괜히 길게 설명하는 게 성격에 맞지 않았다. 그런 내 모습에 그녀는 조금 놀라듯 보였다.
그녀는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 눈빛엔 단단함과 어딘가 흔들리는 불안이 교차했다.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스스로를 다잡는 듯했다. 완벽하지 않은 출발임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그 사실을 입 밖에 내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불안을 굳이 들여다볼 생각은 없었다. 무계획은 나의 확신이었고, 그녀는 그 방식에 조용히 맞춰주길 바랐다.
입국 심사를 마치자마자, 그녀는 푸켓 여행 가이드를 꺼냈다. 단정히 접힌 책갈피, 형광펜 자국들. 그 책은 그녀가 얼마나 이 여행을 준비했는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그녀가 조용히 책장을 넘기는 동안, 나는 주변 사람들의 표정과 움직임을 느긋하게 관찰했다. 공항의 소음과 분주함 속에서, 그녀의 신중함과 내 느슨함이 뚜렷이 대비되었다. 그 차이가 여행의 불확실함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 책을 펼쳐볼 생각이 없었다. 책 없이도 충분하다는 믿음은, 여러 나라를 떠돌며 내 안에 자리 잡은 하나의 확신이자, 계획보다 흐름에 몸을 맡기겠다는 오래된 습관이었다.
유럽여행에서 처음엔 나도 책을 들고 다녔다. 그러나 책 속의 장소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절반은 같은 책을 든 한국인이었다. 결국 그 책을 쓰레기통에 던진 뒤, 내 여행은 달라졌다. 지도가 아니라 발길을, 정보가 아니라 기척을 믿기로 한 것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푸켓은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에요.”
그녀가 조심스레 말했다. 숨결이 살짝 떨렸고, 눈동자가 은은하게 빛났다. 말끝을 흐렸지만, 기대가 담겨 있었다. 그 기대까지는 무너뜨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푸켓을 향해 방향을 살짝 잡았다. 단, 가다가 어디든 향할 수 있다는 여지는 남겨두었다.
밤 11시, 방콕 수완나품 공항.
그녀와 나는 숙소를 정하지 못한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녀가 고개를 갸웃하며 조용히 물었다.
"지금 카오산 가면 안 돼요?"
그건 단순한 질문이 아니었다. 여행의 첫 방향을 스스로 잡으려는 시도였다. 그녀는 말끝을 흐리며 눈치를 보았다. 하지만, 카오산 로드로 가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설령 간다 해도 푸켓으로 가는 길은 더 복잡해지고, 내 성격상 다른 곳으로 빠질 가능성도 높았다.
그녀가 푸켓을 말한 순간부터, 나는 그곳을 계속 의식했다. 혼자였다면 스쳐 지나갔을 이름이었다. 나에겐 아무 의미 없던 시간과 장소가, 이제는 그녀의 말 한마디에 무게를 얻고 있었다.
나는 아침 7시 푸켓행 국내선 비행기를 확인하고 말했다.
“공항에서 밤 새우시죠.”
내 대답엔 설명도, 배려도 없었다.
그저 결과만 내뱉는 방식, 늘 그랬다.
그녀는 내 얼굴을 오래 바라봤다. 불안과 의심, 그리고 어쩔 수 없는 믿음이 얽힌 눈빛.
'어디로 끌려가는 걸까? 이 남자를 정말 믿어도 될까?'
이제 겨우 네 번째 만남이었다. 잘 모른는 남자와의 동행은, 그녀에게 모험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선택지는 없었다.
결국,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바닥에 배낭을 베고 누웠고, 그녀는 의자에 앉아 손에 쥔 휴대폰을 몇 차례 켰다 껐다를 반복했다. 손끝이 떨리고 눈빛이 불안으로 무거웠다. 무심한 듯 행동하지만, 그 작은 동작마다 마음이 드러났다. 혼란과 결심이 뒤섞인 미묘한 흔들림이, 말보다 더 진하게 그녀의 내면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순간, 오래된 여행 경험과 확신이 조금 무겁게 다가왔다. 그녀를 이끌어야 한다는 책임감이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이 내가 앞에 서야 한다는 자각이 스쳤다. 불안해도, 피곤해도 내 페이스에 맞춰줄 거라는 믿음. 그게 바로 ‘함께’라는 의미라고 생각했다.
멀리서 들려오는 방송 소리와 출입문 자동센서의 움직임, 낯선 언어들이 공기처럼 흘러가는 그 공간 속에서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런 그녀를 가만이 두고.
새벽 2시.
눈을 뜨자, 그녀는 추위에 떨면서 책을 읽고 있었다. 그제야 내가 너무했나 싶었다. 내 기척을 느끼고 그녀는 입을 열었다.
“혹시 근처에 편의점이라도 있을까요? 조금이라도 몸을 녹이고 싶어요.”
스스로 상황을 감당하기 위한 작은 제안이었다.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혼자라면 절대 들어가지 않았을 스타벅스를 찾았다.
따뜻한 카페라떼 두 잔을 주문했다. ‘이 돈이면 숙소 하나는 잡겠는데’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렇게 비싼 커피 두 잔으로 무언가를 만회하고 싶었던 걸까. 나는 소파에 몸을 던졌고, 그녀는 테이블에 엎드려 조용히 잠들었다. 그 순간에도 나는 여전히 내 편의가 우선이었다.
아침.
빛이 로비 바닥을 부드럽게 물들였다. 그녀의 얼굴에는 피로가 깃들었지만, 어딘가 달라진 기운이 있었다.
불편함을 견디는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표정.
나는 그 안에서 배낭여행자의 얼굴을 보았다.
푸켓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버스 타죠.”
내 말은 상대를 안심시키는 법이 없었다.
그녀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다른 여행자들은 ‘환영 플래카드’를 들고 마중 나온 기사와 호텔로 향했지만, 우리는 목적지도 없는 버스를 찾아 헤맸다. 그녀의 표정에 당혹이 번졌다.
"택시타면 안되나요?"
나는 표지판도, 시간표도 없는 길을 좋아했다. 혼자일 때는 그것이 자유였다. 그런데 그날, 나는 느닷없이 택시를 잡았다. 혼자라면 결코 하지 않았을 선택. 그 순간, 내가 지켜온 원칙에 작은 금이 가기 시작했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그건 아직 누군가와 발맞춰 걷는 동행이라 부르기엔 멀었고, 누군가를 위해 속도를 늦추는 다정함이라 하기에도 부족했다.
그저, 내 여행 가방 위에 낯선 짐 하나가 살짝 얹힌 듯한 느낌. 그 정도였다.
“가까운 항구로 가주세요.”
나의 독단적인 결정에 그녀는 더 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창밖 풍경은 무심히 스쳐갔다. 그녀는 차창에 손가락을 대고 떼기를 반복했다. 작은 움직임이 스스로를 붙잡기 위한 끈처럼 보였다. 몇 차례 내 쪽을 바라봤지만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아무 말 없이 따라오면서도, 그녀는 계속 자신의 자리를 확인하고 있었다. '가까운 항구'가 어디인지, 왜 가는지 모른 채 막막함과 조심스러운 의지가 뒤섞인 눈빛이었다.
회색 하늘, 적막한 항구, 내리는 비.
택시 기사는 배표를 사오겠다며 어디론가 뛰어갔다. 잠시 뒤, 그는 젖은 티켓을 들고 돌아와 400밧을 요구했다. 나는 어떤 목적지를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빨리 다음으로 넘어가고 싶었다.
"비가 이렇게 많이 오는데, 배를 타도 괜찮나요?"
나는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그녀는 말없이 몸을 움츠린 채, 잔잔한 불안과 무거운 생각을 품은 듯 조용히 앉아 있었다.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배처럼, 어딘가 붙잡을 곳 없이 흔들리는 모습이었다. 그 안에는 이 여행의 끝이 어디일지, 이 시작이 내가 바랐던 것인지, 그리고 만약 되돌아간다면 다시 혼자가 될 것이라는 무거운 생각들이 스며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가는 곳이 어떤 곳인지 몰라도
진짜 여행은 지금부터라는 걸.
바다 위를 스치며 불어오는 바람이, 그녀의 굳은 표정을 조금씩 부드럽게 풀어주고 있었다.
하늘은 천천히 파랗게 개어갔고, 그녀는 몇 번이나 내 옆을 힐끗 바라봤다. 안도의 숨을 내쉬어도 괜찮은지 묻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녀는 조용히 바다를 찍었다. 몇 번의 셔터 끝에 그녀는 처음으로 웃었다. 누구의 안내도 아닌, 스스로 바라본 풍경 앞에서였다.
그 웃음은, 조금씩 마음의 빗장을 열어가는 신호 같았다.
수많은 배낭여행자들 사이를 헤치며 우리는 피피섬에 닿았다. 나도 처음 마주하는 섬이었다.
배에서 내려 좁은 골목을 걸을 때, 마침내 그녀의 입에서 탄성이 터졌다.
“이런 데가 있을 줄 몰랐어요. 오길 잘한 것 같아요.”
그 말은 여행의 긴장과 불확실함을 잠시나마 내려놓았다는 증거였다.
공항에서의 밤, 푸켓의 택시, ‘가까운 항구’.
그 모든 불확실함 속에서, 그녀는 마침내 가벼운 발걸음을 내디뎠다.
무계획의 여행이 선사하는 예측 불가능한 기쁨.
그 아슬아슬한 자유가, 그녀의 얼굴에도 조금씩 스며들고 있었다.
나는 원래 혼자 여행하는 사람이었다.
가장 친한 친구와도, 낯선 여행 동행과도 수없이 부딪혔다.
보고 싶은 풍경과 길, 먹고 싶은 음식, 사진 찍는 속도까지.
하루에도 몇 번씩, 작은 차이들이 서로를 긁어댔다. 자유를 찾아 떠난 여행이 누군가와 함께하는 순간부터
협상과 양보의 연속이 된다는 사실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혼자 떠나는 편이 훨씬 자유롭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공항에서 밤을 새울 때도, 방향 없는 표지판 앞에서도 그녀는 불안과 어색함을 감춘 채, 불평 한마디 없이 내 옆을 지켰다. 때로는 작은 미소를 지으며, 말없이 내 속도를 맞추려 애쓰는 듯했다.
그 무언의 배려가 내게 닿았다.
그날, 좁은 골목 어귀에서 그녀가 걸음을 늦췄다.
햇빛이 벽돌 담장을 타고 흘러내려, 그녀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다. 발끝이 바닥의 요철을 가볍게 더듬자, 그녀는 리듬을 타듯 골목의 굴곡을 따라 걸었다.
나는 무심코 그 속도를 맞추며 옆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저 앞서 끌고 가던 발걸음이, 어느새 옆에서 박자를 맞추고 있었다.
그 조용한 전환이 내 안에서 긴 울림처럼 퍼졌다.
그 순간 처음으로 생각했다.
'이 여행은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니구나.'
그녀는 단순히 따라오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방식으로 낯선 공간을 자기 세계로 바꾸어가는 사람이었다.
그 깨달음이 내 안에 작은 균열을 만들었다.
그 후로 나는 그녀의 발걸음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낯설고 어색했던 그녀의 속도가 어느새 내 심장 박동처럼 느껴졌다.
혼자일 때 누리던 자유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
그 틈 사이로 그녀가 조용히 들어서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다시 골목,
이번엔 그녀가 조심스레 말했다.
“이 골목, 분위기 참 좋아 보여요. 한번 가볼래요?”
나는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그 길을 함께 걸었다.
이건 더 이상 내가 끌고 가는 여행이 아니라, 서로의 숨결에 귀 기울이며 속도를 맞추는 여행이었다.
팔 끝에 살짝 스치는 그녀의 피부 결이, 낯설지만, 새로운 감각을 남겼다.
책임과 압박으로 시작했던 동행은, 이제는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는 길벗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서로 다른 중심과 리듬이 맞닿아, 더 이상 나 홀로의 여정이 아니게 된 것이다.
그 변화는 조용하지만 확실했다.
나는 조금씩 ‘함께’ 걷는다는 의미를 배우고 있었다.
여전히 나만의 방식은 유지되고 있었다.
비행기는 따로 끊었고, 식사도 반반씩 나누었다.
이 구조는 사실상 내가 만든 틀이나 다름없었다.
출발 전, 그녀가 환전을 얼마나 해야 하냐고 물었을 때, 나는 주저 없이 말했다.
“30이면 충분해요.”
그건 내 방식의 30이었다. 최소한의 예산, 최대한의 집중. 불필요한 소비는 자유를 해친다고 믿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지갑에 넣어둔 300달러는, 몇 년째 봉투 그대로였다.
돈이 많아지면 느슨해진다. 버스를 놓치면 택시를 타고, 리조트를 찾아 헤매며, 입소문이 아닌 검색어를 쫓게 된다. 그건 여행이 아니라 소비다. 피로한 쉼, 과잉의 휴식. 속을 채우기보다는 오히려 허기를 키운다.
그래서 30이었다. 내게 여행은 그런 식으로 유지돼야 의미가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그녀가 있었다. 그 사실이, 모든 걸 조금씩 어긋나게 했다. 어쩌면 나는 모른 척하며 내 방식을 고수했고, 그녀는 별말 없이 발맞췄다.
그녀 역시 딱 30만 원만 환전했다. 믿음인지, 무모함인지 알 수 없었다. 어쨌든 출발선은 같았다. 다만 나는 비상금 300달러를 품에 품고 있었기에, 나름의 선심도 썼다.
방콕 공항 스타벅스 라떼, 푸켓 공항 택시비, 배삵까지.
그런데 묘하게도,
모든 비용을 반반씩 부담하면서도 마음 한편에 여유가 생겼다.
혼자라면 절대 안 들어갔을 식당,
혼자라면 시키지 않았을 메뉴,
혼자라면 망설였을 숙소.
‘함께’는 그렇게 균형을 흔들고, 기준을 넓혔다.
혼자였다면 1만 원도 아깝다며 더 외지고 더 허름한 곳을 찾았겠지만,
그녀가 있으니 사람 사는 동네로 타협했다.
그렇게 첫날 밤, 우리는 1박에 3만 원짜리 방에 묵게 됐다.
중심가였고, 나름 아늑했다. 약간은 설렜다.
트윈 침대를 부탁했건만, 침대 두 개는 나란히 붙어 있었다.
낯선 공간 속, 묘하게 뜨거운 침묵, 어색한 거리.
나는 말없이 침대 사이를 벌렸다.
대략 10센티미터쯤.
찌질함과 배려 사이에서 최대한 품위 있게 고안한 간격이었다.
그녀는 그걸 보더니 피식 웃었다. 그 웃음엔 ‘뭐 하는 거지?’ 같은 기색이 섞여 있었지만, 나는 못 들은 척했다.
그녀와 나는, 아직 손을 잡기에도 어색한 사이.
그러니까, 그 정도 거리쯤이면, 충분한 설명이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괜히 가방을 풀었고, 그녀는 창밖을 바라봤다. 눈동자는 멈춰 있었지만, 시선은 자꾸 어딘가를 맴도는 것 같았다. 긴 침묵이 흘렀고,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이 정도면 괜찮은 것 같아요.”
그건 내 계획에 대한 동의라기보다는, “이 정도면 나도 참는다”는 그녀의 내적 기준 같았다.
그 순간, 문득 스쳤다.
이 여행은 어디쯤 와 있는 걸까.
처음부터 흐릿했고, 목적지는 없었다.
그저 흐르고 있었다.
거리도, 관계도.
간이 식탁에서 음식을 먹고, 모래 위에 누워 바닷바람을 느꼈다. 그녀는 하루만에 완전히 여행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처음의 긴장은 사라지고, 작은 일에도 쉽게 웃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조금 더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라면 절대 들어가지 않았을 여행사에 발을 들였다.
섬 투어, 비밀 해변, 스노클링, 가벼운 트래킹.
처음엔 ‘굳이 이런 걸 해야 하나’ 싶던 내 안의 옹졸함이, 어느새 ‘함께라면 해보고 싶다’로 바뀌어 있었다.
밤이 되자 맥주가 시원했고, 식탁은 풍성했다. 전날 공항 바닥에서 웅크리고 있던 우리가, 그 밤에는 태국에서 가장 부유한 배낭여행자가 된 것 같았다.
남은 건 내일의 숙소뿐이었다. 비싼 숙소를 구할 이유도, 그럴 마음도 없었다.
오늘을 충분히 즐기고, 내일을 가볍게 맞이하는 것.
그녀도 그걸 알고 있는 듯했다.
그녀가 웃었다.
그 웃음은 "어디든 괜찮아"라는 말보다 더 단단했고,
"함께니까"라는 확신에 가까웠다.
어디로 가든, 무엇을 하든, 이제는 그 선택이 덜 두려웠다.
처음으로, 여행의 방향이 아니라, 곁에 있는 사람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해가 완전히 뜨기 전, 피피섬의 좁은 골목을 따라 걷는다.
모래가 눌어붙은 길을 맨발로 디뎠다.
오늘은 투어를 가는 날.
어제 밤, 바닷속 물고기를 보고 싶다는 그녀의 말에, 나는 무심하게 "좋아요"라고 답했지만, 사실 걱정이 앞섰다.
우리를 태운 배가 바다로 나아갔다.
배에 오른 이들의 표정은 달랐지만, 눈빛은 닮아 있었다. 기대와 설렘, 약간의 불안.
첫 번째 정류지에서 스노클링이 시작됐다.
누구 하나 구명조끼를 찾는 사람은 없었다. 이곳의 룰은 안전보다 모험, 규칙보다 자유다.
구명조끼는 딱 두 개. 정말 위급할 때 쓰는, 말 그대로 ‘구조용’.
그녀에게 물었다.
“처음인데 구명조끼 없어도 괜찮겠어요?”
그녀는 대답 대신 바다를 바라봤다.
“실내 수영장에서 수영 좀 했었어요. 괜찮을 거예요.”
하지만 나는 망설였다. 그 ‘괜찮다’는 말 뒤에 감춰진 불안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실내 수영장이랑 여기랑은 완전 달라요. 진짜 괜찮아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시선은 바다 아래를 향해 있었다.
어린아이들도 맨몸으로 뛰어드는 바다였다.
그것이 오기였는지, 자존심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먼저 뛰어들었다.
물속은 순식간에 귀를 막고, 살을 덮었다. 초록빛 산호 아래로 물고기들이 느리게 움직였다.
나는 수면 위로 올라와 그녀에게 손짓했다.
그녀는 선 채로 숨을 고르고 있었다.
무릎을 굽히고, 몸을 움츠렸다가 마침내 뛰어들었다.
"푸악!"
수면 위로 머리가 떠오르는 순간, 그녀가 숨을 내뱉었다.
그런데 그녀의 눈이 흔들렸다. 순간, 중심을 잃은 몸이 물 위에서 떠밀렸다.
짧게, 빠르게 끊어지는 호흡.
얼굴은 점점 물에 가까워졌다.
나는 재빨리 헤엄쳐 다가갔다.
손끝이 그녀의 팔을 붙잡는 순간, 그 떨림이 내 몸을 통과했다. 낯선 공포가 물처럼 스며들었다.
"괜찮아요. 나 잡아요."
내가 그녀의 어깨를 잡자, 그제야 눈이 나를 찾았다.
곧 스태프가 다가와 그녀를 배로 끌어올렸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바닥에 앉아 떨고 있었다.
그녀에게 그 바다는 단순한 물이 아니었다.
처음 마주한 ‘깊이’는, 어둠 그 자체였다.
그때 나도 그랬다.
인도네시아, 길리 트라왕안.
모두가 구명조끼 없이 바다로 뛰어들었다.
수영 한 번 제대로 배운 적 없는 나도, 따라 뛰었다.
무모했지만, 바다 속을 보고 싶었다.
발끝이 닿지 않는 바다 한가운데.
푸른 공포가 발 아래로 끝도 없이 펼쳐졌다.
그 깊이 속에서, 바다거북과 나란히 떠 있었던 순간,
숨이 멎는 공포와 숨 막히는 경이 사이.
그게 내가 처음 만난, 바다의 진심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구명조끼를 입지 않았다.
두려움 없이 바다와 맞서는 대신, 그 깊이를 고스란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바다의 무게는, 내가 살아 있음의 증명이었다.
오늘 그녀도, 그 문 앞까지 갔다.
하지만 아직은, 준비되지 않은 세계였다.
관계도 바다와 닮아 있다.
발끝쯤은 누구나 담글 수 있다.
하지만 깊이에 몸을 맡기려면, 용기와 신뢰가 필요하다.
그녀는 지금, 그 경계에 서 있었다.
나는, 그것을 느꼈다.
투어는 계속됐다.
섬들을 돌고, 해변에 누워 햇살을 맞았다. 그녀의 얼굴은 점점 풀렸다. 햇살과 바람이 그녀를 감쌌다.
해는 기울고, 바다는 서서히 어두워졌다.
마지막 코스는 바다 한 가운데 고래상어 포인트.
가이드는 “오늘은 운이 좋아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고래상어는 거대한 신비였다. 현실과 환상 사이, 보이지 않는 그 경계에서 조용히 숨 쉬는 존재 같았다. 나는 그 존재가 이 여행의 불확실함 속에서 찾고 있던 ‘의미’나 ‘끝맺음’일 거라 마음속으로 기대했다. 마치 이 바다 깊은 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삶의 한 조각 같은 진실 말이다.
그녀가 조심스레 내 팔을 붙잡았다.
손끝에 닿은, 미세한 떨림이 전해졌다.
나는 순간 무심한 척하며, 눈길을 피했지만 속으로는 얼떨떨했다.
지금껏 나를 막은 사람도, 걱정해준 사람도 없었다.
“괜찮아요.”
그녀가 스노클링 전에 했던 그 말,
내가 그대로 되풀이하고 있었다.
내 대답은 짧고 딱딱했지만,
그게 내 방식의 ‘걱정’이었다.
구명조끼도 없이, 한참을 헤엄쳤다.
물은 차갑고 깊었다.
숨은 얕아지고, 시야는 흐려졌다.
바다 아래에서 매 순간 방향을 잃을까 두려웠다.
고래상어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환상은 물속 어딘가에서 조용히 사라졌고, 그 자리를 채운 건 정적이었다.
돌아왔을 때, 바다는 이미 검푸른 잉크처럼 퍼지고 있었다. 몸은 젖은 돌처럼 무거웠고, 사지가 저려왔다.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등골을 타고 한기가 스며들었다.
그런데도 마음 한켠이 놓였던 건,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멀리서도 선명하게 느껴졌던 그녀의 시선, 그건 나를 비추는 등불 같았다.
초등학교 시절 소풍에서 길을 잃고 한참을 울며 헤매던 나. 그리고 멀리서 두 팔을 벌리고 나를 부르던 엄마의 모습. 그 순간 가슴 속 깊이부터 퍼져 나왔던,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도 단단한 안도감.
그때 느꼈던 그 뜨거운 안심이,
지금 이 바다 한가운데서 다시 피어올랐다.
그녀는 아직 내게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눈빛만큼은 분명했다.
‘괜찮아, 나는 여기 있어’라는 말 없는 약속처럼.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이 깊고 넓은 바다 한가운데서,
나를 떠받치는 따뜻한 부력으로 다가왔다.
결국 보이지 않는 것을 좇았던 나는,
정작 곁에 있는 존재가 나를 구해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현실은 때로 무뎌 보이지만,
위기 속에서 비로소 단단한 실체로 드러난다.
그녀는 그 현실의 다른 이름이었다.
처음엔 고래상어가 이 여행의 ‘답’일 거라 믿었다.
하지만 바다의 신비를 좇는 동안,
그 의미는 점차 그녀에게로 옮겨가고 있었다.
돌아오는 배 위에서 생각했다.
우리는 아직 서툴고, 서로를 잘 모른다.
하지만 오늘,
그녀의 시선 하나로 내가 버텼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조금씩, 서로의 고독과 두려움을 알아가고 있었다.
같은 길을 걷는 사람이 아니라,
서로의 어두움과 빛을 함께 품어줄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