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 5. 또 다른 계절로

카타비치를 지나, 마음으로 돌아가는 길

by 남해바다

햇살이 조금 달라져 있었다.

바람의 결도, 하늘의 색도 어제보다 가볍게 흘렀다.


시간은 다시 앞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여행 7일째, 우리는 다시 짐을 싸고 있었다.
떠남을 앞둔 하루는, 언제나 풍경을 조금 더 선명하게 남긴다. 머문 시간이 길수록, 그 끝은 더 깊고 조용히 마음에 남는다.


카오락에서 푸켓 카타비치로,

그리고 이제 돌아갈 준비.


아직 끝나지 않은 하루를 어떻게 쓸지, 우린 우리만의 방법을 택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는 새벽이었다. 오전 11시 체크아웃 후, 공항까지 남은 애매한 시간. 작은 호텔을 하루 예약해 짐을 맡기고, 샤워할 여유까지 확보한 뒤 다시 카타비치로 향했다.


그곳에는, 6년 전의 우리가 있었다.


신혼여행으로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 모든 것이 낯설고 반짝였다.

이국적인 풍경에 눈이 멈추고, 손을 맞잡고 걷는 그 거리마다 설렘이 흘렀다.


우리는 아직 사랑을 배우고 있었고,

서로의 미래를 조심스레 그려가던 시절이었다.


이제는, 함께 살아낸 시간이 풍경을 감싸고 있었다.


지금, 같은 거리를 다시 걷는 발걸음은 분명 달라져 있었다.

첫 만남의 떨림은 사라졌지만,

함께 쌓아 올린 시간들이 만들어낸 익숙함과 여유가 있었다.


설렘은 순간을 밝혔고,

편안함은 우리를 오래도록 함께 머물게 했다.


그시절 낯설기만 했던 골목의 작은 가게들도,

황금빛으로 물드는 저녁 하늘도

이젠 오래 알고 지낸 친구처럼 조용히 곁에 머물렀다.


그리고 지금, 그때는 없던 한 사람이 우리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우리의 손을 꼭 잡은 작은 아들.

그 손길에서 우리는 깨달았다.

그때 우리가 바라던 미래가, 지금 이 작은 손을 잡고 조용히 걸어오고 있었다.


함께 살아낸 시간만큼, 우리 관계도 단단해졌다.


이제는 ‘둘’이 아닌 ‘셋’.

서로를 보듬고, 때론 부딪히며 흔들리기도 했지만,

그 모든 순간이 우리를 지금의 모습으로 빚어냈다.


신혼의 설렘은 찬란한 계절처럼 지나갔지만,

그 계절이 남긴 건 더 깊어진 정(情)과 서로를 향한 신뢰,

그리고 우리의 사랑을 품은 아이와 함께 맞이한 오늘이었다.


우리는 변했고, 그래서 더 가까워졌다.


그렇게 우리는,

그 모든 시간을 품은 채, 셋이 나란히 걸었다.


아이는 내 손을 꽉 잡고 힘껏 흔들며 말했다.

“아빠, 우리 또 오자!”


그 한마디에 이번 여행의 모든 순간과 숨결,

우리의 마음이 조용히 담겨 있었다.


이젠 정말 떠날 시간이었다.


공항으로 향하는 길.

택시를 탈까, 버스를 탈까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우리는 버스를 탔다.


내 고집보다, 조금 더 천천히 이곳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비가 내리는 창밖.

푸켓의 풍경이 점점 멀어지며, 이번 여행의 끝을 고요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침묵 속에서 더 많은 이야기가 흐르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아내의 얼굴을 바라봤다.

창밖 풍경과 부드럽게 흐르는 빗소리 사이에서,

아내는 작은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동안 아이를 돌보느라 잊고 지냈던 자신의 시간을,

이번 여행에서 잠시나마 되찾은 듯 보였다.

그 눈빛 속에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고요한 다짐이 담겨 있었다.


‘이 순간 하나만으로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힘을 얻었어.’


아내는 조용히 웃었고,

나는 그 미소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그렇게 우리는,

셋이 나란히,
서로의 손을 꼭 잡고,
한 계절의 끝에서 새로운 계절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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