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그건 사기야! (왜 엄마에게만 고집을 부릴까?

by 달빛한줌

저는 마흔넷. 결혼 12년 차, 초등학교 5학년 딸과 3학년 아들을 둔 아빠입니다. 두 아이들은 다행히 건강하게 잘 자라주고 있지만, 아빠로서 늘 마음에 걸리는 한 가지는 또래보다 조금 작은 키입니다. 결국 첫째 딸은 6개월 전부터 성장 주사를 맞기 시작했고, 둘째 아들도 계속 마음속으로 고민하던 참이었습니다.


오늘 저녁,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아들, TV조선에 지금 방송하고 있는데, 유산균발효굴추출물이라는 게 있대. 어떤 애가 석 달 먹고 키가 10cm나 컸대! 둘째 OO이도 먹여봐.


엄마는 아들 내외도 모르는 귀한 정보를 발견했다는 기쁨에 들떠 전화를 했을 것입니다. 저는 그저 "알았어 엄마. 한번 알아볼게"라고 말하면 되는, 정말 간단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제 입에서는 전혀 다른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엄마. 그거 다 광고고 사기야. 지금 홈쇼핑 다른 채널 돌려보면 그거와 관련된 제품 팔고 있을걸? 아니라니까 그러네."


엄마는 물러서지 않고 "그래도 한번 먹여봐."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더 강하게 맞받아쳤습니다. "엄마, 그거 사기이고 광고라니깐. 그런 거에 속으면 안 돼."


결국 전화는


"아이고, 너도 고집 참 세다. 그냥 한번 먹여보면 되는걸..."


이라는 엄마의 씁쓸한 한마디로 끝이 났습니다.


왜 유독 엄마에게만 뾰족하게 굴까?


전화를 끊고 후회했습니다. 회사 동료나 상사에게, 심지어 친구들에게도 저는 이렇게까지 제 주장을 밀어붙이는 편은 아닙니다. 상대 의견을 존중하고, 설령 동의하지 않더라도 우선은 수용하는 태도를 보입니다. 그런데 왜, 도대체 왜 유독 엄마에게만은 "엄마는 틀렸어", "내 말이 맞아"라며 굳이 이기려고 드는 걸까요?


문득 뇌과학자 정재승 박사님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뇌에는 나를 인지하는 영역이 있다. 부모 형제 자매 아내 아이들은 나와 가깝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뇌에서 나와 가까운 관계일수록 뇌가 나라고 인지하려는 경향이 있다. 나와 다른 존재로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한 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통제하려고 한다.

내 마음대로 되지 못하면 불같이 화를 내는 것이다.


어쩌면 엄마는 제게는 너무 가까운 사이이기에 독립된 인격체가 아니라, '나의 확장된 일부'라고 생각했던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엄마가 제가 보기에 '틀린' 판단을 하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마치 제가 어리석은 실수를 저지르는 것처럼 느껴졌고, 어떻게든 '올바른 길'로 바로잡아 놓아야 한다는 강박적인 생각이 들었던 것이죠. 엄마를 위한 걱정이 아니라, 사실은 '나 자신'을 향한 통제욕이었던 셈입니다.


대화의 나르시시즘


대화의 나르시시즘이라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화제를 계속해서 자기 자신에게 끌어오는 화법입니다. 사회학자 찰스 더버는 '대화의 나르시시즘'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대화를 장악하고, 주로 혼자 떠들고, 대화의 초점을 자기 자신에게 맞추려는 욕구이다. 미묘하고 무의식적인 경우가 많다. 더버는 대화의 나르시시즘에 대해 “주목받고 싶어 하는 지배적 심리가 잘 드러난 것”이라고 한다.”


너무 극단적으로 나아간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결국 상대방의 이야기를 그저 듣고 공감하면 되는데, 저는 억지로 제 이야기를 하고 제 말을 듣게 만들었습니다.


엄마는 그저 '손주의 키가 걱정되는 마음'과 '좋은 정보를 주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을 뿐인데, 저는 "그건 사기야", "내 말이 맞아"라며 대화의 주제를 '엄마의 걱정'에서 '나의 지식과 판단'으로 옮겨와 버린 것이죠.


엄마, 그런 게 방송에 나왔어? 애들 키 때문에 신경 쓰이는구나? 그게 정확히 어떤 건지 한번 찾아볼게.


이렇게 말했다면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죠.


관계를 바꾸는 아주 작은 습관, '잠시 멈춤'


가까운 사이일수록 감정의 방아쇠는 더 쉽게 당겨진다고 합니다. 너무나 '나'와 같다고 느끼기에, 아주 작은 다름도 견디지 못하고 상처를 주게 됩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아주 작은 '멈춤'의 순간일지도 모릅니다.


어려운 상황을 앞두고 있거나 힘든 결정을 해야 할 경우, 잠시 시간을 내서 천천히 세 번 심호흡하라. (…) '잠시 멈춤'은 대인관계에서 더욱 힘을 발휘한다.

-《하버드 회복탄력성 수업》중 -


저는 이 '잠시 멈춤'을 연습해 보려 합니다. 욱하고 튀어나오려는 '대화의 나르시시즘'을 꿀꺽 삼키고, 엄마의 말 뒤에 숨겨진 사랑과 걱정을 먼저 헤아리는 아들이 되고 싶습니다.


정답을 알려주는 아들이 아니라, 마음을 알아주는 아들이 되는 것. 마흔넷이 되어서야 또다시 어려운 숙제 하나를 받은 기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