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없인 못살아.
어렸을 때, 나는 어른분들 말씀을 꽤 잘 듣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말 중,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한 가지가 있었다. TV 많이 보지 말라고 하는 것이었다. 부모님도, 선생님들도 항상 똑같은 말을 했다. TV는 바보상자라고, TV 많이 보면 멍청해진다고, 똑똑해지고 싶으면 TV를 멀리해야 한다고.
대학교에 들어가서 더 이상 정규 교육 과정이라는 명목 하에 아침부터 오후까지 짜인 틀 안에서 수업을 들을 필요가 없어졌을 때, 나는 대부분의 수업을 오후로 밀어버렸다. 다른 친구들이 조금이라도 잠을 더 자기 위해 그랬다면, 나의 경우는 MBC 아침 드라마를 보기 위해서였다. 당시 MBC 아침 드라마는 가히 최고였다. 《있을 때 잘해》, 《내 곁에 있어》, 《그래도 좋아》등 5글자 제목은 흥행 불패한다는 신화가 있을 정도로 흥미진진했다. 술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던 나였기에 저녁 시간에도 특별한 일이 없다면 주로 TV와 함께 했다.
불혹을 3개월 남겨둔 지금,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나는 여전히 TV 보는 것을 좋아한다. 여유시간이 생길 때면 어김없이 리모컨부터 든다. 이런 나의 영향 때문인지 7살, 5살 두 아이들도 TV 보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둘째 아들은 유치원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아빠한테 보고 배운 건 이것밖에 없다는 듯이, TV부터 켠다.
비록 TV 보는 것을 좋아하는 나이지만, 아이들이 아빠와 똑같은 행동을 하는 것이 조금은 신경이 쓰인다. 어릴 때부터 들어왔던 TV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들 때문이다. 혹시나 나 때문에 아이들이 정말 바보가 되는 건 아닌지 조금은 걱정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게 걱정이 돼서 감히 TV를 치울 엄두는 내지 못한다. 아이들보다 내가 그 상황을 더욱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약 5,000년 전, 글쓰기가 처음 세상에 등장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은 글을 '악마의 발명품'이라고 했다. 이집트의 왕 타무스는 문자 때문에 인간은 잘 잊어버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으며,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는 책은 오히려 정보를 산만하게 만든다고 하였다. 1,400년 경, 책의 대중화를 이끈 인쇄기가 도입됐을 때도, 책은 지금의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환영받는 존재는 아니었다. 1,525년 에라스무스는 인쇄기는 돈을 벌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이 세상을 멍청하고, 무지하고, 악의와 중상모략으로 가득하고, 사회질서를 파괴하는 불경하고 미친 내용으로 가득 찬 책들로 채우려 들 것이라고 비난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말한 그 유명한 철학자 데카르트도 책은 무시하고 오직 자신의 관찰에 의지하라고 충고했다.(참고도서 :『정리하는 뇌』, 대니얼 J. 바레틴, 와이즈베리)
그로부터 약 500여 년이 흐른 현재, 책이 지성과 지혜를 습득하는데 최고의 도구라는데 어느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을 것이다. 책을 즐겨있든, 그렇지 않든 대부분의 이들은 이에 동의하고 있다. 시공간을 초월해 거인의 어깨에 올라탈 수 있는데 책만 한 것은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악마 취급을 받던 책의 위상은 과거와는 완전히 달라졌다.
처음으로 TV 방송을 시작한 것은 1,935년 독일에서였다고 한다.(참고 : 구글 검색) 이로 판단해 볼 때, TV의 역사는 기껏해야 85년, 아직 100년도 채 되지 않았다. 그래서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해본다. 사실은 TV가 나쁜 것이 아니고, 아직 우리가 TV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기에, 도움이 될 수 있는 활용법을 잘 모르기에, TV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5,000년 전 문자의 발명이 악마 취급을 받고, 500년 전 책의 대중화가 사회질서를 파괴한다고 여겨졌던 것처럼 말이다.
TV가 우리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치는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것들을 종합해보면 결국 하나로 귀결할 수 있다. TV는 보는 이들을 수동적인 존재로 만든다는 것이다. 쉼 없이 보이는 자극적이고 빠른 콘텐츠는 우리에게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우리의 뇌는 그저 보이는 것을 받아들이고 따라가는 데에만 급급하게 된다. 과거 인류의 조상들이 날카로운 이빨과 탄탄한 몸을 포기하면서 얻게 된 것이 생각할 수 있는 뇌인데, TV에서 송출되는 영상을 보고만 있는 것은 우리에게 생각의 과정을 앗아가, 우리를 동물과 다를 바 없는 존재가 되게 한다.
그렇다면 만약 우리가 의식적으로 TV를 보면서 생각을 할 수 있다면 어떨까? TV를 생각의 도구로 삼을 수 있다면, TV를 보는 과정을 마냥 수동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생각을 창조해내는 데 활용할 수 있다면, TV도 그렇게 나쁘기만 한 존재는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아이들이 TV를 마음껏 볼 수 있게 하는 대신, 단지 시청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분명히 TV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자기 합리화를 하며 말이다.
물론 핑계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지금의 나는 더 이상 애가 아니다. 시각과 청각을 통해 들어오는 자극은 계속적으로 새로운 자극을 탐닉하게 되기에, TV를 보면서 멈춤과 생각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또한 TV를 보는 과정에서, 우리의 뇌는 TV 속에서 송출되는 영상을 수동적으로 바라보기만 하는 신경을 강화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조금이라도 아이들에게 TV를 늦게 노출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이제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TV를 사랑하는 아빠이기에, 아이들에게만 TV를 안 보게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난 매일 자기 합리화를 한다. 책도 예전에는 비판받아왔다고, TV도 사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말이다.
글을 쓰면서 생각해 본다. 언젠가는 조금 더 성숙한 내가, 아빠가 되어서 TV를 치워보겠노라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시기가 아닌 것 같다. TV를 떠나보내기에는 아직은 마음의 준비가 덜 되었다. 그래도 조금씩 그때를 준비해야겠다. 나를 위해서도, 아이들을 위해서도 그것이 더 좋은 방법임을 알기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