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가 파리에서 알려준 것들.

프랑스를 알게 되다.

by 달빛한줌

Emily in Paris


지난 주말, 넷플릭스를 통해 《에밀리 파리에 가다 (영어 제목 : Emily in Paris)》를 봤다. 영화 《섀도우 헌터스》와 《블라인드 사이드》를 보면서, 좋아하게 된 배우 릴리 콜린스가 주연으로 출연하는 미드이다. 기껏해야 1편만 본 상태이지만, 간략히 말해보자면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에밀리는 미국 시카고에서 일하다 상사의 임신으로 프랑스 마케팅 회사로 1년간 출장을 가게 된다. 럭셔리 본고장에 대한 환상과 기대를 갖고 파리에 입성했으나, 그곳의 문화는 그녀가 지금껏 살아왔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녀는 낯선 파리의 문화에 적응해야만 한다.
(...)
아마 앞으로의 이야기는 낭만과 사랑의 도시 파리에서 그녀가 적응하는 이야기들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나는 그동안 프랑스 하면 대략 뭉뚱그려 패션 낭만 사랑 예술가의 도시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미국인인 에밀리가 낯선 파리라는 도시에서 경험하는 것들을 보면서 프랑스의 실제적인 모습들을 조금은 알 수 있었다. 프랑스는 건물의 층수를 계산하는 방식이 우리와 다르다. 우리가 1층이라고 생각하는 공간은 프랑스에서는 지상층으로 불린다. 그다음 층부터 1층, 2층... 순서로 층이 구분된다. 즉, 프랑스에서 4층은 지상층의 존재 때문에 우리나라의 5층과 마찬가지다. 또한 사랑의 도시답게 프랑스 현지에 애인이 없다면, 실제 애인이 있어도 연애와 사랑의 기회는 항상 열려있다.


해당 드라마에서 언급된 프랑스의 문화들 중, 특히 회사, 일과 관련된 조직 문화가 눈에 띄었다.(아직은 에피소드 1밖에 보지 못했다.) 아무래도 내가 직장인 신분이기에, 워라밸과 삶의 행복에 관심을 가지고 있기에 그런 듯하다. 먼저 출근 문화이다. 에밀리는 평소처럼 업무를 시작하기 위해 아침 8시 반에 출근을 한다. 하지만 프랑스 직원들은 시간이 한참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들이 회사에 모습을 드러낸 시간은 10시 반이 되어서다. 회사의 고위급 직원은 그마저도 지키지 않고 11시 15분이 돼서야 출근을 한다. 그렇게 아침 시간을 흘려보낸 후, 잠시 자리를 지키다, 점심 식사를 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복창 터질 일이다. 또한 팀원들은 에밀리를 두려워한다. 그 이유가 참 당혹스럽다. 에밀리의 훌륭한 마케팅 아이디어가, 회사를 성장시켜 혹시나 자신들의 일거리가 많아지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바빠져 일과 삶의 균형이 깨질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한 직원은 에밀리에게 이런 말을 한다. "미국에서의 성공 기준(부, 성취)은 자신들에게는 고문일 뿐"이라고. 그리고 덧붙인다. 출근 늦게 하라고.



한 직원이 떠올랐다.


우리 회사에서도 과거 프랑스 현지에 향수 공장을 보유한 적이 있었다. 해당 공장에서는 향수 브랜드 '롤리타 렘피카'와 '아닉구딸' 제품을 생산했다. 해당 브랜드 제품을 국내에서 판매하기 위해서는 프랑스 현지에서 제품을 생산해 국내로 들여와야만 했다. 그런데 해당 제품들의 공급이 항상 말썽이었다. 예정된 일정에서 어긋나기 일쑤였다. 계획된 날이 임박했음에도, 제품 입고 소식은 깜깜이였다. 이 때문에 해당 브랜드 제품 공급을 담당하는 직원은 항시 비난을 받았다. 당시 나는 제품의 수요와 공급에 영향을 많이 받는 영업부문에 속해 있었기에, 제품 공급을 제때 하지 못하는 그를 무능한 사람이라고 여겼고, 주변인들에게 종종 그에 대한 불평을 하곤 했다.


《에밀리 파리에 가다》를 보며, 문득 그가 떠올랐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가 이야기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일정 지켜달라고 여러 번 말하는데 잘 안되네요. 프랑스인들에게 전화해서 독촉하거나 잔여 업무를 요청하는 것이 쉽지 않아요. 영업하시는 데에 불편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당시엔 그가 책임 회피를 위한 변명을 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었다. 프랑스인들의 생활방식과 문화에 무지했던 나는, 그의 말을 전혀 신뢰하려 하지 않았다. 당연히 이해나 공감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에밀리가 프랑스인들의 조직문화에 적잖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며, 그가 정말로 통제할 수 없었던 외부적 요인이 있었을 수도 있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5년이 지나서야 당시의 상황을, 그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당시, 성숙하지 못했던 내 행동들이 부끄러웠다.



작가 김영하가 말하는 문학 소설을 읽는 이유.


2년 전쯤, 내가 사는 동네 구청에서 김영하 작가님을 초청해 강연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책과 독서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 강연 도중 문학을 읽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문학을 읽어서 좋은 점은 많지 않아요. 당장 눈앞의 어떤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다만 『제인 에어』, 『오만과 편견』등의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인물들의 내적 갈등과 내면을 가깝게 들여다볼 수 있어요. 그리고 나라면 어땠을까라는 감정이입을 통해 우리가 실제로 겪어보지 못한 다양한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결국 문학작품을 읽는 것은 공감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조금 더 밝게 만드는 원동력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영하 님은 문학을 통해 자신을 등장인물들에 대입하여, 시간적 물리적 공간적 상황적 제약 등으로 인해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을 간접 경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나 아닌, 다른 이들의 마음과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이야기이다.



디즈니가 바꾼 세상.


문학만이 이러한 효용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TV나 스마트폰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는 영상 콘텐츠 또한, 우리의 공감 능력 향상에 훌륭한 기여를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실감 나는 캐릭터들의 연기와 즉시적인 스토리 덕분에, 더 잘 와 닿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지금이야 아이와 동물들에 대한 생명을 존중하는 것이 당연스레 여겨지지만, 사실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그들의 위상은 지금과 같지 않았다. 아이들은 단지 일꾼에 불과한 존재였을 뿐이다. 물건처럼 교환되거나, 쉽게 버려지거나, 집의 부흥을 위한 목적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잦았다. 개, 말, 소 등, 동물들의 상황은 이보다 더했다. 평생을 인간을 위한 일을 대신 해오다, 마지막까지도 인간들을 배불려 주는 존재로 생을 마감했다. 오랜 시간 동안 그것들은 생명과 감정이 있지만 그러한 대접을 받지 못해 왔다.


해당 존재들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전환시킨 계기가 된 것이 '디즈니'라고 생각한다. 디즈니에서 만들어진 수많은 콘텐츠는 그동안 소외되었던 존재들을 전면에 내세웠고, 이 덕분에 우리는 그들도 똑같이 말을 하고, 희로애락과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 인식하게 되었다. 이러한 콘텐츠는 당시 신물물인 TV를 통해 더욱 많은 이들이 볼 수 있게 되었고, 결국 전방위적인 생각의 전환이 일어나는 것이 가능했다.(개가 고양이보다 조금 더 사람에게 먼저 다가올 수 있었던 것은 물론 개의 성향도 있겠지만, '구피' '101 달마시안'등 디즈니의 강아지 캐릭터가 고양이 캐릭터에 비해 절대적으로 많은 것과 무관하지 않다 생각한다.) 최근 디즈니의 행보는 과거의 것을 넘어, 양성 및 인종 평등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십수년 전,'뮬란' '포카혼타스' 등에서부터 시작하여 최근 '알라딘' '블랙 펜서' '겨울왕국'까지, 그들이 해당 콘텐츠를 통해 세상에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 그리고 그것들이 우리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최근 일련의 상황들을 보면 쉽게 이해할 가 될 것이다


오래전부터 많은 이들이 'TV를 바보상자'라 치부했지만 TV가 마냥 바보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충분히 긍정적인 영향을 끼쳐왔다. 과거 TV 덕분에 디즈니와 같은 다양한 영상 콘텐츠를 보며 생명체에 대한 존중심을 키울 수 있었고, 현재 《에밀리 파리를 가다》를 보며 과거 부족했던 나의 공감능력을 반성할 수 있었다. TV는 어쩌면 문학보다 더 훌륭한 공감의 도구로써, 긍정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건강한 프로그램이 많아지길 바란다.


내가 어릴 때는 TV만이 영상 콘텐츠를 시청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였다. 채널도 많지 않았다. MBC, KBS, EBS, 조금 뒤늦게 SBS까지 단지 4개에 불과했다. 본방을 놓치면 다시 보는 것이 힘들었다. 명절 때만 되면, 신문을 펼쳐 프로그램 편성표를 흝어보고 볼만한 프로그램들을 미리 색연필로 체크해 둬야만 했다.


약 30년이 흐른 지금, TV 채널 수는 수백 개를 넘었으며, 유튜브와 같은 UGC, 넷플릭스와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영상 콘텐츠 시청이 가능해졌다. 과거와 달리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수많은 콘텐츠들과의 경쟁에서 이겨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조금 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콘텐츠들이 무분별하게 제작되고 있다.


'TV는 좋다'라고 평소 부르짖었던 나도 최근의 상황들이 조금은 두렵다. 아이들과 함께 TV나 스마트폰, 태블릿 PC 등을 통해 자주 영상 콘텐츠를 즐겨보는 편이지만, 시시각각 튀어 올라오는 자극적인 콘텐츠들이 혹시나 아이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조금 더 건강하고 건전한, 긍정적 영향을 끼치는 영상 콘텐츠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우리 아이들만이 아닌, 연령 및 세대불문 모든 이들이 보다 성숙해지고 화합을 도모할 수 있는 콘텐츠들 말이다. 콘텐츠를 만드는 이들이 조금은 더 책임감 있는 모습을 가지시길 간절히 바란다.


P.S

* 우리와 프랑스의 문화가 다르다는 것을 이야기한 것이지, 절대 우월의 점으로 접근한 것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