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Don’t Cry>

행복, 그리고 꾸준함.

by 달빛한줌


다시 만난 〈Don't Cry〉


올해 초, 슈가맨 시즌 3가 방송했었다. 슈가맨은 유재석 유희열의 진행하에 추억 속의 가수를 소환하는 형식으로 시즌 1,2의 성공에 힘입어 시즌 3까지 방영한 인기 프로그램이다. 시즌 3에서는 태사자, 양준일, 씨야 등을 포함해 총 28개 팀의 가수들이 모습을 나타냈다. 그중, 내게 가장 기억이 남은 가수는 단연 〈Don't Cry〉를 불렀던 '더 크로스'이다.


학창 시절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다. 남자 친구들 대여섯 명이 매일 노래방을 드나들었는데, 당시 우리들은 고음병을 앓고 있었다. 고음을, 혹은 여성분들의 노래마저 소화할 줄 아는 사람이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이라 생각했었다. 김경호의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 박완규의 〈천년의 사랑〉, 심지어 소찬휘의 〈Tears〉까지 목에 핏대를 세우며, 경쟁하듯 마이크 찢어져라 노래를 불러댔다. '더 크로스'의〈Don't Cry〉도 이러한 우리들의 애창곡 중 하나였다.


슈가맨을 통해 오랜만에 그들의 모습을, 아니 노래를, 다시 들을 수 있다 생각하니 설렜다. 유희열 님의 진행 이후, 가수 '더 크로스'가 소개됐다. 익숙한 전주가 흐르고, 무대 한쪽으로 조명이 비췄다. 하얀 장막 뒤로 '더 크로스' 2명의 실루엣이 드러났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멤버 한 명이 휠체어에 앉아있었다. '왜 앉아있는 거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궁금증과 함께 노래가 시작되었다. 노래를 들으면서도 의아한 점들이 있었다. 속을 뻥 뚫어버리는 쩌렁쩌렁한 고음을 기대했는데, 음이 높은 후렴구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호흡이 조금 벅차 보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궁금함과 의아함을 가진 체, 노래는 계속됐고, 대망의 후렴구 부분인 "So you don't cry for me~~ 세월 지나도 난 변하지 않아~~!!"를 부르며 드디어 17년 만에 ‘더 크로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실루엣.jpg


오랜만에 본 그들의 모습은 내 생각과는 달랐다. 폭발적인 고음을 담당했던 메인 보컬 김건혁 님은 휠체어에 앉아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노래 부르는 모습이 조금은 불편해 보였다. 고음을 부를 때면 목과 왼쪽 팔을 뒤로 젖혀여만 했고, 온몸의 힘을 쥐어짜는 듯했다. 예전과 같은 파워풀한 성량도 사라졌다. 신체가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노래 부르는 모습이 짠했는지, 갑자기 두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노래 제목은 〈Don't Cry〉인데, 도무지 울지 않을 수 없었다.


노래를 마치고,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근황 토크가 이어졌다. 이를 통해 ‘더 크로스’의 메인 보컬 김건혁 님이 휠체어에 앉아있어야만 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약 6년 전, 그는 오토바이 사고로 목 아래의 신경이 마비되어 움직일 수 없게 됐다고 했다. 사고 직후 1년 동안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병원 침실에 누워있는 것뿐이었다고 한다. 그때를 떠올리며, 그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1년 동안 앉아보는 것이 소원이었어요. 그다음엔 무언가를 먹어보는 것이 소원이었고, 그다음엔 햇볕을 쬐어 보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앉는 것, 먹는 것, 햇볕을 쬐어 보는 것. 우리에겐 너무나 당연하고 평범한 것들이 그에겐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소원이었다고 한다.



노래만 다시 할 수 있다면...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는 복식호흡이 가능해야 한다. 하지만 목 아래 부분의 신경이 마비가 된 그가 스스로 배에 힘을 주는 것은 불가능했다. 당연히 노래를 다시 부르는 것은 어려워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노래를 포기할 수 없었다고 한다. 노래만이 지금껏 자신의 삶의 의미였고, 많은 것을 잃게 된 당시에도, 여전히 노래만이 그에겐 살아가는 이유였기 때문이다.


다시 노래를 부르고자 연습을 했다. 복식 호흡을 할 수 없어 아버지가 배를 눌러 횡격막을 확장시켜 주어야만 했다. 그렇게 꼬박 2년을 연습해, 겨우 애국가를 부를 수 있게 되었다.(폭발적인 고음을 아무렇지 않게 불렀던 그가 2년을 연습해야 애국가를 부를 수 있게 되었다니, 얼마나 답답했을지 그의 심정이 이해된다.) 그리고 다음 목표가 생겼다. 자신이 이전에 불렀던 노래들을 다시 부르는 것이다. 그의 노래 대부분이 고음이 많아, 쉬운 도전은 아니었다. 조금 더 부드럽게 노래를 부르고자, 배를 눌러주는 기계를 사용했다. 오랜 연습 끝에, 마침내 〈Don't Cry〉를 다시 부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운명처럼 바로 그 날, 슈가맨 제작진에게 출연 제안 연락이 왔다고 한다. 그렇게 그들은 방송에 출연했다.


토크를 마무리하면서 유희열 님은 ‘더 크로스’에게 앞으로의 계획이 무엇인지 물었다. 멤버 이시하 님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지금처럼 할 거예요. 포기하지 않으니 지금과 같은 행운의 순간이 왔어요. 무대에 다시 설 수 있었고, 앙드레 김 선생님 옷도 받을 수 있었죠.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아가는 것, 이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미 나는 충분히 행복한 존재이다.


'어제 떠난 이가 간절히 원했던 오늘 하루'라는 말이 있다. 이 말마따나 하루를 더 사는 기회가 주어진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한 존재이다. 따뜻한 햇볕, 시원한 바람, 아침 일출, 저녁노을 등은 누군가가 간절히 원했던 것들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너무나도 당연시 여긴다. 교통 체증, 스마트폰의 부재 등, 생각해보면 지극히 사소한 것들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며 자신을 불행하다고 여기면서, 실제 우리 삶에 반드시 필요한 햇볕, 공기 등이 제공해주는 편안함과 따스함에는 매우 둔감하다.


1년 동안 앉는 것이 소원이었다는 김건혁 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현재 내가 가지고, 누리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행복한, 축복받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앉는 것은 물론, 심지어 일어서서 걸을 수도 있으며, 양 손가락으로 타자를 칠 수도 있고, 두 눈으로 책을 읽는 것도 가능하다. 따뜻한 물에 몸을 씻을 수도 있으며, 소파에 앉아 재미있는 방송을 보며 실컷 웃을 수도 있다. 이미 나는 충분히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는 중이다. 다만 그동안 그것이 행복인지 몰랐었다.


저녁을 바라볼 때는 마치 하루가 거기서 죽어가듯이 바라보라.
그리고 아침을 바라볼 때는 마치 만물이 거기서 태어나듯이 바라보라.
그대의 눈에 비치는 것이 순간마다 새롭기를, 현자란 모든 것에 경탄하는 자이다.

-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책은 도끼다』중에서 -


앙드레 지드는 현자란 모든 것에 경탄하는 자라고 이야기한다. 그의 말마따나 어쩌면 행복한 자는 평범한 순간순간에 감사함과 행복함을 부여할 줄 아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sunset-3314275_1920.jpg



그저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해 나갈 뿐...


다시 노래를 부르게 돼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연습을 하면서도 다시 방송 출연 기회가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노래가 좋았고, 노래를 다시 부르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하다 보니 생각지도 않던 지금과 같은 기회가 찾아왔다고 말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지금처럼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아갈 것이라 이야기한다.


나영석 PD는 방송에서 '꾸준함'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옛날에는 대단한 사람이 대단해 보였거든요?
근데 요즘은...

오랫동안 꾸준한 사람이 너무너무 대단해 보이는 거예요.
나영석 진짜.jpeg


세월의 풍파를 이겨내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계속 나아가는 이들은 대단한 사람들이다. 나도 그러한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 어떤 성공이나 부귀영화를 바라진 않는다. 그저 지금 하는 것들이 단발성이 아니라, 10년, 20년 이후에도 계속하고 있길 바란다. 만약 그것이 현실화된다면, (누구도 나를 인정해주지 않더라도) 내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다.


난 참 대단한 사람이야.


반드시 그런 날이 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