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인 자본주의에 의해 변질되는 교육의 장
“학생들이 편하고 편리하면 좋다.”
문장만보면 너무나 좋은 문장같다.
10대의 학생들은 아직 사회와 현실에 대한 경험적인 것이 부족하여 판단과 결단이 자칫 잘못하면 가치중립적 태도를 갖지 못할 수가 있다.
내가 좋으면 좋은 가치 내가 손해보면 나쁜 가치.
이게 무슨 가치 기준인가. 너무 많은 학생 혹은 학생에서 어른이 된 사람들이 이 가치 기준을 말한다. 너무 위험하다.
10대는 가치 기준과 판단 기준을 세워가는 시기이다. 각자의 학습 속도는 달라도 배워야한다는 자격은 같은 것이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학생이라는 신분으로 있을 때이다.
요즘 아이들이 나약하다?
어른들도 나약하다. 아이들이 겪는 경험을 오롯이 자신이 당한 것처럼 자본의 힘으로, 가진 힘으로 아이들을 방어하려한다.
이렇게 되면 학교는 왜 존재하는가.
학교에서 학생과 교사를 평등이라는 예쁘게 포장할 수 있는 상대적이고 임의적이고 주관적인 가치 아래, 책임의 유무가 분명히 다름에도 같은 선상에 놓기를 원한다.
정말 말도 안된다. 어른들이 너무 무책임하다.
오늘도 학교의 현실에 분개한다.
학교의 본질이 무엇인지 고민해보라.
내 아이가 편했으면 하는 공간인가.
아니면 사회에 나가기 전 이 나라에, 사회 집단에, 적응하기 위해 최소한의 규칙과 가치를 배우러 가는 곳인가.
아이가 편했으면 하는 공간을 집외의 아이가 닿는 모든 공간이길 소망하는 건 부모 모두의 마음이다. 하지만 소망을 빌 수는 있어도, 어떻게 그걸 자본으로, 입김으로 바꾸려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왜 아이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려하는가?
왜 학교를 편한 공간으로 만들려고 하는가.
너무 분노가 차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