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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minic Cho May 08. 2023

The Denko Saga에 관하여

 아내와 로버트가 만든 The Denko Saga가 3년 여의 준비 끝에 드디어 출시되었다. 취미로 시작한 프로젝트가 여러 사람들이 참여한 녹음을 거쳐서 스포티파이나 팟캐스트와 같은 공간에 실제로 발표되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신기하기도, 회의적이기도, 놀랍기도 했다. 신기했던 점은 돈을 받지 않는 프로젝트임에도 스웨덴, 한국, 영국 등의 다양한 지역의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서 ‘오디오 드라마’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이었다. 회의적이었던 부분은 일도, 과제도 아니라 개인적인 취미로 시작한 프로젝트가 정말 완성될 수 있을지에 대한 염려였다. 3년이란 긴 시간 동안 느리지만 꾸준하게 작업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이기 때문에 완성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놀라웠던 점은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나 음악 작업과 같이 아내와 로버트 둘만으로는 불가능한 부분들을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통해 채워 나가는 모습이었다. 아내는 주변에 사람을 끌어 모으는 재능이 있다는 생각이 참 많이 들면서도, 한편으로 친구들과 지인들을 떠나온 내 선택에 아쉬움이 들기도 했다.


 서론이 길었다. The Denko Saga는 다음 링크 THE DENKO SAGA (´‧ω‧`)(buzzsprout.com) 에서 들을 수 있다. 2ch으로 불리는 일본의 한 커뮤니티에서 일어났던 실화를 바탕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에게 600통의 메일을 보낸 소년의 현생과 함께 인터넷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여러 단면들을 그려 나가는 작품이다. 일본의 커뮤니티이긴 하지만, 작품의 사건에서 우리나라의 커뮤니티 속 면면들도 비쳐 보인다. 인터넷이라는 익명의 공간에서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드러내는 주인공, 그 주인공에게 골탕 먹이는 조언을 하는 트롤들, 그저 무시하거나 방관하며 즐길 거리로 삼는 관중들, 진심 어린 조언을 남기지만 별 도움은 되지 않는 이들과 같이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공이 많은 배처럼 상황은 극으로 치닫는다. 커뮤니티를 좀 하는 사람이라면 오디오 드라마 속 몇몇 대목에서 기시감을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도 두 문장밖에 없지만 녹음에 참여했다. 짧은 분량임에도 역할에 맞는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 쉽지 않아서 여러 차례 녹음했다. 게다가 녹음된 내 목소리를 들으니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평소에 생각해 왔던 내 목소리와 너무 달라서 께름칙했다. 반면에, 녹음에 참여한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는 꽤나 훌륭하다. 특히 내레이션을 맡으신 분의 굵직한 동굴 목소리는 너무나 좋아서, 남자인 나도 듣고 있으면 기분이 차분해지면서도 그 유려함에 감탄하게 된다. 또한, 상황마다 적절한 배경 음악을 즉석에서 뽑아낸 루데의 음악적 능력도 놀라웠다. 셋이 모여서 시나리오를 설명하고 배경 음악의 이런저런 부분을 고쳐 달라는 피드백을 나누면, 요청에 맞는 음악을 뚝딱 만들어내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저게 진짜 되는 거구나’란 생각이 들어 참 신기했다.

 마지막으로 로버트와 카레를 먹으며 나눴던 대화를 남기고 싶다. 피부나 모발과 관련된 미용 회사에서 홍보 영상을 만드는 일을 하는 로버트는, 가끔씩 그 회사에 찾아오는 사람들을 보면서 ‘미’라는 사회적 기준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해 본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 별로 신경 쓰지도 않는 울퉁불퉁한 이마 라인을 일직선으로 만드는 시술을 통해 잃었던 자신감을 회복한 남자, 수 차례의 시술에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 더 극적인 효과를 원하며 입술 시술을 반복하는 여자, 인스타그램 속 셀럽과 자신을 비교하며 스스로 피부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처럼, ‘미’라는 기준은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주기도, 뺏기도 한다. 그러한 사회적 관념이 사람들에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 인지는 판단하기 어려울 것이다. 다만, 그러한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누군가는 분명 돈을 쓰고, 또 누군가는 그런 기준 덕분에 돈을 번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인터넷 커뮤니티는 분명 ‘미’와 같은 다양한 사회적 관념들에 대해 사람들이 소통하는 공간 중에 하나다. 어떤 주제로 소통하든지 간에, 각기 다른 의견들이 얽히고 충돌하고 또 새로운 의견으로 통합해 나가며 우리가 가진 사회적 관념은 변화한다. 일본에서 일어난 사건을 모티브로 스웨덴에서 제작한 The Denko Saga는, 한국의 커뮤니티가 연상되기도 하면서, 같은 대상을 저마다 다르게 바라보는 여러 시선도 느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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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6 원문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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