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 (출처: 웹툰 송곳)
고백하자면 9년 반 전의 LA 산타모니카 해변 여행은 불쾌했다.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한 대학생이었던 난 택시비가 아까워 산타모니카 해변에서 LA 중심지의 호텔까지 대중교통을 통해 이동했다. 1~2월에도 후덥지근한 날씨를 견디며 도무지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다가 지쳐, 그냥 LA 중심지 근처로 가는 아무 버스나 잡아 탔던 그날의 경험은 최악이었다.
그렇게 헤매며 어찌어찌 돌아오는 길거리에서 보았던 노숙자들은 내게 미국이란 나라가 가난한 이들에게 얼마나 가혹한 지를 보여줬다. 열악한 대중교통과 고통받는 빈민들을 보고 난 뒤 내게 "미국"이란 이미지는 "한국"이 향해 나아가는 "배금주의"의 암울한 예시로 남았다. 그렇기에 난 "미국"처럼 "한국"도 보다 "자유"로운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과 이따금 마주칠 때마다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슬프다. 이번 여행은 내게 전혀 다른 모습의 "미국"을 보여줬고 그 덕분에 지금까지 이해할 수 없었던 그들에게 공감했기 때문이다. 스웨덴 친척들과 함께 렌터카를 타고 수영장이 딸린 미국 친척들의 전원주택들을 방문하거나 도심 외곽에 위치한 쇼핑몰이나 아웃렛으로 이동하는 동안 마주친 풍경들 속에선, 가난한 슬럼가를 지나가는 버스 창가 밖에서 보았던 노숙자들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보다는 야자나무들이 심어진 한적하면서도 깔끔한 길거리에 잘 관리된 차량들이 줄지어 세워진 모습들에 익숙해졌다. 혹은 왕복 8차선 고속도로를 가득 매운 교통 정체 속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차량들이 기억에 남았다.
서는 데가 바뀌니 보인 풍경들도 바뀌었다. 배낭여행을 온 호주머니 가벼운 대학생과 렌터카를 빌려 친척들과 여행을 온 직장인이 경험하는 미국이 다른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이제는 모르겠다. "미국"은 내게 더 이상 암울한 "배금주의"의 예시가 아니다. 이번 여행에서 가족과 친구들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베푸는 관대함을 너무도 많이 받았기에 정말로 감사하다. 그럼에도 "미국"처럼 "자유"로운 방향으로 나아가자고 말할 수도 없다. 지난 여행 도중 열악한 대중교통에 지친 와중에 버스 안에서 기침소리를 낸 내게, 어떤 이름 모를 흑인이 건네줬던 "Bless you. I don't know who you are. Still bless you."란 말을 지금도 기억하기 때문이다.
알면 알수록 확신이 옅어진다. 무엇이 옳은지,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점점 더 모르겠다. 스웨덴 이민을 오고 나서도 이번 미국 여행과 비슷한 경험을 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이 사회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면서 그전까지 믿어왔던 신념이 약해졌다. 그 고민 끝에, 결국 객관적으로 옳은 "정답"은 복잡하고 난해한 현실 "사회" 속에선 구할 수 없다는 말을 받아들였다. 그보다는 주관적이고 다양한 개인들의 "선호"들만이 있을 뿐이었다.
이 결론은 결론이지만 모순적이게도 결코 끝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선호"들 속에서 어떻게 "사회"를 꾸려나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저마다 다르게 경험하는 주관적인 현실을 살아가며 갖게 되는 여러 "가치관"들을 어떻게 조율할 수 있을까? 알아갈수록 명확한 해답보다는 모호한 질문들로 가득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더 많은 이들과 "비동의에 동의"하는 자세로 소통하고 생각을 정리하여 기록을 남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