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하고 싶은 말들이 있다. 마찬가지로 누구에게나 듣고 싶은 말들도 있다. 흔히들 하고 싶은 말만 해대는 사람을 "꼰대"라고 부른다. 반대로 듣고 싶은 말만 해주는 사람도 "아첨꾼"이라 까내린다.
그런 면에서 미야자키 하야오는 훌륭한 애니메이션 감독이다. 아니, 보다 정확히는 훌륭한 감독이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나 "하울의 움직이는 성" 같은 작품들에는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아름다운 장면들과 음악들, 그러면서도 감독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예술적으로 어우러져 있었으니까.
이 노년의 거장은, 다시 한번 그의 초기 작품들처럼, 듣기 좋은 말보다는 하고 싶은 말들을 담아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그려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꼰대"가 아니다.
왜일까? 두 번을 보고 나서도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는 인상이 남는 이 작품은, 마치 지 할 말만 해대는 "꼰대" 같다. 꿈을 꾸는 것처럼 장면들은 개연성 없이 휙휙 전환되고, 이런저런 일들은 앞뒤 없이 일어나며, 등장인물들은 이리저리 정신없이 뛰어다니지만, 끝내 큰할아버지가 일생을 공들여 찾아낸 13개의 나무조각 같은 "돌"들은 맥거핀처럼 무너져 내린다.
이 부서져가는 13번째 "돌"에는 진실로, 하야오 감독의 앞선 12개의 "돌"들이 녹아있다. 다른 공간과 연결된 문들에선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 부모님을 떠나 성장하는 주인공에게서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그리고 파도와 물로 뒤덮이는 세상에선 "벼랑 위의 포뇨"가 담겨있다. 이외에도 많은 장면들과 그가 전하는 메시지들에 대해 나열할 수 있지만, 이 정도로 마친다.
그렇게 산산조각 나 버린 "꿈"에서 깨어난 진인(眞人), "마히토"가 도쿄로 되돌아가는 장면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감독이아끼고 아끼다 클라이맥스에 도달해서야꺼낸 "혈연"이나 "선악" 같은 노친네의 "아집"은사라진다. 자신의 전부가 담긴 "이상"을 그저 잊어버리라는 말로, 어느새 노인이 돼버린 소년은 뒤죽박죽 알 수 없는 환상 같은현실을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