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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minic May 23. 2023

어떻게 MZ인생이 팝업? <운디네>,크리스티안 페촐트

인어공주 이야기 1




월트 디즈니는 영화 인어공주의 '실사화' 영화 제작을 발표하며 많은 관심을 모았다. 인어공주 모티프는 처음 운디네 설화가 발생되었을 때부터 오랫동안 재현을 반복해 왔다. 현대에 어울리는 인어공주 이야기란 어떤 변화를 겪은 것일까? 안데르센의 인어공주 이후로 몇 번이고 재탄생된 인어 공주 중 몇 번째 인어공주가 지금 우리의 곁에 있는지 생각해 본다. 세 편의 영화를 통해서다. <셰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모양>, <운디네>, <헤어질 결심>에서 나타나는 인어공주에 대해.



푸케의 운디네 동화 삽화


먼저 인어공주의 토대가 된 운디네 설화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운디네는 서양 철학의 4원소설에서부터 유래한 개념인 물의 정령의 이름으로, 1811년 독일 작가 푸케가 동명의 동화를 내며 운디네 모티프는 호프만, 안데르센과 같은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게 된다. 인간 남성을 사랑하게 된 물의 요정(또는 정령)인 운디네의 운명에 대한 비극적 스토리인데, <운디네>(2020)를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 할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운디네의 사랑을 받는 남성은-운디네가 곁에 없을지라도-운디네를 배신하면 안 된다는 금기가 생기게 되며, 이 금기를 어기고 다른 여성과 결혼하면 운디네는 반드시 배신한 남성에게 복수하고 물로 돌아가야 한다. 이러한 운디네의 운명으로 인해 운디네 이야기는 오랫동안 여성의 복수, 질투, 두려움으로 해석됐다.

유명한 이야기의 플롯을 변경하는 일은 시대상을 담고 있기 마련이다. 현대의 우리가 마주한 시대를 세 영화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우선 첫 순서는 <운디네>이다.





<운디네>, 크리스티안 페촐트, 2020




https://youtu.be/kO6lkVOtixU







<바바라>로 2012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은곰상(감독)을 수상한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이 각본, 감독을 맡은 영화로, 주인공 운디네 역을 맡은 배우 파울라 베어는 2020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여자연기자상을 받았다. 영화 자체는 국제비평가상을 받았다. 제목과 주인공의 이름에서 파악할 수 있듯 운디네 설화에서 모티프를 가져온 것이 뚜렷하다. 주인공 운디네 개인의 이야기와 독일의 도시개발 역사를 운디네의 입을 빌려 나란히 설명한다. 주인공인 운디네는 도시 모델 전시관 가이드로 설화 속의 운디네와 같은 존재다. 영화 초반부에서 운디네는 사랑하던 남자친구 요하네스와 이별하는데, 그 후 운디네는 산업 잠수부 크리스토프를 만나고 다시 한번 사랑에 빠진다.



지금과 옛 것이 다르지 않다는 주장에는 속임수가 있습니다.
마치 역사는 발전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대담한 주장인 것만은 사실이죠.



극 중 운디네는 베를린의 도시 개발사를 크리스토프에게 설명하며 위 대사를 말한다. 생각에 잠긴 듯한 운디네와 크리스토프의 시퀀스 이후로 다시 요하네스가 등장한다. 다리 부분이 깨진 잠수부 모형처럼 잠수 사고로 인해 입원한 크리스토프가 혼수상태에 빠진 사이, 결국 운디네는 자신을 또 한 번 배신한 요하네스에게 복수하고 호수로 돌아간다. 자신을 배신한 남자는 목숨을 앗아야 한다는 운디네의 운명대로다. 소용돌이치는 물거품은 관객에게 운디네 또한 죽음으로 돌아간 듯한 암시를 준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크리스토프가 다시 호수에서 운디네를 마주했을 때 운디네는 그를 죽이지 않고 아내에게 보내 주며 자신의 운명에 반기를 든다. 복수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스스로 과거와 현재가 같지 않다는 것을 증명한다. 지금과 옛 것은 다르고 역사는 발전한다. 다소 쓸쓸한 결말부지만 스스로 선택해 내며 설화를 벗어나는 운디네의 변화에 주목한 많은 평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운디네>에서 볼만한 부분은 그것뿐만이 아니다. 고전적 운디네 설화에서 나타나는 여성의 수동성에서 벗어나 운디네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선택하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비틀었다는 변주 또한 물론 괄목할만한 부분이지만, 나는 운디네의 운명과 궤를 함께하는 불안정성에 대해 말하고 싶다.


베를린은 전쟁을 겪으며 대부분의 건물이 무너진 후 새로이 만들어진 도시다. 지금까지도 여러 프로젝트로 활발히 개발이 진행되고 있는데, 이를 영화 속 운디네는 베를린 도시 박물관 도슨트 업무를 하며 설명하게 된다. 계속 변화한다는 것은 달리 말하자면 안정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운디네의 운명에 따르면 운디네는 자신의 존속을 다른 이가 배신을 하지 않으리라는 믿음에 기대야 한다. 얼마나 불확실한 토대인지 모르겠다. 이런 운명에서 벗어나는 씁쓸한 방법으로 운디네는 희생과 이별을 선택한 것이다.



분명히 불확실성은 인생을 가치 있게 만드는 원인이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운디네 또한 가지고 있는 속성이다. 그러나 일정 수준 이상의 안정성을 확보하지 않으면 불안함의 바다에서 표류하는 것일 뿐 이러한 요소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절박함과 소중함을 누릴 수 있을 정도의 시간적 여유는 생기지 않는다. 과거에 존재했던 많은 것들은 현대로 건너오며 설 자리를 잃게 된다. 고전 양식의 건물, 이방인, 설화가 그렇다. 임시계약직으로 일하고, 단기 계약 아파트에 살며, 인간이 아니라 사라져 가는 설화 속 존재라는 운디네의 모든 요소가 불안정하다. 여기에 페촐트 감독은 계속해서 사물이 깨지는 파열 이미지를 사용하며 긴장감을 더한다. 파울라 베어는 영화 내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릴 것만 같은 미묘한 불안함을 연기해 낸다. 자신에게 영원을 꿈꾸는 것은 사치라는 듯한 그녀의 태도는 결국 실제가 된다. 어쨌든 그녀는 이성과 사랑에 빠지는 방법으로 영원을 얻지는 못했다.




https://youtu.be/T_lC2O1oIew




최근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어떻게 인생이 팝업 같지.'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 그렇다. 우리 인생은 점점 지속성을 바랄 수 없게 되어 가고 있다. 불변이라는 가치가 변화하고 있는 것인지 또는 불변이라는 가치를 이루기 힘든 환경으로 멀어지는 것인지도 알 수 없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변화의 중심에 있다는 뜻인 것만은 알 수 있겠다. 요즘 애들을 MZ 세대라고 부른다. 한국에서 최근 66만 명의 20대와 30대가 비경제활동 이유로 '그냥 쉬었다'라고 답했다. 일본에는 취업을 포기하고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사토리 세대가 있다. 이들은 아르바이트만을 전전하며 더 나은 삶을 고민하지 않는다. 유럽에는 니트NEET족이 있다. 최근 COVID-19 이후로 극심해진 상황의 니트족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그나마 분노로 표출하는 편이다. 사토리 세대가 득도에 가까운 무욕의 모습을 보이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2023년 5월 1일 노동절에 이탈리아 특별 내각 회의를 통해 이탈리아 정부는 정부 보조금인 시민소득 제도를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포퓰리즘의 산물인 이 보조금 제도가 이탈리아 청년들의 구직 활동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탈리아의 고용 불안정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실직자에게 돈을 주지 않는다는 해답을 냈다는 소리다.




불안정 속에 살고 있는 현재 한국에서 10~30대의 사망률 원인 1위는 자살이다. OECD 국가들 중 자살률 1위를 유지하는 한국에서 젊음의 한가운데를 살고 있는 청년들에게 영원한 불안정이란 그다지 멀게 느껴지지는 않는 얘기일 거다. 모든 것이 불안정하다. 유명인이 죽고, 어린이가 죽고, 노인이 죽는다. 방황하기 딱 좋은 시대에 예측도 안 되는 10년 뒤를 위해 어떻게 내일 열지 닫을지도 모르는 내 팝업 같은 인생을 갈고닦을 수 있는가?



미안하지만 <운디네>를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스포일러를 하겠다. 운디네는 결국 사랑을 포기하고 호수 바닥으로 사라진다. 사랑을 떠나보내며 복수하지 않는 운디네의 시선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다. 그것이 이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이다. 그는 선택하면서 자신의 운명을 바꾸었지만 그것이 곧 행복이라는 말은 아니다. 주체성이 확보된다고 간단하게 비극이 희극이 되지는 않았다. 운디네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와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그가 영원을 다시 꿈꿀 수 있도록 주변의 많은 조건이 변화할까? 아직 모른다. 변화 중이기 때문이다.


운디네는-설화가 다 죽은 이 시대에도-설화에 대한 믿음을 지금까지 간직한 사람인 크리스토프를 만나고 잠시나마 영원을 믿게 되는데, 후반부에서 이 믿음이 다시 좌절되었을 때의 안타까움은 그에게 충분히 이입한 관객에게 쓸쓸한 감정과 운디네가 크리스토프마저 요하네스처럼 죽이지 않을까 하는 조마조마함까지 준다(앞서 말했듯 운디네는 그를 그냥 보내 준다). 반복되는 이별에 안타까움을 주며 이 영화는 다소 찝찝한 기분으로 관객을 내보낸다.


역사를 묻은 도시 위 언제든 떠나도 찾을 수 없는 익명 시민으로서 베를린 속의 운디네가 존재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누구나 어느 정도의 안정이 필요하다. 베를린의 어원은 슬라브어로 '습지의 마른 땅'이다. 상인들이 그곳에 모여 건물을 세우고 도시를 만든 것은 어느 순간 습지 중심이 말랐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베를린은 현재 서울 크기의 10배에 달한다. 그들이 습지가 이렇게 넓어지리라 예상하지는 못했겠지만 당시 그들이 모인 땅이 당장 내일 다시 습지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은 있었을 것이다.


베를린 도시 모델 전시관 회랑에 선 운디네는 말한다. 용도에 의해 건물의 외관이 결정된다. 결국 안에 담기는 것에 의해 그 성질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거꾸로 말하면 모든 포장에는 의도가 들어있다는 말이다. 미디어는 'MZ세대'를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다니며 이직을 밥 먹듯 하는 자기중심적인 세대로 그린다. 이탈리아 정부는 일자리가 없는 것은 개인의 잘못이라는 생각을 드러냈다. 물론 한국과 이탈리아를 동일시하는 것은 절대로 불가하다. 그러나 불안정한 환경 속에서 개인이 갖고 있는 욕망은 이탈리아인이나 한국인이나 비슷할 것이다. 최소한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정도의 안정을 찾고 싶은 이들의 욕망이 그들의 팝업 스토어를 오늘도 문 열게 하는 것이다. 이 영화 속 계약직 인어공주가 다시 육지로 올라왔을 때에는 좀 더 오래 사랑하기를 바라는 것이 나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용기 있게 자신의 운명을 바꾼 만큼 다음번에는 더 행복하기를 기도해 주는 마음을 우리 자신에게도 가지길 바란다. 여기저기를 떠도는 일시적 상태에 염증을 느끼더라도 말이다. 다음 영원을 궁금해하기를, 다음 마른땅을 밟기를 소망한다.






사족.

다음 인어공주는 <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의 주인공 엘라이자로 소개하려 한다. 소외된 사람들의 사랑에 대해서 얘기하기 위해, 다음 글에서도 만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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