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숨겨진 콩깍지

by 덤피free dompea ce

“뭘 보고 있어?”

어느 날 밤, 은갈 색 털을 가진 늙은 늑대에게 어린 여우가 물었습니다.

“은빛 폭포와 푸른 강물”

꼬리 끝이 하얀 여우는 늑대가 올려다보는 나무를 살펴보았습니다

“하얀 콩깍지밖에 없는데?”

생각에 잠긴 늑대는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또 뭐가 보여?”

다음 날 밤에도 어린 여우가 까만 코끝을 혀로 날름 쓰다듬으며 늙은 늑대에게 물었습니다.

“산 아래로 흐르는 계곡과 그 너머의 숲.”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아직 단단한 뒷다리에 힘을 주며 늑대가 말했습니다.

“계곡과 숲? 정말 그게 보여?”

눈이 까만 여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하얀 콩깍지를 올려다보았습니다.

그날 밤, 늑대는 여우에게 저 산 아래로 아래로 흘러가는 계곡과 그 계곡 너머의 깊은 숲에 대해 말해주었습니다.


여우는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늑대를 찾아왔고, 이야기는 끝없는 초원과 가젤 무리, 끝없는 모래밭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이야기가 모래밭 끝, 옥빛 바다에 다다른 다음 날이었습니다.


달빛도 없는 밤, 하얀 콩깍지가 달빛보다 밝게 부서지며 콩깍지 위로 투명한 무엇이 몸을 쑥 내밀었습니다.


늙은 늑대와 어린 여우는 젖은 날개를 말리고 있는 나비 한 마리를 오래도록 올려다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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