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솝우화 다시 쓰기
제우스가 가장 아름다운 새를 새들의 왕으로 뽑으려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숲 속의 새들은 모두 물가로 모여들었습니다. 새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아름다움을 뽐내며 몸단장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갈까마귀는 물푸레나무 가지에 앉아 부산스러운 물가를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갈까마귀는 몸단장을 하는 대신 새들이 어디에 깃털을 떨어뜨리는지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새들이 모두 둥지로 돌아가자 갈까마귀는 새들의 깃털을 모아 하나씩 쭉 늘어놓았습니다.
‘내가 왕이 되려면 나를 가려야 해.’
갈까마귀는 자기 앞에 놓인 형형색색의 깃털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제 아무리 제우스라도 여기서 가장 아름다운 깃털을 골라낼 수는 없을 거야.’
이 많은 깃털 중 무엇이 가장 아름다울까요?
깃털들은 하나같이 선명한 색과 멋진 무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넋을 놓고 있던 갈까마귀는 정신을 차리고 다른 새의 깃털로 자신을 치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공작 깃털은 자신의 꽁지에 끼워 넣었고, 카나리아의 샛노란 깃은 날개에 끼워 넣었습니다. 다음엔 붉은 앵무의 석류 빛 깃으로 머리 위를 장식했습니다.
갈까마귀가 다른 새의 깃털로 자신을 가리는 사이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습니다.
갈까마귀는 얼마나 아름다워졌을까요?
갈까마귀는 두근대는 마음으로 강물에 자신을 비춰보았습니다.
“이럴 수가......”
물가에 비친 모습은 자신의 생각과 너무나 달랐습니다. 강물에 비친 자신에게서는 공작의 늠름함도 카나리아의 귀여움도 앵무의 화려함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저 조잡한 장신구로 잔뜩 멋을 낸 바보가 한 명 서 있을 뿐이었습니다.
갈까마귀는 괴로움에 고개를 흔들며 깃을 펴고 온몸을 털었습니다. 갈까마귀의 몸을 가리고 있던 깃털들은 몽땅 땅으로 떨어져 버렸습니다.
그때였습니다. 활짝 핀 날개를 접지도 않은 채 괴로워하고 있던 갈까마귀의 몸에 석양이 비쳤습니다.
그러자 갈까마귀의 반짝이는 검은 깃털들이 석양빛을 받고 은행잎처럼 물들었습니다.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듯 부풀어있던 목울대의 털들도 은빛으로 반짝였습니다. 해가 좀 더 기울자 갈까마귀는 강물에 비친 자신의 머리가 은은한 보랏빛을 띠는 것을 보았습니다. 은은한 사파이어 빛이 감도는 꼬리를 흔들자 마치 푸른 물결이 출렁이는 것 같았습니다.
해가 조금씩 사라지는 동안 갈까마귀는 빛을 향해 몸을 조금씩 움직이며 강물에 비친 자기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땅에 떨어진, 이제는 그 색이 잘 보이지 않는, 깃털들을 내려다보았습니다.
갈까마귀가 둥지로 돌아간 것은 그로부터도 한참이나 지나서였습니다. 그리고 물가에는 다른 새들의 깃털들만 남아 있었습니다.
제우스가 새들의 왕을 뽑기로 한 날, 갈까마귀는 후박나무 잎 중에서 가장 큰 잎을 입에 물고 행사장으로 갔습니다. 행사장에는 벌써 많은 새들이 도착해 있었습니다.
“자기도 못생긴 걸 아나 봐.”
“나뭇잎으로 까만 몸을 가리고 왔네. 하하하.”
한껏 자신을 뽐내며 서 있던 새들은 후박나무 잎으로 몸을 가린 갈까마귀를 비웃었습니다.
제우스가 도착하고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숲 속의 새들은 앞다퉈 아름다움을 뽐내며 소란을 피웠습니다. 제우스는 새들에게 순서대로 아름다움을 선보일 기회를 주겠다고 했습니다. 새들은 제우스가 가리키는 대로 한 마리씩 앞으로 나와 자신의 자태를 뽐내고 아름다운 소리로 노래도 불렀습니다. 드디어 제우스가 갈까마귀를 가리켰습니다.
“저는 제일 마지막에 하겠습니다.”
“자신이 없나 보네. 그렇지. 그러니까 나뭇잎으로 몸을 가리고 왔지. 하하하.”
자신을 뽐내고 싶은 왕관 앵무가 갈까마귀 대신 앞으로 나서자 제우스는 행사를 다시 진행시켰습니다.
그렇게 모든 새들이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사이 어느덧 석양이 행사장을 물들였습니다. 이제 마지막 갈까마귀 차례였습니다. 나뭇잎으로 몸을 가린 채 행사장 중앙으로 나온 갈까마귀는 석양이 비치는 방향으로 몸을 돌리고 나뭇잎을 바닥에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날개를 활짝 펴고 몸을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석양빛을 받은 갈까마귀의 몸은 짙은 오렌지 빛이 되었다가 이내 은빛으로 반짝이고, 머리에서 시작된 연보랏빛 물결은 초록빛 일렁임으로 꼬리를 물들였습니다.
행사장에 모인 모든 새들은 갈까마귀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제우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갈까마귀보다 아름다운 새가 있었나 다시 한번 새들을 돌아보았으나 제우스의 눈에는 지는 태양 아래 색을 잃어버린 평범한 새들만 보일 뿐이었습니다.
제우스는 갈까마귀를 새들의 왕으로 뽑았습니다. 다른 새들도 제우스의 결정에 아무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제우스는 갈까마귀에게 새들 앞에 나와 왕이 된 소감을 말하라고 했습니다.
“제우스님, 그전에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이제부터 왕이 된 제 뜻대로 새들의 일을 정해도 되겠습니까?”
제우스는 당연히 새들의 왕이 갈까마귀이기에 새들의 일은 왕의 뜻대로 정해도 좋다고 했습니다.
새들의 왕 갈까마귀는 새들 앞에 나와 말했습니다.
“여러분. 저는 새들의 왕을 다시 뽑고자 합니다.”
놀란 눈으로 갈까마귀를 쳐다보는 모두를 향해 갈까마귀는 계속 말을 이어갔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깃털로 저를 꾸밀 생각이었습니다. 어리석게도 왕이 될 욕심에 못난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모은 여러분들의 깃털은 하나하나 모두 아름다웠습니다. 어느 깃털이 다른 깃털보다 더 낫다고 말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석양이 지자 그 아름답던 깃털들도 색을 잃고 평범해졌습니다. 그때 저는 강물에 비친 저의 아름다움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누구보다 누가 더 아름다울 수는 없으며, 각자가 빛나는 순간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새들은 어느 때보다 갈까마귀의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왕이 된 지금, 왕에서 물러나려고 합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겉모습이 아니라 왕에게 필요한 진짜 자격을 여러분들과 의논하려고 합니다. 저는 여기 모인 여러분들이 원하는 방법으로 우리의 왕을 다시 뽑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새들의 우렁찬 박수 소리가 행사장을 가득 메웠습니다.
가만히 갈까마귀의 말을 듣고 있던 제우스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새들은 모두 갈까마귀에게만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제우스가 신들의 집으로 돌아간 뒤에도 숲 속에는 새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