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그대 떠난 뒤 - 빛과 소금
장마가 시작되었다는 뉴스가 나오던 날. 회식을 마치고 집에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컴컴한 하늘에서는 비가 내렸고, 라디오에서는 ‘빛과 소금’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1집 앨범에 수록된 ‘그대 떠난 뒤’였다. 노래를 흥얼거리며 따라 불렀다.
언젠가 그대와 나는
비를 맞으며 이 길을 걸었지
우리 서로 의지 하면서
한없이 이 길을 걸었지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세상만사를 고민하던 시절이었다. 학교에서 자율학습을 마치고 나면 친구와 함께 시내 곳곳을 걸어 다니곤 했다. 밤이 새도록 끝도 없이 이야기를 나눴다. 불안과 걱정으로 점철된 10대를 빠져나오고 있던 그 시절. 친구와 함께 걷던 그 시간들이 내게는 감기약이자 해열제였다. 시커멓게 흐르는 강물을 무사히 건너게 해 준 다리였다.
졸업이 다가올 즈음에 친구와 사이가 멀어졌다. 무슨 오해가 있었던 걸까. 꽁한 마음을 버리지도 못했고, 용기 내어 이유를 물어보지도 못했다. 졸업과 함께 우리는 각자의 길을 갔고, 그를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했다. 작별인사 따위는 없었다. 긴 세월을 뛰어넘은 지금. 둘이서 나눴던 숱한 이야기들은 기억나지 않는다. 끝내 풀리지 않은 오해도 기억에서 사라졌다. 함께 걸었던 길과 추억이 남아 있을 뿐.
장마가 시작된 날. 회식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창 밖을 본다. 빗물에 굴절된 네온사인 불빛이 빠르게 지나간다. 라디오에서는 ‘빛과 소금’의 노래 ‘그대 떠난 뒤’가 흐르고, 나는 노래를 흥얼거린다. 비를 맞으며 걷던 그 길을 생각한다. 컴컴한 밤하늘과 시원한 장맛비와 축축한 운동화를 생각한다. 10대의 마지막 순간을 힘겹게 빠져나오고 있던 우리를 생각한다.
나 지울 수 없는 지난 추억을
이제와 생각해 보네
비를 맞으며 걷던 이 길을
나 홀로 걸어가 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