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나현 Jun 29. 2020

생일 때 가장 생각나는 사람

20대 이후로는 생일이면 친한 친구들과 생일파티를 하곤 했다. 혹은 남자 친구와 둘 만의 파티를 하거나.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과의 만남을 최대한 자제했다. 그래서 친구들과 케이크 앞에서 사진을 찍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일 없이 그냥 집에 있었다. 휴일이지만 일찍 일어나서 수업 준비를 하고 글을 쓰면서 오전 시간을 꽉꽉 채워 보냈다. 지난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킥킥거리며 웃다가 배달 음식을 먹고 라면도 끓여 먹었다. 그리곤 오늘 할 분량의 공부를 했다. 또 비가 올 모양인지 허리와 어깨가 아파서 곤욕이었지만 오늘 안 하면 내일은 더 힘들 테니까 꾸역꾸역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일상을 보냈지만 그래도 생일은 생일이었다.

카카오톡의 친구 생일 확인하기 기능 덕분인지 오늘은 하루 종일 축하와 기프티콘 선물 세례를 받았다.

오전 일찍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축하 메시지가 왔다. 태평양 건너에 사는 대학원 언니들과 고향이 제각각인 학생들, 그리고 몇 년 전에 가르쳤던 아이들이나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던 친구들까지. 올해는 유독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들에게 축하를 많이 받았다.


기분이 좋았다.


단순히 태어났다는 것만으로 축하를 받는다는 것이 좋았다. 내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는데도 축하를 받다니...

점점 축하받을 일이 줄어들어서인지, 내 나이라면 대부분은 으레 다 넘겼을 결혼이나 출산 같은 통과의례를 아직 지나지 못해서인지, 오랜만에 받는 축하 인사들이 정말이지 황송했다.


축하를 받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니까 열심히 살아서 축하받을 일을 많이 만들어야겠다고 얼굴에 꼼꼼하게 비누칠을 하면서 생각했다. 얼굴을 헹구고 마른 얼굴에 로션을 바르면서 다시 생각을 고쳐 먹었다. 방금 내가 한 생각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간사한 생각인지 이내 반성했다.


축하받기 위해서 열심히 살 게 아니라 축하해주는 사람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 열심히 살아야 한다. 짧은 순간이지만 나를 위해 마음을 써 주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내년 생일에는 올해보다 더 좋은 모습으로 곁에 있는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고, 지금보다 더 넉넉한 마음으로 살아내야 하니까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머리를 말리면서 다짐했다.



그리고 사실 오늘의 축하는 내 몫이 아닌 것도 안다. 감사와 축하를 받아야 할 사람은 내 엄마다.

오늘 엄마도 내 생각을 해 줬으면 좋겠다는 이기적인 바람도 조금은 있다. 하지만 엄마가 겪었던 고통을 나는 전혀 모르기에 미안한 마음이 더 크다.


내가 엄마 뱃속에 있었을 때 엄마는 어떤 기분이었는지, 나를 낳을 때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나를 낳고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나를 낳은 뒤에 미역국은 잘 챙겨 먹었는지, 아니면 혹시 산후조리를 잘못해서 지금 몸 어딘가가 아프진 않은지. 궁금한 게 너무 많지만 이 중에서 아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엄마를 이렇게 오랫동안 만날 수 없을지 알았다면 어렸을 때 좀 물어보고 어딘가에 써 놓기라도 할 것을 그랬다.


자식의 생일이 돌아오면 몸살이 난다는 엄마들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우리 엄마는 안 그랬으면 좋겠다.

나는 올해 생일 충분히 행복했고 다른 날보다 엄마 생각을 조금 더 많이 했다. 엄마도 오늘 아프지 않고 평소와 다름 없는 좋은 날을 보냈다면 좋겠다.


오늘을 빌어서 내가 살아갈 수 있게끔 온 힘을 다 해 나를 세상에 보내 준 엄마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맥주 한 숟가락을 먹여 주던 엄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