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와 무지개
언니의 딸은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은 4학년이다.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는 아파트 단지에서 도보로 3분 정도. 게다가 건널목 하나 없다. 그야말로 집에서 코앞 거리다. 아이들은 아직 야물지 못해서 종종 준비물이나 숙제를 집에 두고 오는데, 그럴 때마다 언니에게 전화를 해서 아주 당당하게 빨리 학교로 와 달라고 한단다. 어떤 날은 언니가 숙제 공책을 잘못 챙겨가는 바람에 두 번이나 학교와 집을 다녀왔다고 했다. 언니와 그런 대화를 나눌 때면 우리는 항상 이렇게 말한다.
"애들 진짜 부럽다"
내 학창 시절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준비물이나 숙제가 등교 전날 저녁부터 가방에 들어있지 않으면 불안했다. 아마 이건 맞벌이 어머니를 둔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집에서 전화를 받고 준비물을 챙겨 와 줄 사람이 없다면 혼이 나든지, 그게 싫다면 항상 정신을 바짝 차리고 챙겨야 했겠지. 나는 주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살았던 것 같다. 준비물을 안 챙겨 가거나 숙제를 놓고 온 적은 거의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나도 어쩔 수 없이 집에 전화를 걸어서 엄마에게 학교로 가지고 오라고 하고 싶은 물건이 있었다. 그건 바로 우산이었다. 어릴 땐 왜 그다지도 소나기가 자주 왔는지, 아침에 챙겨 가지 못한 우산이 간절한 날이 많았다. 그런 날은 학교 안 공중전화기 앞에 줄을 서서 동전을 짤그락거리는 아이들이 많았다. 아니면, 이미 교실 복도나 현관 앞에서 우산을 들고 아이들을 기다리는 엄마들도 많았다. 나는 한 번도 우산을 들고 올 엄마를 찾거나 동전을 짤그락거린 적이 없었다. 비가 오면 그대로 비를 맞고 집에 돌아가서 책을 펼쳐 말리고 무거워진 몸으로 이불속에 기어 들어가 오랫동안 낮잠을 잤다. 축축한 몸과 마음이 더 눅눅해져서 기절한 듯 낮잠을 잤다. 그땐 오히려 쓸쓸함을 느끼지 못했다. 전화를 걸 곳도, 와 줄 사람도 없으니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아서 실망감도 없었다.
그런데 나에게도 엄마에게 전화를 걸 기회가 생겼다. 중학교 3학년 때, 엄마가 며칠 동안 집에 있었던 적이 있었다. 가끔씩 그렇게 며칠 동안 시간을 보내고 다시 떠나곤 했던 엄마였으니까 엄마가 집에 있는 시간을 만끽하는 게 큰 기쁨이었다.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고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집에 전화를 걸었다. 엄마에게 혹시 우산을 가지고 나를 데리러 와 줄 수 있냐고 물어봤다. 그러면서 저 멀리서 한 손에는 우산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우산을 쓰고 걸어오는 엄마를 상상했다.
그런데 엄마는 그냥 뛰어서 빨리 오거나 신문지 같은 것을 쓰고 오면 안 되겠냐고 했다. 아주 단호했다.
"우리 엄마 못 온대, 그냥 박스 주워서 쓰고 가자"
라고 친구에게 말하면서 나는 마음이 아주 좋았다. 그리고 기뻤다. 엄마가 우산을 가지고 오지 않았는데도 기뻤던 마음을 설명할 길이 없다. 그냥 저 전화통화 자체가, 그리고 전화를 끊고 나서 친구에게 우리 엄마가 못 온다고 말했던 것을 전할 때에도 마음이 덩실거리는 것 같았다.
대충 박스를 쓰고 다 젖은 채로 집에 들어갔지만 몸이 전혀 무겁지 않았다. 책을 말리면서도 기뻤고 신기하게 그 날은 낮잠도 안 잤다. 그건 딱 한 번 경험할 수 있었던 비 오는 날에 대한 행복한 기억이었다. 엄마가 집에 있다면 우산 없이 비를 맞아도 기분이 좋은 것이었다.
만약 엄마가 우산을 가지고 나를 데리러 왔다면 그건 그것대로 기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겠지만 엄마가 오지 않아서 이야기가 완성된 기분이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서 우산을 가지고 좀 와 달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그 기분을 느낀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리고 혹시라도 그날 엄마가 우산을 들고 와 줬다면 엄마가 올 수 없었던 숱한 날들 동안 나는 아마 조금 더 눅눅해졌을 것 같다. 그 날의 전화 통화와 엄마의 거절은 소나기 끝에 걸린 무지개처럼 아직도 마음에 반짝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