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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날드곽 Jan 27. 2023

사진이 여행입니다.1 겨울 제주의 맛

제주도 3박4일 겨울여행 알짜 핫스팟 큐레이션

폭설과 혹한, 제주는 올 들어 유난히 비행기 결항이 잦고 불안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울한 날씨 예보에 굴하지 않고 제주도 여행을 감행했다.

겨울 제주의 맛은 어떨까?  


이제 여행의 성패는 사진과 콘텐츠

첫날 (콘셉트: 맛, 멋, 사진) - 제주공항 도착 > 숙성도 맛집 > 송악산 둘레길 > 서귀포 올레 야시장 > 더위 호텔


예보대로 밤새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기온 급하, 제주행 비행기는 활주로에서 결빙 작업으로 약 40분간 지연되었다. 'K-일기 예보 생각보다 정확하군하...'


제주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빛의 속도로 짐을 찾고 예약한 렌터카(전기차)에 올랐다. 금강산도 식후경. 일단 제주 돼지의 자존심, 돼지의 정점, 돼지 맛집 '숙성도'로 Go Go Go!!

스토리텔링으로 돼지고기의 위상을 높인 숙성도

평일 낮2시가 넘었는데도 본관은 만석, 약 200미터 거리의 별관에 한자리가 있다는 희소식에 가족 모두 전속력으로 달려 자리를 차지했다.


입구부터 신세계 정용진의 사인과 코멘트, 고기 부심 등 힙한 인테리어와 발칙한 문구들이 시선을 잡는다. '금강산도 '찍'후경', 사진이 먼저다.


구석구석 세심한 마케팅 포인트들이 가득했다.

일단 '차림표(메뉴)'의 표현들이 찰지다. 720 숙성 흑삼겹살, 720 흑돼지 1%, 960 숙성 뼈 등심(흑돼지 프렌치 랙) , 이백살 등 숙성시간, 숙성 방법, 소고기식 부위 표현을 가져와서 신뢰도와 기대감을 매우 품위 있게 높였다. 먹기 전에 일단 기존 고깃집들과 class를 구분해 주는 느낌.


저녁에는 매진될 한정수량이라는 말에 숙성 뼈 등심, 흑돼지 1%, 이백살을 각 1인분씩 시켜보았다.

검은 유니폼을 입은 숙련된 언니, 오빠들이 고기 부심 가득한 표정으로 마치 샤넬 가방을 보여주듯 고기들을 소개하고, 사진 찍는 시간을 주고, 구워주고, 먹는 방법들을 소개해 주었다.


소문난 맛집의 명성에 걸맞은 곁들여먹는 소스들과 장아찌류의 기본기가 꽤 탄탄했다. 첫 한 점은 한우를 영접하듯 팡팡 터지는 육즙을 느껴봤다. 시장이 반찬인 것인지, 명성과 고기 부심에서 나오는 시각적인 마케팅 요소들에 대한 만족감인지 전체적으로 흠잡을 데 없는 맛, 멋, 사진들이었다.


세상에 없는 돼지고기 맛이라고는 할 수 없겠으나 MZ 세대의 아이들과 부모 세대까지 모두의 감각을 만족시킬 만한 콘텐츠와 돼지의 격을 올린  마케팅 기본기가 참 좋았다.


배를 불렸으니, 찬바람을 뚫고, 제주 오름  TOP 3중에 하나인 송악산 둘레길로 옮겼다.

송악산 둘레길 중턱에서 만난 백마, 여행은 늘 그렇게 의외의 즐거움을 준다

겨울 제주의 바람은 생각보다는 강했다. 패딩에 멋으로 달린 줄 알았던 '후드'가 그 바람을 이겨주었다.


송악산은 끝도 없이 펼쳐진 절경의 바다와 억새의 강인함, 푸른 소나무들이 절정으로 어울리며 찬바람 속 두 시간 걷기에 충분한 보상을 주었다. 물론 이 또한 사진 핫스폿들의 대 향연이었다. 생각보다 코스는 짧지 않았고, 사진을 여러 각도로 몰입해서 찍다 보면 추운 줄도 모르고 두 시간이 훌쩍 넘어간다.


저녁은 서귀포 올레시장 야시장에 들러, 탕후루(과일에 단물을 입힌 중국식 과일 사탕)로 당을 보충하고, 마치 경매장처럼 뭔가 사인을 주고 받으며 길게 줄을 선 마농 치킨(마늘치킨), 횟집 등은 가볍게 스킵하고, 상대적으로 줄이 짧은 제주식 왕만두, 오메기떡, 한라봉 떡과 1kg에 3천 원인 귤을 잔뜩 사서 호텔로 향했다. 야시장 또한 맛, 멋, 사진 ^^        

더 위(WE) 호텔 2층 라운지

고민 끝에 예약한 더위 호텔(WE Hotel)은 원래 영리 병원 사업의 빅 픽처로 야심 차게 출발한 호텔로 5성급 호텔과, 병원, 각종 힐링 프로그램, 수영장, 사우나, 2개의 프라이빗 숲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숲 스토리텔링(약 40분) 수영장과 야외 자쿠지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저녁엔 사진처럼 멋진 2층 홀에서 저녁시간 내내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와인을 매우 여유 있게 즐길 수 있다.  한라산 뷰에 겨울 호캉스를 여유 있게 즐기며 글을 쓰거나 핫한 사진을 찍기에 꽤 괜찮은 공간이다.


길이 막히면 새로운 길이 열리고
어디서든 사진이 승부를 가른다

둘째 날 (콘셉트: 핫 스폿 쇼트트랙) - 한림항 > 바당길(최고의 조식) > 환상숲 곶자왈 > 소리 소문 서점 > 비양놀 커피&브래드 카페 > 포도 뮤지엄 > 동백 포레스트 > 죽마고우(저녁식사)


둘째 날은 호텔에서 한시간거리 한림항에서 배 타고 비양도로 들어가 비양도에서 보말 죽(소라 죽 같은 것)과 보말 칼국수로 조식을 하고 비양도에서 제주도를 한번 바라보고 싶었다. 그러나 자연은 늘 겸손을 가르치는것인지, 어제 바람이 유난히 세다 했더니, 결항이란다. 배 시간에 맞춰 새벽같이 움직였으나, 일정을 리셋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당황하지 않고 '보말 죽', '전복뚝배기', '조식 맛집'으로 검색하니 '바당길'이라는 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인생 전복죽 '바당길'

한림항에서 차로 5분 거리 바당길은 사진처럼 이렇게 바닷가에 섬처럼 서있다. 바람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얇디얇은 조각 섬. 안으로 들어서니 뭔가 편안하고 예열이 잘 된 온기가 식당 안에 가득했다. 식당 내부에서 본 바다 풍경은 마치 철새 도래지와 같은 절경이었다. '여긴 철새 뷰 맛집인가?'

조식 최강 바당길. 인생 전복죽을 먹다

전복죽이 정말 대박이었다.

죽반 전복반, 전복 내장으로 진하게 간을 내어 서울에서 접하기 쉽지 않은 깊디깊은 바다의 맛을 보았다. 전복죽의 감동에 오히려 중박 이상이었던 보말 죽과 전복뚝배기가 다소 가리워졌다. 죽(13,000원)과 뚝배기(15,000원)의 가격에 미안할 정도로 싱싱하고 인심 가득한 아침식사였다. 음식 못지않게 좋은 기억으로 남는 젊은 여사장님. 후식으로 귤도 챙겨주시고,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따뜻하게 환대를 해주셔서 한림항 결항의 충격을 눈 녹듯이 잊었다.


오전 일정이 빈 김에 모든 일정을 뒤집었다. 일단 한림항에서 가까운 환상숲 곶자왈, 오후 예약을 오전 10시로 바꿨다.


한 제주도 출신 은행원의 인생 드라마 콘텐츠로 재발견된 환상숲 곶자왈. 곶자왈은 제주말로 곶(숲)+자왈(가시) 즉 가시덤불숲이다. 농사짓고, 돼지 쳐서 먹고살던 제주에서 그 옛날 가시 숲은 뭘 할 수 없는 쓸모없는 땅이었다.


28년전 건강 악화로 귀향하여 숲을 마주하며 대인기피가 생길 정도로 떨어진 자신의 자존감을 회복하고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하는 감동적인 콘텐츠는 '인생의 재발견', '환경을 극복하는 자연의 신비와 생명력', '가족들의 무한도전', '딸과 사위의 러브스토리까지 풍성하고 진정성 있는 스토리로 꽉 차 있었다.

사실 환상숲은 제주도에 있는 수많은 곶자왈 중 규모가 작은 편에 속하고, 숲해설도 약 40분 정도로 길지 않다. 하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숲을 진심 어린 마음으로 가꾸고, 하루 평균 대여섯 명의 관광객 밖에 되지않는 사업을 수년간 유지하여 이제 연간 20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별의 순간을 맞이한 콘텐츠가 이 숲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숲 설명을 듣다 보면 한겨울에 초록으로 뒤덮인 숲의 생명력과 마른 돌 위에 축축하게 뿌리 내린 자연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다.


갈등(칡갈자에 등나무 등자)의 어원처럼 칡이 등나무를 감아서 조여 죽이고, 등나무가 칡을 말려 죽이는 장면은 돌고 도는 삶의 이치를 깨닫게 한다. 5000원 입장료로 괜찮은 콘텐츠과 사진을 즐길 수 있었다.


아무리 롱패딩이 강력해도 입 돌아갈 수 있으니 바람 부는 날은 중간중간 실내코스로 돌자.

서점도 들르고, 박물관도 가고, 예쁜 카페도 가고...

뱃길이 끊기니 새로운 길들이 보이네.    


바람을 피해, 환상숲에서 가까운 작은 스토리텔링 책방, 소리 소문에 들러봤다.

숨은 핫스폿 서점 소리소문


책방에 억지로 따라온 남자들을 위한 책 큐레이션, 만년필로 필사를 해볼 수 있는 책상, 책의 제목을 가리고 키워드만 노출하여 선물용으로 파는 블라인드 책, 곳곳에 숨어있는 느낌 있는 그림들과 발칙한 포스터들... 책을 읽지 않고 책의 지적인 감성을 느끼고 싶어 하는 요즘 것들의 트렌드를 관통하는 콘텐츠과 사진 스폿들이 가득했다.


렌터카와 내비게이션, 다양한 블로그의 사전 정보로 여행하는 요즈음, 어디에 숨어있어도 콘텐츠와 사진 스폿만 확실하면 그곳이 명소이고 맛집. 소리소문은 진입가 공사 중이라 차를 아주 멀찍이 대고 우박을 맞으며 한참을 걸어서 들어갔다. 찬바람에 한참을 걸어서인지 서점안으로 들어서니 동화 속 나라에 들어온것처럼 밝고 따듯하고 위트 있었다.


아침부터 분주히 움직였더니, 당이 떨어진다.

맛있는 스콘이 유명한 뷰 맛집 비양놀 카페에 잠시 들렀다.

최강의 바다뷰 비양놀 카페

카페 문이 열리자 딸아이의 눈빛이 빛났다. 창가로 달려가 정신없이 사진을 찍고, 포즈를 잡았다. 카페 내외부로 가득한 포토 스폿들, 넘실대는 바다도 좋고, 바다를 배경으로 포커스를 아웃하여 인물 사진을 찍기도 좋고, 마치 식물원과 같은 내부 인테리어도 독특했다. 커피와 스콘은 누가 어디로 먹었는지 알 수 없지만, 정신없이 사진을 찍다가, 문득 창가 쪽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는 수많은 눈동자들이 느껴져 한 시간쯤 머물다 못 이기는 척 나왔다.


다음 핫 스폿은 포도 뮤지엄, 주제는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

난민들의 애환과 시대정신을 바탕으로 꾸며진 전시물들은 그야말로 full of photo 스폿이었다. 뮤지엄 입구부터 전시 작품 하나하나 공간 하나하나 딱 MZ세대들이 원하는 정제되고 세련된 조형물들과 구도들로 가득했다.


사진 스폿과 콘텐츠로 가득한 포도 뮤지엄

전시 내내 개인 이어폰으로 도슨트의 설명을 선택적으로 들을 수 있어, 단순한 사진 찍기 말고도 괜찮은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이다. 아이들에게는 있어빌리티 한 인스타 사진을 부모들에게는 오래간만에 글로벌 이슈에 대한 작은 성찰의 기회를 주는 공간.


해 떨어지기 전 한 시간은 사진 스폿의 끝판왕, 동백 포레스트로 향했다.

동백꽃이 도처에 있는 제주라 굳이 가야 할까 하며 반신반의했으나, 결론적으로 딸아이의 사진 관점에서의 만족감은 극상으로, 매우 높았던 여정이었다. 한겨울에 붉은 동백 꽃밭이라... 핀 꽃도 낙화도 모두 꽃과 꽃이라.


사진을 위한 사진에 의한 스폿 동백 포레스트

입구부터 정신없이 셔터 누르는 손이 얼어붙을 정도로 사진을 찍었다. 동백 가든과 둘레길을, 일보삼사, 한 걸음에 사진 세 장씩 찍으며 천천히 돌았다. 사진으로만 치면 가성비가 꽤 좋았다. 아이들 특히 딸아이가 있는 집은 일정에 포함시키는 것을 추천드린다.


콘텐츠는 더 맛있게 느끼게 한다


셋째 날 (콘셉트: 콘텐츠 콘텐츠 & 콘텐츠) - 백종원 더본 호텔 조식 > 따라비 오름 > 김영갑 갤러리 > 더 위 호텔 수영장과 야외 자쿠지


우리가 묵었던 호텔이 아닌 호텔 조식 맛집 백종원 더 본 호텔 조식을 오전 10시에 어택 했다.

10시 이전은 호텔 투숙객에게, 이후엔 오후 2시까지 작정하고 외부고객에게 오픈한다. 생각할수록 백종원이라는 사업가의 수완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3~5만 원 하는 호텔 조식을 1.5만 원으로 낮추고 오전 10시부터 줄을 설정도로 기본기가 짱짱한 메뉴와 그 메뉴를 더욱 맛있게 느껴지게 하는 콘텐츠를 식당 구석구석에서 보여준다. 정말 콘텐츠를 잘 가지고 노는 오빠다.   


왠지 더 맛있게 느껴지는 백종원의 조식 뷔페

가성비 조식 뷔페이고, 가장 가심비가 높은 것은 직접 만들었다고 하는 식빵, 당근잼, 딸기잼과 쌀국수 정도다. 이를 먹기 위해 줄 서서 들어온 설레임. 널찍널찍한 일반적인 호텔 조직과는 달리 백종원 프랜차이즈 식당급의 촘촘하게 배치된 테이블에서 미친 듯이 흡입하는 사람들. 식당 넓은 면마다 대형 LED 스크린을 통해 '직접 만든 소시지, 직접 만든 소스, 직접 만든 육수'를 강조하며 식감을 더해준다. 마치 백종원이 앞치마 두르고 빵을 구워지는 장면이 무의식 속에서 꿈틀댄다. 그래 호텔 조식도 백종원처럼!!


백종원 조식의 과도한 포만감을 안고 사진작가 김영갑이 사랑한 따라비 오름으로 향했다.

따라비 오름은 첫날 송악산의 바다와 어우러진 풍경과는 달리 360도 펼쳐진 억새의 넘실거림과 푸른 초장의 비현실적인 이중주가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겨울이 이렇게 풍성하고, 어찌 이리도 푸른가?' 변덕스러운 날씨에 시시각각 변한다는 제주, 매콤한 겨울바람 속에 펼쳐진 따라비 오름의 풍경들이 겨울 제주 여정의 정점을 찍어준다. 물론 당연히 사진 찍기 스폿으로도 탑 오브 더 탑이다.    


오름 중 1등, 따라비 오름

368개 제주 오름 중 가장 아름답다는 평을 받는 따라 비 오름을 감탄하고 감탄하며 천천히 두 시간 정도 오르내리고, 이 오름을 사랑하고 아꼈다는 사진작가 김영갑의 유작들이 전시된 두모악으로 향했다. 작가의 시선과 나의 아이폰의 시선 차이를 느껴보고자...


사진작가 김영갑의 갤러리 두모악

두목악은 입구부터 사진 스폿이 가득했다. 세련된 갤러리 간판, '외진 곳에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로 방문객을 맞이하는 여인상, 곳곳에 재치 있는 조형물들로 가득한 정원, 그리고 작가가 생을 다해 찍은 불멸의 사진들, 공간이 주는 놀라운 힐링, 폐교 사이사이 감성을 가득 담은 벤치, 조경, 그리고 정말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를 다녔던 사람들만 느낄 수 있는 건물벽에 말리는 대걸레들까지 모두 ‘힙'하고 '멋'스러웠다. '외진 곳이라도 의미가 있고 멋이 있으면 사후에도 이리 빛이 나는 것이구나.'


겨울바람을 원 없이 내리 사흘 맞고 또 맞고, 하루쯤 겨울 호캉스의 묘미 호텔 수영장과 자쿠지에서 힐링하고 하루를 마무리를 했다.


여행의 이유, 변수, 의외성 그리고 귀인


넷째 날 (콘셉트 : 비양도 재도전, 귀인을 만나다) - 더 위 호텔 숲 체험 > 도민 맛집 방모루 > 한림항 > 비양도 > 돈가스 맛집 리릭> 바이제주 > 제주 공항


며칠 숲 설명을 듣고, 오름을 오르고 하였더니 이제 제법 풀, 나무, 꽃들이 눈에 들어온다. 고민 끝에 호텔에서 제공하는 무료 숲 체험에 참가했다. 호텔 로비에서 오전 9시에 모여 이동하는 일정. '우리 가족만 있으면 어쩌지...' 우려 속에 로비에 나가니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근 30여 명의 포레스트 검프의 떼 달리기와 같은 인파가 넘실대고 있었다.


"곶자왈이 무슨 뜻인지 아세요?" "곶은 숲, 자왈은 가시덤불"

"동백꽃 보셨나요?" "네..."

"저 풀이름 뭔지 아세요?" "콩자반 아니 콩짜개“

3일 만에 척척박사가 된 우리 가족은 숲 체험 우등생으로  등극했다.  


무료로 제공하는 숲 체험은 한 40분간 썩 괜찮은 콘텐츠로 진행이 되었다. 특히 곶자왈 여정이 없었던 사람들에게 나름 신선한 스토리들이었을 듯하다.


"제주에 왔으니 떠나기 전에 도민이 추천하는 맛집은 한 군데 들러야지." 아내의 지인이 추천한 맛집들은 모두 제주시 쪽에 있어서 동선이 맞지 않아 망설였었는데, 마지막 날이니 1시간 30분을 달려서 한 군데 정도는 도전을 해보기로 했다. 메뉴는 전복 돌솥밥, 맛집은 방모루.


제주의 길은 대체로 막히지 않는다. 중간중간 30Km 미만의 보호구역들이 제법 잦고, 평균 속도를 80km 이내로 단속하는 구간들이 있지만 그래도 같은 1시간을 운전을 해도 차가 계속 움직이기는 해서 체감 시간이 짧게 느껴진다.


도민 맛집으로  소개받은 집은 많았다. 회 국수 맛집 해녀촌, 참돼지 웰빙탕 등. 그중 호불호가 가장 적을 방모루로 향한 것이다. '정말 먹을 곳이 너무나 많구나...' 아내와 딸은 전복 돌솥밥, 나는 성게미역국을 시켰다. 그 들의 밥을 빼앗아 먹고 나의 성게미역국은 독식할 생각으로.


정말 전복이 돌솥 가득 나왔다. 심지어 비벼 먹는 파 간장도 예술이었다. 별도 메뉴로도 있는 고등어 찜이 솥밥을 비비고 있는 동안 밑반찬으로 나왔다. ‘맛집 찾아 멀리서 온 수고를 삼단 고음으로 달래주는구나...' 일정 중에 유일하게 동선을 튀게 잡은 맛집 탐방 존 맛, 대성공이다. 나오는 길에 주먹만 한 한라봉 비슷한 귤을 또 한 주머니 주신다.


돌솥밥 간장 내음이 채 가시기 전, 둘째 날 실패한 한림항에서 배 타고 비양도 투어 도전을 감행했다.

제주시에서 한림항까지 또다시 1시간 30분, 약 70km, 두시 전에 도착해야 하는데 예상 도착시간이 2시 10분으로 나오고... 일단 가보기로 했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인연이 아닌 것으로.


아이와 아내와 식곤증으로 잠든 사이, 간만에 레이서 본능을 살려, 거의 앞바퀴를 드는 수준으로 달리고 달려, 1시 50분에 한림항 매표소에 스키드 마크를 내며 도착했다. '미안,  중간에 우리 몇 번 죽을뻔했었어.' 두 번째 도전만에 비양도행 배를 극적으로 탔다. 바람 탓인지 정말 배가 넘실넘실 제법 크게 흔들렸다


비양도는 생각보다 매우 작았다. 남자 어른 걸음으로 한 30분 정도 도는 코스.

'아 남는 두 시간 동안 뭐 하지...' 고민하던 차에 아주머니들의 까르르 웃음소리와 '가이드해드릴까요?" 굵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무려 유네스코 소속 베테랑 가이드. 심지어 무료. '귀인이구나. 항상 착하게 살아야겠다.'


여행에서 남는 것은 콘텐츠와 스토리텔링.  

유네스코 오빠는 비양도 마을 입구부터 온갖 스토리를 풀어냈다. 제주도 담벼락이 쓰러지지 않는 이유, 비양도에서 사람이 살기 시작한 시점, 그야말로 한 걸음에 스토리 하나씩, 거기에 리액션 좋은 50~70대 어머니들의 다소 과한 웃음과 질문이 이어지면서 이제 걱정은 '이 속도로 두 시간 만에 배 놓치지 않고 다 돌 수 있을까?'로 바뀐다.


가이드 아저씨의 말이 하나 기억에 남는다.

"제주도에 오시면 굳이 비양도를 올까 말까 하시는데, 안오시면 후회고, 비양도에 오시면 산 정상에 오를까 말까를 고민하시는데, 안 오르시면 손해죠. 제주도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자리거든요."

뭐든 망설여 질 때는 하는게 좋다.

비양도에서 본 제주도 서쪽바다

여행은 늘 그렇다.

꽉 짜여진 일정이 일정대로 흘러가지 못한다. 변수가 생긴다.

생각지도 못한  맛집을 만난다. 잔뜩 기대를 하고 들어간 명소에서 지나친 간섭을 받거나 서운함을 맛본다.

그리고 비양도 오빠 같은 귀인을 만나고, 흐린 날씨에만 볼 수 있는 기막힌 절경을 만난다.

봄이 좋다 말할 수 없다. 여름이 더 좋다 말할 수 없다. 모두 다르고, 시시각각 변한다.

늘 그렇게 자리를 지키며 풍파를 견뎌내는 위대한 자연을 우리처럼 지나가는 사람들이 와서 보고 듣고 서로 다른 각자의 기억으로 돌아갈 뿐.   


겨울 제주는 좋았다.

또 오고 싶다. 봄에도, 여름에도, 가을에도, 다시 겨울에 같은 곳을 보고 싶다. '그곳 잘 있는지'


정말 고맙다.

송악산, 곶자왈, 따라비 오름, 바람과 억새, 비양도


그리고 인사도 받지 않고 총총히 뱃머리에서 헤어진 멋쟁이 가이드 아저씨 정말 고맙습니다.

'저도 그렇게 누군가에게 꼭 귀인이 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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