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글로리'만이라도...
3월 10일을 기다렸다. 나도 수많은 그대들도.
WBC야구 한일전과 넷플릭스 K-드라마 더글로리 Part.2를 쌍으로 영접할 결심.
저녁 7시에 시작한 야구는 3회 말을 지나며 답답한 흐름과 일본 투수진과의 큰 차이를 실감하며 콜드 게임을 겨우 면한 것 정도로 위안을 삼았다.
밤샘 각이다
'더 글로리'는 야구 한일전과 대비되는 퍼펙트 게임으로 빛났다. 주당 두 편씩 끊어서 올려주던 Part.1과 달리 가장 OTT적인 개봉 전략으로 8편의 시리즈가 한 번에 올라왔다. 3월 10일 밤부터 11일 새벽 동인 여덟 편의 정주행을 깔끔하게 마친 지인들, 폐인들의 후기가 SNS에 속속 올라왔다. 대부분 호평 일색, 화제의 중심에 있는 드라마이다 보니 연출을 맡았던 안길호 PD의 학폭 논란 등 논란이 될 만한 노이즈도 함께 있었다.
더 글로리 Part.2는 그야말로 되는 집.
2월 26일 국수본부장으로 임기가 내정되었던 정순신 씨 아들의 학폭 사건이 범 국민적으로 큰 공분을 사며 별도의 국정조사로 횃불이 산불로 옮겨 붙고 있던 시점에 대한민국 최고의 K-학폭 드라마는 그렇게 심도 있게 손님들을 맞을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이렇게 극적인 사전 노이즈 마케팅이 일찍이 있었던가?
Part.1을 통해 명확한 각자의 캐릭터로 자리 잡은 출연자들은 문동은 역의 송혜교 박연진 역의 임지연 외에도 주여정 역의 이도현, 전재준 역의 박성훈, 하도영 역의 정성일, 이사라 역의 김히어라, 손명오 역의 김건우, 최혜정 역의 차주영 등 학폭 어벤저스들과 인생연기를 펼쳐준 강현남 역의 염혜란 등 모두가 주인공의 무게로 버릴 장면 없는 메소드 연기의 대향연을 보여주었다. 그 야말로 꽉 찬 대본, 꽉 찬 연기.
SNS상에서 한 친구는 지극히 나쁜 놈들을 착하고 약했던 주인공이 차례차례 처절하고 지능적으로 복수하는 것만큼 감동적이고 재미있는 것은 없다고 평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철저한 현실에선 정말 가능성이 적은 탑 티어급 판타지라며.
마지막 회를 조금 아쉬워하는 친구들도 일부 있었다. 뭔가 산으로 가는 느낌. 15부에서 끝난 드라마를 애써 주여정의 복수까지 극강의 필력으로 이어 붙여 멜로와 쌍복수를 완성시킨 모두를 위한 모둠 회 같은 피날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제되고 힘 있는 명대사들로 올 해 최고의 화제작임을 명확히 했다.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한 학폭벤저스들과 철없는 엄마를 향한 동은의 복수의 말들은 서늘하다.
"날 찾아낼 수도 있고, 여전히 염치가 없을 수도 있지만, 자식 인생 망친 년이랑 편은 먹지 말았어야지."
"내가 당신을 용서 안 하는 이유는 당신이 내 첫 가해자라는 걸 당신은 지금도 모르기 때문이야."
"고마워, 엄마. 하나도 안 변해서.", "그대로여서 고마워."
"당신들도 나처럼 뜨거웠기를, 쓰리고 아팠기를..."
최고의 씬 스틸러 중 하나로 버릴 것 없는 연기를 펼친 강현남이(염혜란) 캐나다로 유학 가는 딸의 홈스테이 주인에게 보낸 편지 내레이션은 남편의 폭행장면과 명암이 극단적으로 대비되며 깊디 깊은 여운을 준다.
“선아는 박복했던 저한테 하나밖에 없는 기쁨이었습니다. 많은 거 부탁드리지 않겠습니다. 우리 선아는 알러지도 없고 건강하니 이것저것 다 먹여주세요. 저의 '기쁨'을 당신께 보내드리니 부디 '사랑'을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드라마 말미에 동은이 집주인 할머니에게 보낸 편지는 상처 있는 모든 이들에게 그래도 살다 보면 때론 바람도 봄볕도 마주하게 되는 삶의 이치를 담담하게 위로해 준다.
“한때는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뭐가 됐든 누가 됐든 날 좀 도와줬다면 어땠을까. 그렇게 열여덟 번의 봄이 지났고 이제야 깨닫습니다. 저에게도 좋은 어른들이 있었다는 걸. 친구도, 날씨도, 신의 개입도요. 그리고 지금은 추우니까 나중에 더 따뜻할 때 봄에 죽자던 말은 봄에 피자는 말이었다는 걸요. 저를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잘 크진 못했어요. 하지만 언젠가는, 어느 봄에는 활짝 피어날게요."
그렇게 김은숙의 필력과 K-드라마 최고의 제작진의 협주로 더 글로리 Part.2는 학폭 신드롬이라는 사회적인 공감대 속의 접신 수준의 화룡정점으로 결국 이름값을 해낸다. Part.2 공개 하루 만에 26개국에서 넷플릭스 TV부문 1위, 세계 3위로 출발하여, 사흘 만에 1위에 오르는 놀라운 성과를 당연하게 느끼게했다.
화룡정점 속 옥에 티
주여정의 집에서 은근슬쩍 등장한 발포 비타민 PPL은 사전 제작을 위한 필요악이었을까?
제작비 걱정이 없는 국가대표급 K-드라마 속 PPL은 다소 의구심을 남긴다.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가 K-드라마를 찾아주기 이전, 드라마 제작 예산 확보를 위한 협찬은 분명 필요악이었다. 치솟는 제작비와 시청자들을 높아진 눈높이를 맞추기 위한, 더 좋은 드라마를 만들기 위한 제작사의 노력으로 PPL을 알고도 잠시 눈감아 줄 수 있었다. 특히 유명작가들 중 PPL을 개연성 있게 극 중에 잘 녹이는 것으로 유명한 작가들도 공공연한 사실이다.
킹덤과 오징어 게임의 넷플릭스를 통한 글로벌 메가히트 후 K-드라마의 제작 프로세스와 영업구조는 획기적으로 개선되었다. 기존에 제작비 100%를 들여서 제작 후 방송사에 30~50% 수준에 판권을 넘기고 PPL 등 협찬으로 10~20%의 제작비를 부분적으로라도 감당해야 했던 구조에서 더 글로리와 같은 OTT오리지널 IP 드라마의 경우 넷플릭스 등으로부터 제작비 100%를 지원받고 안전마진 10~20%를 보장하는 구조로 선진화되었다. 여기에 추가로 구작의 매출과 이익까지 플러스 알파로 확보할 수 있는 기회까지도 열려있다.
이런 맥락에서 더 글로리까지 건강식품 PPL이 등장했다는 점은 어떠한 세련된 연출로도 이심전심으로 보듬어 주기가 쉽지 않다. 완성도 높았던 Part 1보다 한층 높아진 기대감 속에서 개봉된 Part 2의 위상을 생각하면 조금 많이 아쉽다.
세계 1위 '더 글로리'만이라도…그 달콤함을 참아주었더라면… 높아진 시청자들의 기대를 조금 더 존중해 주었더라면... 유료 OTT의 순도를 조금 더 고민해 줬더라면 어땠을까?
맛집으로 이름난 K-드라마 제작사는 더 이상 PPL을 필요 조건으로 움직이지 않을 수 있다. 바뀐 몸값을 감안하여 갑툭 PPL과 잠시 헤어질 결심을 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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