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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날드곽 Sep 10. 2023

얻어먹을 결심

조금 얻어먹어도 괜찮아요.



한국 사람들은 대체로 신세를 잘 못 진다. 밥을 한 끼 얻어먹으면 밥을 한 끼 꼭 사야 하고, 술을 한잔 얻어먹으면 나도 한번 사야 한다. 그게 사는 도리 일 수도 있고, 염치 일 수도 있겠다.


주재원으로 10년가량 함께 지냈던 인도인들은 이런 한국사람의 관점에서 염치가 별로 없다. 스스럼없이 남의 도시락에 포크를 들이대고, 립서비스로 더 먹으라고 하면 정말 많이 더 먹는다. 웬만큼 대접받아도 굳이 되갚으려는 강박이 우리만큼 크지 않다.


인당 GDP 3만 불의 대한민국과, 2천 불 남짓의 인도를 놓고 본다면, 우리가 전쟁을 겪고, 최빈국을 지나며 생긴 심리적 특성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물론 이시형 박사의 명저‘배짱으로 삽시다.‘에선 한국인들의 남의 집에서 밥 한 그릇 더 달라고 잘 못하는 심리를 그런 뉘앙스로 표현하기도 한다. 부분적으로 그럴 수도 있겠다. 없이 살면 눈치가 느는 것이니


한국사람들은 남의 이목에 조금 더 예민하다.


’ 나를 어떻게 볼까?‘, ‘이렇게 얻어먹기만 하면 염치없는 놈으로 생각지 않을까?’ 이런 심리가 상당히 크게 자리 잡고 있다.


대가를 바라고 받는 접대로 얻어먹는 게 아니라면, 누군가에게 얻어먹고, 대접받을 수 있는 것은 꽤 행복한 일이 아닌가? 지난 시간이 주는 보상이라 생각할 수도 있고, 물론 언제고 나도 기회가 되면 대접할 수 있겠지만 꼭 1:1, 이에는 이, 술에는 술, 치맥은 치맥으로 갚을 필요는 없다.


나도 셀 수 없이 많은 후배들과 동료들을 대접했다. 누굴 대접했는지 사실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대접할만하여 했을 것이고 당시 그럴 여유가 있었을 것이다.


올 들어 후배들에게 술, 밥, 회, 고기를 참으로 많이 얻어먹었다. 조금의 머뭇거림 없이 당당하고 거침없이 힘껏 먹었다. ‘그래, 마음껏 사라. 힘닿는 대로 사라.‘ 정말이지 편안하고 흐뭇한 마음으로 그 시간을 즐겼다. 오늘의 그 후배들에겐 기억도 나지 않을 수도 있는 ‘누가 계산했는지’가 그리 중요치 않은 시간들일 것이다. 오히려 그들의 주는 즐거움의 시간 들일 것이다. 골프나 룸살롱 정도의 과한 부담이 아니라면… 얻어먹는 것이 굳이 어떻겠는가

내일도 기회만 허락한다면 기꺼이 얻어먹을 것이다. 누군가 사려고만 한다면. 잘 준비된 숙련된 조교처럼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머뭇거리지 않고 얻어먹을 것이다.


그리고 언제고 다른 누군가를 나는 또 잘 대접할 것이다.

그게 누구이건, 같은 사람이건 다른 사람이건 순서와 등가에 구애받지 않고.


이왕이면 내가 더 많이 대접하는 인생이고 싶지만, 더 많이 대접받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기꺼이 배불리 먹을 것이다. 그렇게 주는 즐거움을 마음껏 누릴 수들 있도록 넉넉히 베풀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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