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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독따독 Aug 23. 2020

김광석,장필순,박학기,조규찬,제이래빗

버티게 해 주신 분들

명절이나 제사를 지내기 위해 일주일에서 열흘 전 장 볼 목록을 적기 시작한다. 엿기름, 배추, 생선, 고기...



이 목록은 신선해야 하는 정도나 사야 할 장소 등에 따라서 4가지로 분류한다. 상하지 않는 식재료는 미리 사놓고 물김치처럼 미리 담가서 냉장고에 익혀놓을 것, 직전에 살 것 등으로 나눈다. 제기와 병풍 돗자리도 어떤지 살펴본다.


시험기간을 앞둔 수험생이 갑자기 소설책을 펼치듯 준비 기간을 조금은 좁혀볼 요량으로 늦장을 부리기도 한다.


 어머니는 벌써 눈치채고 닦달하기 시작한다.

-ㅇㅇ샀냐? 더 비싸진다는데 혹은 남들은 다 샀다는데-  빨리 사라고 성화다.



왜인지 그럴 때마다 똥고집이 불쑥 솟아 좀 진득하게 버텨보자고 마음먹지만 몸은 안달복달이 전염되어 분주해진다. 재료들은 카드를 받지 않지만 미리 약속한 가게로 가야 한다. 조금 비싸지만 부모님과 복잡한 이해관계가 있으려니 하고 그집으로 사러 간다.



그나마 엿기름은 티백에 든 간편한 것으로 대체했다  이런 것들이 일을 줄여준다. 그리고 고기. 고기말이다. 형제들 먹일 고기는 분류해서 얼려놓아야 한다.



 한 집당 다섯 근씩 LA갈비 양념한 것을 스무 근 이상은 미리 얼려야 그나마 어머니 마음을 가라앉힌다. 다섯 근짜리  총 4~5봉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각 집으로 가져갈 고기를 싸주고, 모여서 먹 일양까지 하는 것이다. 그래야 잔소리가 줄어든다.




설마 고기를 못 먹고살까? 자식들은 남들이 되고 싶어 한다는 전문직이며 대표이다. 미슐렝가이드 음식점을 말하는 사람들이다. 두집은 자식들이 떨어져 살고있으니 제대로 못먹고 다닐 것 같은.....그게 엄마의 마음인가보다. 이런 걸 따지자니 구차하지만 고깃값도 어머니가 서너 번은 내셨지만 긴 세월을 대부분 내가 지불했다. (시집살이 결혼 첫 달부터 전화요금 고지서부터 시작해 점점 개수를 늘려 나에게 내미셨다. 처음엔 책임감 독립심 인줄로만 알았지만.)



뉴스에 나오는 명절 장 보는 값을 보면 헛웃음이 나왔다. 제사가 끝나면  모여서 먹는시간. 어머니의 일장연설이 시작된다. 양념이 어떻다. 간이 어떻고 너는, 쟤는 등등이다. 대화라고는 하는데 만만한 무언가 혹은 누군가에대한 평가이며 그것도 한 방향이다.



먹고 싸놓은 것을 주차장까지 들어다 주고 빠이빠이~ 하고 들어와 본다. 집안을 둘러본다. 난장판을 치우고 정리한다. 어머니 방문이 굳게 닫혀있다. 24시간 늘 열려있는 방문은 그 날 그 시간만큼은 닫혀있다. 그래도 동서가 대충 설거지하고 가서 시간이 줄어든다.


다 각자의 방으로 들어간 거실을 한 바퀴를 둘러보고 이어폰을 끼고 나간다. 새벽 12시에서 1시쯤이다.


숙제를 마치니 허기가 밀려온다. 24시간 분식집에  갈 때도 있고, 그냥 정처 없이 걷기도 한다. (컵라면, 맥주와 함께 들고 들어올 때도 있지만 먹는 소리가 들리면 아버님이 깨어나시고 나와 함께 배회하며 날밤을 새야 할 수도 있다. 맥주와 함께 라면 국물까지 벌컥 마시면 다음날 소변이 안 나온다. 당연하고 희한한 일이다.)



걸으면서 듣는 노래는 나를 다른 세상으로 데려다준다. 장필순의 보사노바 리듬은 넓은 벌판으로 옮겨 주어 시원한 바람을 쏘여준다.



김광석과 박학기 그리고 조규찬은 아련한 추억의 그 날로 나를 데려다준다.


제이래빗은 가라앉은 얼굴을 환하게 펴준다.



마음이 힘든 시간들을 지내고 나서 듣는 음악은

더 값진 것 같다.


밤늦었으니 무섭기도 하고,

들어가야 하는데 싫기도 하다.




(2017년 어느 날의 낙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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