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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ndevoy Mar 29. 2018

슈퍼맨이 돌아왔다?
트루먼이 찾아왔다!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 시청자 게시판을 통해 본 관찰 예능의 현주소

※ 이 글은 < 방송문화진흥회 > '20회 좋은 방송을 위한 시민의 비평상'에서 우수상을 받은 글을 토대로 사진만 추가로 첨부한 글입니다. 사전에 동의 없는 인용 및 재가공은 저작권에 저촉을 받게 됨을 알려드립니다.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 시청자 게시판 내용 중 일부



1. 시청자와 소통이 단절된 리얼리티 관찰 예능  

  

“아이들을 위해 시청자 여러분의 많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어느 날 갑자기 KBS 리얼리티 관찰 예능 <슈퍼맨이 돌아왔다> 시청자 게시판이 비공개로 전환됐다. 제작진과 출연자, 시청자가 함께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열림’의 공간이 갑작스레 ‘닫혀’ 버렸다. 제작진이 <슈퍼맨이 돌아왔다> 출연자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취지 때문이었다. 출연하는 사람들을 향한 욕설과 비방, 악성 댓글로부터 아이들을 지키기 위한 자구책이었다. 가입만 하면 누구나 의견을 남길 수 있었고, 다른 시청자와 의견을 공유할 수 있었던 공간은 그렇게 소통이 단절됐다. 시청자들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던 소통의 장(場)이 갑자기 왜 이렇게 돼버렸을까.


그야말로 ‘리얼리티 TV’가 대세인 시대다. 리얼리티 TV는 한 때 먹방과 쿡방(Cook+방송)의 도전을 받으며 부침을 겪기도 했지만, 최근 다큐멘터리에서 주로 사용하는 ‘관찰’이라는 기법을 사용해 리얼리티 관찰 예능으로 진화했다. 그중에서도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관찰’이라는 프로그램 포맷과 ‘아이’들이 만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예능으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지만, 동시에 수많은 관찰 예능 중에서도 가장 다양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근거 없는 비방과 비난이 있었지만, 방송 이후 시청자 게시판을 차지한 항의한 주된 내용은 아이들을 방송에 이용하는 어른들에 대한 비판, 방송에서의 무리한 설정, 방송 취지에서 벗어난 기획 등이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 시청자 게시판이 주로 다뤄졌던 내용을 토대로 현재 우리 리얼리티 관찰 예능의 현주소를 미국 리얼리티 쇼 시청자들의 시청 형태를 꼬집은 영화 <트루먼 쇼>를 참고 삼아 분석해보고자 한다.



2. 리얼리티 관찰 예능에 갇힌 아이들     


바야흐로 리얼리티 관찰 예능이 대세인 시대에서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비판의 대상으로 삼은 건 이 프로그램이 첫 방송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아이’를 ‘관찰’한다는 포맷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지상파에서 방송 중인 MBC <나 혼자 산다>, SBS <미운 우리 새끼> 등의 대부분의 리얼리티 관찰 예능은 어른을 대상으로 각각 나름의 장점과 단점을 내포하고 있지만,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첫 방송부터 지금까지 오직 아이들을 관찰하고 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일만 하느라 가족과 자녀에게 소홀했던 아빠들이 제자리로 돌아가자는 취지로 주말 프라임 시간대를 약 5년째 지키고 있지만, 그동안 어른들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시청자들의 우려 섞인 시선과 걱정은 개선이 거의 되지 않은 채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영화 <트루먼 쇼>에서 방송국 PD로 출연하는 크리스토프(에드 헤리스)는 "방송국이 아이들을 선택했다"고 말한다.


어른들의 자기계발서 - 아이를 이용하는 어른들


“여기엔 각본대로 움직이는 배우들의 연기나 특수효과 같은 속임수는 없습니다. 비록 틀에 갇힌 작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트루먼은 가짜가 아닙니다. 각본도, 큐 사인도 없지만 가공이 아닌 실제 인물의 진짜 인생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에게 위안을 주죠.”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영화 <트루먼 쇼>다. <트루먼 쇼>에서는 한 아이를  입양해 리얼리티 쇼 프로그램에 출연시키는데 영화 속 이야기는 우리 현실에서 예능이라는 장르와 만나 관찰 예능으로 거듭났다. 하지만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사실 양날의 검과 같다. 아이들의 순수한 동심을 엿볼 수 있다는 기본 취지는 좋지만, 자칫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에 아이들을 끌어들여 이용하는 것처럼 비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CCTV를 연상케 하는 곳곳에 배치된 관찰 카메라는 아이들의 순수성을 과감 없이 보여주는 장치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카메라 설치 그 자체가 아이들을 ‘속인다’는 전제가 들어가 있기에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아이들을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에도 제작진이 관찰 카메라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아이들의 순수함이야말로 이 프로그램을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이기 때문이다. 어른들이 만든 작위적인 환경 속에서 카메라 앞에선 아이들은 무장해제된 채 자신들의 속마음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그 과정에서 어른들의 시선으로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순진무구한 몸짓과 말들이 탄생한다.


아이들을 이용한다는 점은 단순히 관찰 카메라 설치한 사실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앞서 제작진이 아이들을 이용했다면, 방송 출연에 있어서 부모들이 자식들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했던, 지금은 ‘추블리’ 아빠로 불리는 추성훈 씨는 원래 호불호가 갈리는 연예인이었다. 재일교포 출신이라는 이유로, 국적을 한국으로 선택했다가 일본으로 바꿨다는 사실로 대중의 선호도가 갈렸던 사람이었다. 서언·서준 쌍둥이 아빠 이휘재 씨는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MC이자 코미디언이지만, 지난 다른 방송에서 여러 차례 구설수에 오르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대중에게서 멀어진 인물이었다. 하지만 방송 출연 이후 이미지는 개선됐고, 연예인으로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됐다.


부모가 자식을 이용하는 모습은 최근 <슈퍼맨이 돌아왔다> 시리즈 중에 하나인 ‘공동 육아 구역 세 친구네’ 편에서 가장 크게 두드러졌다. 대인기피증으로 한동안 방송 출연을 자제했던 가수 양동근 씨도 딸 조이 양과 함께 방송에 출연해 은둔 생활에서 벗어났다. 하은 아빠 배우 인교진 씨는 대중적인 인지도가 매우 낮음에도 결혼과 출산을 통해 딸과 함께 주말 프라임 시간대 예능에 출연했다. 자신들 혼자서 예능에 출연할 수 없었던 이들은 그렇게 자신의 아이들을 이용해 방송에 출연할 수 있었다.


대스타는 없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한 이들의 대부분은 과거에 활동이 뜸했거나, 인지도가 낮은, 인생에 있어서 큰 부침을 겪은 사람들이었다. 사회적으로 불안한 위치에 있던 이들은 밤낮으로 지속되는 관찰을 기꺼이 수용했다. 화장실까지 쫓아 들어오는 카메라를 불편함이 아니라 기쁨으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제작진은 아이들의 성장기를 대중에게 보여주며 관심과 인기를 이끌고, 부모는 여기에 편승해 자기계발을 한 것이다. 아이들이 없었으면 모두 불가능한 일들이었다.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 2017년 2월 19일 방송 내용 중 일부. 리얼리티 관찰 예능에 출연하는 아이들은 오늘도 미션을 부여 받는다.


감동의 쥐여 짜기 - 끊임없이 주어지는 미션   


대박이가 처음으로 치과에 갔다, 야구장에서 쌍둥이들이 시구와 시타를 한다, 로희가 첫걸음을 뗐다, 소다 남매는 동물농장에 방문해 말을 타며 동물과 교감한다. 미션에 미션 그리고 미션.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보며 가장 불편했던 점은 매 회가 처음부터 끝가지 아이들에게 미션을 부여한다는 데에 있었다.


아이들에게 미션을 주는 이유는 뭘까? 리얼리티 관찰 예능은 특정 사건이 아니라 일상을 다루기에 자칫 지루해질 위험성이 있다. 그래서 제작진은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미션을 부여한다. 작게는 영아의 뒤집기와 첫걸음마, 크게는 미아 방지 교육을 위한 시험이 아이들에게 주어진다. 쌍둥이 누나와 대박이는 놀이터에서 낯선 이로부터 시험을 당하고, 소다 남매는 주말농장에서 직접 기른 작물을 시장에서 파는 미션을 수행하게 된다.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아이들은 집이라는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장소를 방문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상에서 탈피해 이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을 만나며 생기는 일들이 감동의 핵심 요소다. 예측불허의 상황에서 아이들의 순수함이 빛을 발하게 되고, 여기서 시청자는 감동을 받고, 감정을 이입하게 된다. 특히, 이러한 미션은 ‘짝꿍 미션’ 편에서 이휘재 씨의 쌍둥이네와 이동국 씨의 다섯 남매, 기태영 씨의 로희네 총 6명의 아이들이 서로 짝꿍을 짓는 가장 두드러졌다. 아이들이 짝꿍을 찾는 과정은 <트루먼 쇼>에서도 고스란히 재연되는데 주인공 트루먼의 베필을 제작자인 크리스토프(에드 해리스)가 연결하는 과정과 닮아 있다. 리얼리티 쇼의, 리얼리티 쇼에 의한, 리얼리티 쇼를 시청하는 사람들을 위한 영화 속 설정은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반복되고 있다.  


미션을 부여한다는 건 자연스러운 상황이 아니다. 미션은 감동을 유발하기 위한 인위적인 장치다. 이 장치가 극대화될수록 시청자는 더 큰 감동과 즐거움을 얻게 된다. 그래서일까. 아이들에게 미션을 부여하는 제작진의 설정과 개입은 처음에는 크지 않았다. 노골적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매 회를 거듭할수록 특히, 최근 프로그램 시청률이 하락세인 상황에서 제작진이 미션에 큰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 일반인들이 참여하는 형태였지만, 이제는 아이들을 촬영하던 VJ들이 미션에 적극 개입하고, 방송작가들도 아이들 앞에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미션이 부여되는 횟수는 아이들의 나이와는 상관이 없고, 상황은 더 복잡하게 주어졌다. 감동을 쥐어 짜내려는 제작진과 즐거움을 포기할 수 없는 시청자. 그래서 오늘도 아이들은 미션 수행 중이다.      

      

MBC <라디오스타>  2017년 3월 22일 방송 내용 중 일부.


선택된 아이들의 운명은?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알아봐?”     


추성훈 씨는 요새 딸(추사랑)로부터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아 대답하기가 곤란하다고 했다. 왜 사랑이는 요즈음 갑자기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을까. 두 부녀의 질문과 답변에서 한 가지 유추해 볼 수 있는 사실이 있다. 추사랑 양이 과거에 자신이 방송에 출연했다는 사실을, 불특정 대다수에게 노출됐다는 점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가, 성장하면서 그 사실을 부모를 통해 알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모습은 영화 <트루먼 쇼>에서 자신이 ‘진짜(true)’ 누구인지를 하나하나 알아가고자 하는 주인공의 트루먼(짐 캐리)의 모습과 닮아 있다. 트루먼은 우연히 라디오에서 나오는 소리에 자신이 감시당하고 있음을 알게 된 뒤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스스로’ 파악하려는 여정을 떠나 결국 자신의 존재를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영화와 달리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는 방송에 출연한 아이들인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프로그램을 떠나고 있다. 제작진은 일만 하느라 가정에 소홀했던 아빠들이 육아를 통해 제자리로 돌아간다는 취지보다 출연자들을 주기적으로 교체해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는데 머물러 있을 뿐이다.


예능은 예능일 뿐 오해하지 말자고 말할 수 있다. 단지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응원하고, 관심을 표명하고, 사랑을 보태는 게 무엇이 문제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발생한다. 방송에 비치는 아이들이 삶이 정작 방송의 주인공인 아이들이 전혀 선택하지 않았다는 데에 있다. 방송국이 제공한, 제작진이 연출한, 부모들이 선택한 삶. 그래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묻는 아이의 자연스러운 질문에 어른들은 오늘도 대답하기가 곤란하다.    

         


3. 슈퍼맨이 돌아올 수 있는 길   

   

영화 <트루먼 쇼>은 방송국이 입양한 아이가 리얼리티 쇼의 주인공이 되는 설정을 배경으로 한다. 영화는 영화 속 시청자들이 트루먼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서 수동적인 존재임을 보여주며 미국 리얼리티 쇼 시청자들의 방관자적 행태를 꼬집는다. 하지만 우리 현실 속 <슈퍼맨이 돌아왔다> 시청자들은 다르다. 능동적이다.


시청자 게시판을 채웠던 주된 이야기들은 TV 속 아이들이 트루먼처럼 되지 않길 바라는 우려이자 동시에 경고였다. 제작진이 공지한 것처럼 누군가는 근거 없는 비방으로 분란을 일으킬 수 있었겠다. 하지만 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고 시청자 게시판을 비공개로 전환한 건 제작진이 시청자를 대상으로 불통을 선언한 것과 다름없다.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시청자를 잃는 것보다 더 큰 손해는 없다. 과도한 욕설과 비난은 당연히 지양되어야겠으나 항의도 일종의 소통의 방식인 점을 감안해, 시청자 소통 측면에서 다시 공개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더욱이 KBS는 공영방송으로서 다른 어떤 방송보다 시청자와 소통해야 하는 역할과 임무가 남다르다. 방송 이후 시청자 게시판이 뜨거웠던 건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공영방송에서 방송됐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공영방송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는 것을 반증한다.


답은 이미 명확히 나와 있다.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원래 프로그램 취지에 따라 엄마의 도움 없이 아빠가 혼자서 아이를 돌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또 그 과정에서 소통이 어떻게 이뤄지는 지를 보여줘야 한다. 지금처럼 기약 없이 시청자 게시판을 닫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닫힌 문을 열고 시청자와 더 소통해야 한다. 동시에 아이들에게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진짜(true)' 슈퍼맨이 돌아올 수 있다.


영화 <트루먼 쇼>의 마지막 부분에서 주인공 트루먼(짐 캐리)는 리얼리티 쇼에서 벗어나 자신의 운명을 찾아갔다. 방송국과 어른에게 선택된 우리 아이들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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