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내 뒤에 테리우스> 성공요인과 아쉬움
국가 정보기관이 민간인을 사찰한다. ‘국가’라는 이름을 앞세워 일반인을 미행을 하기 일쑤고, ‘국익’이라는 명분으로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사람을 배제하고 차별한다. 시민에게 충성해야 할 국가정보원(NIS)이 흥신소처럼 평범한 사람의 뒤를 캐는데 바쁘다. 불법으로 도청을 하고, 위치를 추적하고, 그렇게 개인정보를 빼낸다. 의심이 간다는 이유로 영장 없이 사람을 구금을 하고 납치와 감금, 고문으로 이어진다. 지난 몇 년간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며, 신문 1면을 차지했던 이야기다.
그리고 지금, 이러한 현실을 모티브(motive) 한 것 같은 드라마가 있다. 국가정보원이 인권을 유린한 것도 충격적인데, 그 행위가 손쉽게 발각돼 우리 사회에 황당함을 준 현실을 드라마로 고스란히 옮겨 놓은 것 같은 방송이 있다. ‘미디어는 현실을 반영한다’는 전제에 충실하며, 매주 수목 밤 10시, 깨알 같은 재미와 주·조연들의 명품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이 있다. 수목드라마 시청률 1위. MBC <내 뒤에 테리우스>의 성공요인은 무엇일까.
‘소지섭’이라고 쓰고, ‘소간지’라고 읽는다. 소간지는 배우 소지섭이 2004년 KBS 월화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를 통해 얻은 별명이다. 이 작품에서 보여준 명품 연기로 ‘폼 나다’, ‘멋지다’는 일본말 ‘간지(かんじ)’가 그의 이름을 대신하게 됐다. 연기에 간지가 난다는 그가 MBC < 로드 넘버원 > 이후 약 8년 만에 MBC < 내 뒤에 테리우스 >로 복귀했다. 그런데 그의 연기는 간지 그 이상이었다.
MBC <내 뒤에 테리우스>에서 그의 연기가 멋과 폼 그 이상이었던 건 소지섭이 이 작품에서 변신을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는 이 드라마에서 기존 이미지에서 한 발 더 나아갔다. 그동안 소지섭은 대부분의 작품에서 그의 별명처럼 폼 나고, 멋진 역할만 해왔었는데 <내 뒤에 테리우스>에서 기존에 본인이 갖고 있는 이미지를 그대로 잘 보여주면서, 동시에 그동안 보여주지 않았던 새로운 모습을 드러냈다.
소지섭은 수영선수 출신인데, 기존 작품에서 운동선수 출신다운 넓은 어깨와 가슴을 잘 드러난, 잘 생긴 얼굴에 멋진 몸매에 중점을 둔 모습으로 매력을 십분 발산해왔다. 본 드라마에서도 소지섭은 이와 같은 기존의 외모를 내세운 모습을 잃지 않으며, 동시에 망가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소지섭 하면 떠오르는 ‘간지 난다’는 이미지가 드라마에서 무너질 때, 피식피식 거리며 미소를 짓게 했고, 웃게 만들었으며, 그렇게 가랑비에 옷 젖듯이 드라마에 빠지게 만들었다.
소지섭에서 국가정보원 요원 ‘김본’으로, 그리고 여주인공과 사람을 구하는 ‘테리우스’로, 때로는 후줄근한 몸빼 바지를 입고 동네 아낙네로, 때로는 얼굴에 연지와 곤지를 찍어 바르고 박수무당으로 변신해 재미와 감동을 선사했다. 그동안 볼 수 없었던 그의 코믹스러운 연기는 너무 진지해서 오히려 웃음을 줬으며, 전작들에서 보여줬던 늘 심각하고, 냉정하고, 차가웠던 역할에서 벗어나 배우 소지섭이 다른 연기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런데 소지섭만 변신한 게 아니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다른 주연들의 연기도 그랬다. 정인선(고애린 역)은 이번 드라마를 통해 기존 아역배우 이미지에서 탈피했다. 영화 <살인의 추억> 마지막 부분에서 배우 송강호와 대사를 주고받던 ‘앤딩여자애’ 역의 앳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배우 정인선은 고애린 역으로 분해, 쌍둥이를 키우는 엄마의 삶을, 애를 키우느라 경력 단절이 된 여성의 애환을, 갑자기 남편을 잃은 아내가 마주하게 된 녹록지 않은 현실을 현실감 있게 그려냈다.
그동안 어디에 있다가 갑자기 나왔나 싶을 정도의 배우 정인선이 보여준 연기력은 배우 소지섭이 이전 작품에서 함께 연기한 전도연, 임수정 등과 비교했을 때, 밀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현재 27살 미혼인 것으로 알려진 정인선은 그녀의 실제 나이를 무색하게 엄마의 모습을, 여성과 아내들이 삶에서 겪는 깊이 있는 고충을 자연스럽게 그려내며, ‘내가 바로 정인선이다’라는 점을 십분 보여주고 있다.
배우 손호준(진용태 역)도 이 드라마에서 새로움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tvN <응답하라 1994 >에서 보여준 코믹한 이미지로 대중에게 익히 알려져 있는데, 그동안 여러 예능에서 다양한 활동을 했지만, 사실 드라마에서는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MBC <내 뒤에 테리우스>에서는 갈등을 부추기고, 동시에 사건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역할을 맛깔나게 보여줌으로써, 기존 코믹 연기뿐만 아니라, 극의 흐름을 좌지우지하는 역할도 잘할 수 있음을 현재 나타내고 있다.
임세미? 누구지? 사실 MBC <내 뒤에 테리우스>를 보기 전까지 그녀가 정확히 누구인지 알지 못했는데, 생각해 보니 최근 성황리에 막을 내린 tvN <미스터 션샤인>에서 분량은 짧았지만 구동매의 어머니 역할로 강한 인상을 남기고 사라졌던 배우였다. 본 드라마에서 임세미(유지연 역)는 소지섭(김본 역)을 도와주는 조력자이자, 사건과 조직의 배후를 함께 풀어가는 동료로, 사건의 전개에 속도감을 불어넣는 촉매제로 이전 작품에 비해 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렇게 네 명의 배우들이 기존과 다르게 보여주는 연기 변신은 신선함과 함께, 새로운 모습을 제공해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감초는 ‘꼭 있어야 할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이 말은 MBC <내 뒤에 테리우스>에 등장하는 조연배우들을 염두 해 두고 한 말이지 싶다. 김여진(심은하 역), 정시아(봉선미 역), 강기영(김상렬 역)을 보면 그렇다. 세 사람의 연기는 소지섭, 정인선, 손호준, 임세미로 구성된 축과 대비되는 또 다른 축을 구성하여, 극의 호흡을 조절한다. 단순히 웃음과 재미를 추구하는 역할을 넘어, 드라마 흐름의 강약을 좌지우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조연 세 사람은 드라마에서 정인선(고애린 역)의 남편이 누구에게 살인을 당했는지, 정인선의 쌍둥이가 누구에게 납치를 당한 것인지를 밝혀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국가정보원과 경찰이 엄두도 못 내고 있는 사건에 일반시민이 나서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한다. 이들은 동네에 숨어있는 국정원 요원들의 정체를 밝히기도 하고, 극의 고비고비마다 흩어져 있는 사건의 실마리들을 갈무리해 주연배우들에게 제시, 사건의 방향과 흐름을 잡는데 기여하기도 한다.
조연들의 맹활약은 하라는 일은 안 하고 엄한 데에 신경이 팔려 있는 국가정보원의 민낯을, 시민의 도움이 간절할 때,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는 국가 정보기구의 무능함을, 그래서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상황이 우리 현실과 맞닿아 있으며, 드라마에서 국가의 부조리와 부패를 꼬집으며, 그렇게 현실에서 맛볼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 준다.
그래서일까. MBC <내 뒤에 테리우스>에서 소지섭과 정인선, 손호준과 임세미가 보여준 새로운 시도와 연기 변신에. 세 명의 조연배우가 한 데 어우러져, 본 드라마는 11월 1일 기준, 현재 수목드라마 시청률 1위(10.3%, 닐슨코리아 제공)를 기록하고 있다. 주·조연을 가릴 것 없이 드라마에 출연하는 배우들이 보여주는 명연기의 조합은 드라마와 현실이 맞닿은 경계에서 공감을 일으키고 있다. 때로는 진지하게 상황을 이끌고, 때로는 재미로, 현재 지상파 3사와 케이블 방송사들이 각축을 벌이고 있는 수목 드라마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모든 드라마가 안고 있는 숙제가 있다. 특히, 드라마가 대중에게 잘 알려지게 되어, 시청률 고공행진을 기록하고, 화제성이 높게 나타나면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내미는 해묵은 숙제가 있다. 바로 ‘간접광고’다. 처음엔 잘 드러나지 않았는데, 현재 MBC <내 뒤에 테리우스>의 인기에 비례하듯 극의 흐름과 무관하게, 갑자기, 맥락 없이, 뜬금없게 광고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 탁자 위에 커피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임세미(유지연 역)는 왜 이 음료가 여기에 있는지 스스로 의아해하며, 이 음료를 마시고 맛을 표현한다. 암살자를 피해 도망치던 손호준(진용태 역)은 “척추교정”이라는 현수막 뒤에 숨어, 숨을 고르고, 상황을 파악하는데, 이때 카메라가 주인공과 현수막을 비춘다. 대화를 나누던 주·조연 배우들은 갑자기 휴대전화를 꺼내 들고, 메시지를 확인하며 놀라움을 표현하는데 공교롭게 이들이 사용하는 스마트폰은 색깔만 다른 같은 기종, 최근 삼성에서 출시한 ‘갤럭시 노트 9’이었다.
폭발사고로 죽은 줄로만 알았던 소지섭(김본 역)은 어느 날 갑자기 정인선(고애린 역) 앞에 나타나 날씨가 추워졌다면 옷 꾸러미를 건네는데, 이 옷의 상호는 현재 소지섭 씨가 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의류 브랜드이자,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산악 용품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기업이었다. 이밖에도 주인공들이 집 밖에서 만나서 즐겨 먹는 샌드위치, 간식으로 자주 찾아 먹는 장면에서도 간접광고가 자주 노출되고 있다. 문제는 이 간접광고들이 부자연스럽게 등장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방송통신심의규정 제47조에 명시되어 있다. 간접광고는 “시청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프로그램 특성이나 내용 전개 면에서 불가피한 경우 허용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본 드라마를 비롯한 여러 프로그램에서 간접광고를 하는 것은 당연하고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규정에 저촉되지 않을뿐더러, 제작자와 제작사의 입장을 고려, 안정적 재원 확보를 통한 원활한 제작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오히려 권장할만한 일이다.
하지만 초반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지 않았던, 노출되더라도 극의 흐름을 고려하여 자연스럽게 등장했던 간접광고는 10월 17일을 기준으로 이전과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광고를 하더라도 자연스럽게, 티 나지 않게 했어야 하는데, 이러한 노출은 현재 극의 몰입을 방해하고 있다.
간접광고는 인기 드라마를 입증하는 척도이지만, 동시에 해결해야 될 케케묵은 숙제다. 광고는 주연배우들의 연기 변신, 조연들의 맛깔스러운 연기, 국가 정보기구의 무능력을 꼬집으며 우리 사회 현주소를 반영한 것 같은 구성으로 수목드라마 시청률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방송에 옥에 티가 되고 있다. 총 32부작으로 기획된 본 드라마에서 앞으로 주의 깊게 살펴야 될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