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실화탐사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을 본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MBC <실화탐사대>는 하나의 사건, 다양한 목격자와 증인, 그래서 진실과 본질이 정확히 무엇이냐는 영화의 메시지와 문법을 따른다. 특종인 점만 부각할 뿐 사건의 단편전인 면만 보여주는 뉴스 소식에, 이어짐 없이 일회성 사건 보도가 판치는 세상에, 매주 수요일 저녁 8시 55분, 가짜 이야기가 아닌 “진짜(real) 이야기를 전달하겠다”며 사건의 다양한 면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실화탐사대>는 영화와 다른 감동을 선사했다.
여기 하나의 사건이 있다. 사람이 있고, 이야기도 있다. MBC <실화탐사대>는 사람과 이야기를 좇으며 추리에 추리를 거듭한다. 반전엔 반전도 있다. 그래서일까. 최근 <실화탐사대>는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다. 동 시간대 타 매체가 일일연속극과 9시 뉴스로 자리를 잡고 있는 상황에서 얻어낸 성과였다. 다른 시간대도 아닌 황금시간대에서 높은 화제성을 보여준 <실화탐사대>의 지난 방송 내용은 어떠했을까.
모든 일은 하나의 점(點)에서 출발한다. 이 시작점에서 중간중간 여러 지점을 거쳐 마지막 점을 향하게 되는데, 이러한 점들을 연결하면 하나의 선(線)이 된다. 하나의 선은 수많은 점들이 모인 결과이며, 다시 이 선과 선을 연결하면 하나의 면(面)이 된다. 면과 면이 맞닿아 입체적인 형태를 띠게 되는데, 이 점과 선, 면을 어디서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세상을 보는 관점과 시야가 달라진다.
그런 점에서 MBC <실화탐사대>에서 진행자 신동엽은 시작점이다. 현재 본 프로그램에서 유일하게 첫 파일럿 방송에서 지금까지 진행을 맡고 있다는 것을 넘어, 신동엽의 자연스러운 진행은 프로그램의 시작과 끝을 아우른다. 그의 진행은 공감을 일으키는 출발점이 줄곧 되고는 하는데, 지난 여러 방송에서 장애인과 관련된 이야기를 다룰 때 특히 그러했다.
그동안 신동엽 씨는 여러 차례 입장을 드러냈다. 본 방송뿐만 아니라 타 방송에서 자신의 친형이 청각장애를 갖고 있다는 소식을 직접 밝혔었다. MBC <실화탐사대>에선 이러한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장애인들이 학대를 받고 있는 상황과 사회적 약자인 이들이 방치되고 있는 이야기들을 말할 때, 자신이 느끼는 솔직한 심정을 표현해 공감(共感)을 불러일으켰다.
강원도 영월의 한 마을에서 지적장애인 여성이 수년간 마을 사람들에게 성폭력을 당했다는 사실을 전달할 때, 폐 모세혈관종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는 신수지 씨의 사연을 말할 때, 해외로 입양됐으나 관련 제도의 미비로 인지능력이 떨어진 청년이 이태원 일대를 배회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할 때, 신동엽 진행자의 표정과 말, 태도에서 공감이 시작됐다.
MBC <실화탐사대>는 신동엽을 가운데 두고, 좌(左) 강다솜, 우(右) 김정근 아나운서로 배치했다. 처음에 두 사람의 자리 배치를 보고 신동엽 씨를 보조하는 역할로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두 아나운서는 방송 횟수가 거듭될수록 신동엽 씨를 뒷받침해주는 역할을 넘어, 방송에서 소개된 사건과 이야기를 연결하는 선(線)이 됐다. 특히, 지난 10월 17일, 안타까운 사고로 24세 어린 나이에 세상을 등진 고(故) 박송희 씨의 사연을 전달했던 방송에서 두 사람은 보조자가 아니라 방송의 주인공인 모습이었다.
고(故) 박송희 씨는 성악가를 꿈꾸던 청년이었는데, 안전규정의 미준수로 무대 설치 작업 도중 무대에서 떨어져 사망하게 됐다. 송희 양의 죽음 이후 관계 기관의 책임 떠넘기기로 그녀는 죽어서도 고통을 받았고, 그녀의 가족은 슬픔에 잠겨 있었다. 이 날 방송에서 강다솜, 김정근 아나운서는 거짓과 모르쇠로 일관하는 담당자들의 잘못과 우리 법의 맹점을 지적하며, 하나밖에 없는 딸을 앞서 보낸 부모의 심정을 전달하는데 중점을 뒀다.
김정근 아나운서는 고(故) 박송희 양을 추모하는 무대를 함께 보며, “안녕, 내 딸”이라고 내레이션을 이어갔는데, 이 부분은 프로그램의 백미(白眉)였다. 김 아나운서는 목소리의 높고 낮음을 조절해가며, 그리고 여러 차례 호흡을 바꿔가며 ‘슬픔’이라는 감정을 한 글자 한 글자에 꾹꾹 담아 전달했다. 그래서일까. 강다솜, 김정근 아나운서가 방송에서 보여준 수준 높은 전달력은 보는 이로 하여금 눈시울을 붉어지게 했고, 장애인의 사연과 시청자를 잇는 다리가 됐던 신동엽처럼, 그렇게 사람과 사연을 잇는 선(線)이 됐다.
여기에 현재 MBC <실화탐사대>는 제대로 줄(線)을 타고 있다. 단신, 속보라는 이름으로 한쪽의 이야기만 전달하는 이야기가 아닌, 양쪽의 입장을 골고루 들으며 치우침 없이 내용을 전달하고 있다. 매회 오로지 ‘진짜’ 사실(fact)에 집중하며, ‘진실(truth)’이 무엇인지 검증하고 있다. “이게 정말 실화냐?”라는 세상의 물음에 그 답을 찾는 탐사의 과정을 밟고 있는데, 방송 횟수가 거듭 될수록 균형감을 잃지 않는 모습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러한 불편부당(不偏不黨)한 모습은 그동안 묻지마 폭행 사건으로 알려진 ‘이태원 폭행 사건’을 다뤘을 때, “아파트 윗집에서 성매매가 이뤄지고 있다.” “윗집에 조폭들이 상주하며 마약을 만들며 독가스를 살포하고 있다”라는 이야기를 전달할 때 더욱 돋보였다. 기존 보도와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의 입장만 보면, 다른 한쪽은 범죄의 온상이자, 불법의 근거지였는데, 당시 상황을 설명해 줄 CCTV의 등장, 사건 이후 종적을 감췄던 상대방을 찾아가 직접 인터뷰해 이 사건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다뤘다.
MBC <실화탐사대>는 어느 경우에도 폭행이 정당화될 수 없음을 짚어주면서, 양쪽의 이야기를 골고루 확인하고 검증했다. 오히려 의혹을 제기하고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쪽의 이야기가 사실과 동떨어짐을 밝혀내기도 했다. 제작진은 한쪽의 일방적인 주장을 전달하는 것 대신, 양쪽의 이야기를 두루 살펴, ‘진짜’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자세히 보여줬다. 고발 프로그램의 특성상 사소한 실수로 인한 잘못된 사실 전달이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는데, 제작진이 보여준 지난 방송은 외줄 위를 타는 무동처럼 균형감을 잃지 않고 진실에 가장 가까운 이야기를 전달하려고 했다.
MBC <실화탐사대>는 줄곧 그동안 다양한 매체에서 일회성 뉴스로 끝나버린 이야기가 여기서 이렇게 끝나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 <실화탐사대>는 세상에 알려진 사실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추리에 추리를 거듭하며, 보는 이로 하여금 흥미진진함과 재미도 선사하고 있다. 똑같은 사건을 다루더라도 기존과 다른 관점에서 제시하고, 알려지지 않았던 이면(裏面)을 드러내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있는데, 무엇이 진짜인지를 묻는 세상에 이것이 “이게 진짜”라고 대답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다른 고발 프로그램처럼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등장하는데, 단순한 상황 분석과 의견 제시를 넘어 구체적인 대안까지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끌게 한다. MBC <실화탐사대>는 20년 동안 양육비를 한 푼도 받지 못해 고통을 받고 있는 엄마와 자식들의 이야기를 전달할 때 특히 그러했는데, 전문가의 입을 통해 이러한 문제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잘못된 구조에 있음을 짚어줬다.
전문가가 나와 단순히 의견을 제시하는 데에서 끝이 났다면, MBC <실화탐사대>는 별 볼일 없는, 기존 여타 프로그램들과 다를 게 전혀 없는 새로움을 볼 수 없는 프로그램이었을 거다. 하지만 <실화탐사대>는 기존 방송과 다른 면(面)을 제시한다. 전문가뿐만 아니라, 사건의 당사자이자 가장 큰 고통을 받고 있는 피해자가 직접 출연, “이 사건 실화냐”라고 묻는 세상에, “내가 실제(real) 증거다”라고 답변한다.
뇌전증을 앓고 있는 아이를 위해, 유일한 희망이자 치료제인 대마 오일을 수입했다가 법률의 미비로 검찰 수사를 받고 기소 유예를 당한 어머니의 이야기가 그러했고, 성폭행을 당한 피해 여성이 가해자가 곧 출소한다는 사실에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실을 전달할 때 단순한 사실 전달을 넘어, 지금 이 순간 어디선가 고통받고 있는 우리 이웃의 아픔도 전달해주었다.
지금까지 MBC <실화탐사대>는 한 사건의 다양한 면을 여러 각도에서 접근했다. 기존 뉴스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사건 이후 일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어떤 조치가 취해졌는지를 구체적으로 다뤘다. 그 과정에서 균형감을 잃지 않고, 사건 속에 감춰진 이면을 드러내, 청와대 국민청원이라는 사회적 공감과 관심도 이끌어 냈다.
그래서 앞으로가 더욱 기대된다. 무엇이 진짜(real)고, 가짜 인지 파악하기 쉽지 않은 세상에, 오로지 시청자에게 진실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사회적 부름에 응답하는 ‘진짜’ 이야기로 찾아온 <실화탐사대>의 등장은 반갑기 그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