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를 위한 몇 가지 조언
시집간 친구에게서 어느 날 연락이 왔다. 방송에 나오는 남자들의 태도를 보면, 지금 거실 소파에 누워있는 남편의 모습이 보인다고 했다. 남편이 아니라 ‘남의 편’이라고, 원수라고 했다. 우리 집 이야기인 줄만 알았는데 남자들은 결혼하면 다 이러냐고 했다. 한참을 자신의 신세를 토로하던 친구에게 대답을 건넸다. “야, 내가 그걸 어떻게 아냐, 결혼은커녕 연애하기도 힘든 세상인데.”
MBC <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가 정규 편성됐다. 배우 민지영, 코미디언 김재욱 씨의 부인 박세미, 일반인 워킹맘 김단빈. 세 며느리가 출연, 며느리들의 일상을 MC 이현우, 권오중, 이지혜 씨가 관찰한다. 며느리한테만 강요되는 ‘희생’과 ‘차별’을, 아내의 의무만을 강조하는 우리 시대 여성의 현주소를 ‘전지적 며느리 시점’으로 풀어낸다.
좋았다. 접근방식은 신선했다. 여성의 문제를 여성의 시각으로 풀어낸 점이 돋보였다. 하지만 몇 가지 아쉬움이 있었다. 지난 방송을 보며 기시감(旣視感)이 들었다. 그동안 부부간의 갈등을 다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 못했던 여러 프로그램들이 떠올랐다. 개인의 사생활이 대중에게 공개됐는데, 가십으로 끝나버린 방송들. 현재도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지만 갈등만 보여주는 타 방송사의 프로그램이 오버랩(overlap) 됐다.
파일럿 방송 3회, 프롤로그 방송 1회 총 4회에 걸친 방송은 보여준다. 그동안 방영됐던, 현재도 방송 중인 타 방송사의 프로그램처럼 부부간의 갈등을 리얼(real)하게 제시한다. 주된 발화자를 ‘며느리’로 바뀌고, 부부간의 의사소통 부재, 답답한 시월드의 상황, 시어른과 며느리 사이의 불통을 전달한다.
부부간의 문제를 소재로 한 지난 여러 방송에서 볼 수 있었다. 며느리와 관련된 문제의 상황이 터지고, 카메라는 비춘다. 전문가를 찾아가 현재의 상황을 진단받는다. 하지만 그때뿐이다. 언뜻 보면 해결되는 거 같지만 어렵게 한 고비를 단지 넘겼을 뿐이다. 처방은 받았지만 근본적인 치료가 없는 상황에서 부부는 늘 똑같은 이유로, 때로는 미세한 차이로 얼굴을 붉힌다.
MBC <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도 예외는 아니다. 둘째에 이어 셋째도 낳고, 지금처럼 일하지 말고, 집에서 계속 쉬라는 시어머니와 더 이상의 경력단절은 없다는 며느리, 처음 만난 사람에게 며느리 흉을 보는 것도 모자라 며느리에게 대놓고 욕지거리를 하는 시어머니를 보며 참았던 눈물과 설움을 쏟아내는 며느리. 그리고 이를 지켜볼 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남편들이 등장한다.
회차를 거듭하였지만 지난 여러 다른 방송들처럼 갈등은 점점 고조되는데, MBC <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도 기존 방송들처럼 근본적인 해결은 없다. 아내와 남편, 시댁 모두 불편함을 겪고 있는데 나아지는 게 없다. 여기에 방송 이후 출연자들이 악성 댓글과 비난을 받는 상황도 반복된다. 결국 개인의 소셜미디어 계정을 닫아버리는 예정된 순서를 밟아야 끝(?)이 난다. 문제 해결이 아니라 덮고 갈 뿐이다. 갈등의 해소가 아니라 악순환의 연속이다.
담담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만으로
스스로 깨닫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왜 이런 상황이 나타났을까. 프로그램의 기획의도를 찾아봤다. 며느리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이를 지켜보는 시청자의 분노가 임계점에 다다르는 상황이 반복되는 이유는 제작진의 의도 때문이었다. ‘출연자 스스로 깨닫고 변화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태도. 얼핏 보면 좋아 보이지만, 이건 아니다.
이유는 간단하다. 며느리 박세미 씨는 결혼 5년 차다. 김단빈 씨는 4년 차 워킹맘이다. 민지영 씨는 3개월 차 새댁이다. 5년과 4년 그리고 3개월. 이 기간은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다. 이 시간은 의미한다. 그동안 며느리들이 고통받고 상처받은 연속적인 순간들을 나타낸다. 상황이 이러한데, 여태까지 바뀐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스스로 변화할 때까지 기다린다? 며느리들의 겪는 고통만 가중될 뿐이다. 제작진의 인식이 아쉬운 대목이다.
남편을 두고 ‘남의 편’이란다. 내편이 아니란 얘기다. 방송을 통해 처음 접한 단어이지만, 며느리들이 하는 말에 십분 공감이 됐다. 답답함의 연속. 남편들이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서 우물쭈물 거리는 태도를 보며, 시쳇말로 고구마 10개를 한 번에 먹은 듯 한 갑갑함이 몰려왔다.
MBC <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는 보여준다. 어머니와 아내의 갈등에서 등을 돌리고 눈을 감아버리는 남편, 전문의가 직접 권하는 제왕절개 대신, 자연출산을 고집하는 아버지의 태도에 저항하지 못하는 아들의 면면을 부각한다. 며느리들이 고충을 겪는 이유가 남편이라고 개개인의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그런데 사실일까. MBC <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에 출연하는 부부는 총 3쌍이지만 스튜디오에서 이를 지켜보는 패널도 남편과 아내들이다. 3쌍의 부부를 지켜보며, 이들 역시 안타까운 현실을 공감한다. 말을 보탠다. 시댁과 남편의 태도에, 서러움을 토로하는 며느리의 이야기를 남의 얘기가 아니라 내 얘기처럼 받아들인다. 누군가 개인 한 사람의 잘못이라면 이들 모두가 같이 혀를 차고, 다 같이 눈물을 흘릴 수 있었을까. 이러한 모습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구조적인 문제임을 반증한다.
‘줄탁동시’는 스스로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안과 밖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동시에 “깨달음에도 때가 있어 깨달아야 할 때 깨닫지 못하면 헛일이 된다.”는 의미도 갖고 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안과 밖의 노력과 함께 적절한 시기가 중요함을 말해준다.
지난 4번의 방송은 출연자 스스로 변화할 때까지 기다리려 준 인내의 시간이었다. 기획의도는 존중받아야 마땅하지만, 이로 인해 며느리들이 겪는 고통을 해소하는데 미흡했다. 아내와 남편이 직접 말하는 갈등의 원인이 이미 드러났고, 문제가 무엇인지 외부 전문가들의 조언이 끝난 상황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건 비효율적이다.
시간은 줄만큼 줬다. 제작진은 앞으로의 방송에서 기다림과 진단 대신, 갈등이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상황을 제시해야 한다. 답은 이미 방송을 통해 보여줬다. 전문가들이 지적했듯, 아내의 시련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이제는 남편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을 그려야 한다. 남편의 가족에 아내가 편입된 것이 아님을 보여주며, 개인의 문제가 아닌 가부장적 사회에서 나타나는 구조적인 문제임을 드러내야 한다. 그래야 제작진의 지난 기다림이 헛일이 되지 않는다. 때를 놓치면 안 된다.
다들 행복의 나라로, 다들 행복의 나라로 갑시다
지금까지 우리는 며느리의 희생과 헌신을 강요하는 이상한 나라에서 살아왔다. 적절치 않은 것을 넘어 옳지 않은 모습이다. 이 이상한 나라에 며느리는 있지만 없는 존재였다. 그러한 점에서 MBC <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는 몇 가지 한계가 있었지만, 방향성을 제시했다. 프로그램 BGM처럼 '행복한 나라'가 무엇인지를 말해줬다. 그래서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행복의 나라에 며느리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