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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ndevoy Feb 03. 2021

수어 방송 이게 최선인가요?

< 방송문화진흥회 > '23회 좋은 방송을 위한 시민의 비평상' 입선

2020년 2월부터 수어(手語)를 배우고 난 뒤, 그동안 무심결에 평소 보던 뉴스가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수어를 익히니, KBS <코로나 19 통합뉴스룸> TV 화면 오른쪽 맨 아래, 동그라미 안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의 모습에 저절로 눈길이 갔다. 전대미문의 전염병인 코로나 19로 매일매일 발표되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브리핑, 이를 전달하는 생방송 뉴스를 접하며 수어를 배우는 비장애인의 입장에서, 동시에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경계에서 비교해 가며 보게 됐다.

 

약 9개월. 그동안 재해재난 주관 방송사인 KBS는 <코로나 19 통합뉴스룸>을 별도로 꾸려, ‘특보’와 ‘속보’라는 이름으로 전염병 소식을 전했다. 동시에 <코로나 19 통합뉴스룸>은 수어 방송도 함께 실시했는데, 뉴스 끝부분에 수어로 코로나 19 방역을 위해 애쓰는 의료진을 격려하는 ‘#덕분에 챌린지’를 홍보하기도 했다. 코로나 19 위기에서, 집중호우와 불볕더위, 지진 등의 이상 기후 현상도 수어 방송으로 내보냈다. 재해재난 관련, 지난 <코로나 19 통합뉴스룸> 수어 방송은 어떠했을까. 수어 방송의 주 시청자인 청각 장애인이 볼 때 적절했을까. 그래서 재해재난 주관 방송사인 KBS의 수어 방송은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위치와 모양그리고 크기

틀었다. 코로나 19 소식을 발 빠르게 접하기 위해「방송통신발전 기본법」과「방송법」에 명시된 재해재난 주관 방송사인 KBS로 채널을 돌렸다. KBS-1 TV 화면 오른쪽 하단에서 수어 전문 통역사가 아무런 말이 없이 손짓과 몸짓, 그리고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랬다. 오른쪽 밑은 청각 장애인 시청자에게 허락된 공간이었다. 하지만 작았다. 방송국 뉴스마다 TV 화면 속 수어 통역사의 위치와 모양, 크기는 대동소이했지만, KBS가 재해재난 주관 방송사임에도 <코로나 19 통합뉴스룸>의 수어 방송은 불친절했다. 다른 매체와 비교해 볼 때, 유독 작게만 느껴졌다. 그 정도가 심해 불편함을 줬다. 왜 그랬을까.


이유는 이랬다. 한 번 크기를 재봤다. 눈으로 어림잡아 KBS <코로나 19 통합뉴스룸> 전체 화면을 바둑판 모양으로 나눴는데, TV 화면에서 수어 방송의 영역은 모서리 한 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KBS는 이 작은 부분에 ‘동그라미’를 그렸고, 그 ‘원’ 안에 수어 통역사를 놔뒀다. 시시각각으로 전달되는 코로나 19 상황을 화면 한 귀퉁이, 그것도 오른쪽 맨 아래, 원형의 제한된 공간에서 수어 방송을 실시하고 있었다. 수어 통역사가 동그라미 안에 갇힌 모습은 마치 ‘수어 방송은 여기서 벗어나면 안 됩니다’라고, ‘딱 이만큼 공간에서만 청각 장애인에 말하라’라는 인상을 남겼다. 수어를 배우기 전까지 몰랐던 풍경이었다.


KBS <코로나 19 통합뉴스룸>에서 수어 방송의 위치와 크기


그래서일까. KBS <코로나 19 통합뉴스룸>은 아니었다. 수어 방송이 엄연히 청각 장애인을 위한 방송임에도 장애인을 위한 방송 같지 않았다. TV 소리를 끈 채, 청각 장애인의 입장에서 <코로나 19 통합뉴스룸> 수어 방송을 봤는데, 뉴스를 정확히 이해하려면 비장애인이 하지 않아도 되는 노력을 별도로 기울여야 했다. KBS가 수어 방송을 너무 작게 제시, 그것도 오른쪽 구석에 둬, 눈을 가늘게 떠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미간이 찌푸릴 정도로 한참을 응시해야 수어 방송 내용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시력이 좋지 않은 청각 장애인은 수어 방송을 보기 힘들었고, 그래서 시각과 청각 장애를 동시에 가진 복합 장애인이 볼 때 부적절했다.


상식이다. 같은 사물, 똑같은 동작이라도 거리와 크기, 모양과 위치에 따라 조금씩 달라 보이게 마련이다. 수어는 특히 더 그렇다. 비장애인의 대화에서 사소하게 보이는 행동이 청각 장애인에게 큰 영향을 줄 때가 있다. 손가락의 움직임, 눈썹과 입술의 미묘한 이동, 어깨의 들썩임 등 미세한 몸짓이 수어로 표현될 경우 청각 장애인의 의사소통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다. 그런 점에서 KBS <코로나 19 통합뉴스룸>수어 해설을 너무 작은 크기로 제시해, 청각 장애인이 알아야 될 중요한 정보를 부정확하게 전달했다. 뉴스와 시청자인 청각 장애인의 원활한 소통을 오히려 방해했다. 고집스럽게 오른쪽 하단의 작은 동그라미 안에서만 수어 방송을 제공해, 청각 장애인이 그 내용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게 했다.


이러한 점은 동시간대 24시간 보도전문채널인 YTN <뉴스특보>와 비교할 때, 더욱 두드러졌다. 두 방송사 모두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의 코로나 19 브리핑을 생중계하고, 8호 태풍 ‘바비’와 9호 태풍 ‘마이삭’의 피해 등을 특보로 편성해 속보로 전달했다. 하지만 똑같은 뉴스이지만 YTN이 더 효율적이었다. 그 이유는 YTN 수어 방송의 크기가 KBS <코로나 19 통합뉴스룸> 보다 더 컸기 때문이었다. 큰 크기로 제공해, 수어 통역사의 동작이 더 크게 보였고, 그만큼 제공되는 정보의 양과 질에서 차이가 생겼다. 여기에 YTN은 KBS와 다르게 수어 방송에 동그라미 테두리를 두지 않아, 훨씬 더 열린 느낌도 줬다. ‘원’이라는 울타리의 유무가 청각 장애인이 알아야 될 정보의 질을 결정했다. 사소한 차이가 큰 격차를 만들었다.


24시간 보도 전문채널 YTN의 수어 방송


수어 통역사의 동작 하나하나는 그 자체가 단어고 문장이며, 동시에 ‘정보’다. 그런 점에서 KBS <코로나 19 통합뉴스룸>과 YTN <뉴스특보> 수어 방송은 ‘정보량’과 ‘정보값’에서 격차가 생겼다. 서로 다른 매체이지만, 생방송 현장의 똑같은 내용을 수어 방송으로 내보냈음에도 수어 방송의 크기와 모양의 차이는 시청자인 청각 장애인에게 전혀 다른 맥락과 의미, 정보를 선사했다. 이것은 결국 의미했다. <코로나 19 통합뉴스룸>의 수어 방송은 이 방송을 주로 누가 보는지, 그래서 시청자에게 어떤 정보를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 고민이 부족했음을 말해주는 구성이었다.



속도와 정확성 


누군가가 그랬다.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인다.”라고 했다. 내가 인식하는 만큼이 내 세상의 크기다. 비장애인으로서 수어를 익히면서 KBS <코로나 19 통합뉴스룸>의 재해재난 특보와 속보를 보며, 지금의 수어 방송이 청각 장애인의 입장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 저절로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수어 통역사의 손동작을 따라 하고, 이해가 되지 않는 장면에서 멈추기와 재생을 반복, 그러다 두 가지 단어가 떠올랐다. 바로 ‘속도’와 ‘정확성’이다.


2020년 코로나 19가 위기가 증가하고 감소하기가 반복됐다. 7월과 8월, 두 달 동안의 여름에 유례가 없는 갑작스러운 폭우와 태풍으로 인명 및 재산 피해가 속출했다. KBS <코로나 19 통합뉴스룸>은 특보를 편성, 실시간 피해상황을 ‘속보’라는 이름으로 빠르게 전달했다. 이에 따라 오른쪽 맨 아래 구석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수어 통역사도 이 속보에 속도를 맞춰 부리나케 몸을 움직였다. 빨리빨리 넘어가는 뉴스 자막과 영상, 정부 관계자와 주요 정치인의 말 속도에 맞춰 수어 통역사의 손과 몸이 이동하며, 청각 장애인에게 정보를 전달했다. 


그렇게 의문이 들었다. 지금 방송 너무 빠르지 않나? 반대로 너무 느리지 않나? KBS <코로나 19 통합뉴스룸> 수어 방송은 ‘속도’도 문제였다.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재해재난 상황, 생방송으로 속보가 쏟아지는데 수어 통역사가 이 속도를 맞추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너무 빠르게 화면이 전환될 때가 문제였는데, 이때는 자막도 빠르게 넘어가 청각 장애인이 수어 방송을 제대로 보지 못할 경우, 뉴스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긴급한 상황이라는 점을 십분 고려하더라도, 속보와 수어 방송의 속도가 어긋나는 상황은 적절하지 않았다. 분명 수어 방송이 제공되고 있지만, 청각 장애인을 배려하지 않은 정보 제공은 또 다른 위험스러운 상황을 만들고 있었다.


여기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공무원이나 정부 관계자의 말의 내용도 문제였다.  보건, 의료, 기상이라는 특정 분야의 전문용어를 어떻게 수어로 표현해야 하는지, 이 방송을 장애인이 본다고 생각했다면, 비장애인이 볼 때도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를 사용하면 안 됐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 이해하기 쉽게 전문용어를 쉽게 풀어서 설명해야 했다. 하지만 다년간의 다양한 수어 통역 경험을 한 전문가가 순발력을 발휘해 해설하기 곤란한 단어가 남발했다. 수어 방송 관련, 사전에 조율이 제대로 안 된 모습에서 청각 장애인을 고려하지 않는 비장애인의 태도가 읽혔다. 

 

청각 장애인 모두가 수어를 잘하지 않는다. 장애의 경중과 기간에 따라 수어 습득의 차이가 있고, 지역에 따라 다른 수어를 쓰기도 한다. 하지만 KBS <코로나 19 통합뉴스룸>은 이를 크게 상관하지 않은 듯했다. 비장애인처럼 청각 장애인의 연령에 따라 쓰는 어휘가 다른데, 빠르게 지나가는 뉴스 자막과 재해재난 관련 비장애인 전문가의 어려운 어휘 사용은 수어 통역사가 해석할 시간을 많이 주지 않았다. 그래서 지난 KBS <코로나 19 통합뉴스룸>의 수어 방송은 장애인의 알 권리와 시청 접근권을 저해하는 방송이었다. 



최초보다 최고’, 그리고 최선


지난 9개월간의 KBS <코로나 19 통합뉴스룸> 수어 방송의 위치와 모양, 크기와 속도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정확도에서 큰 아쉬움을 남겼다. 현재 일본의 공영방송인 NHK와 미국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을 전달하는 외국 매체의 수어 방송과 대조해 볼 때 미흡했다. 오른쪽 아래 구석에 수어 방송을 두지 않고, 오히려 TV 화면을 반으로 나눠, 반쪽 면 전체를 수어 방송으로 내보내는 외신과 비교해 볼 때, <코로나 19 통합뉴스룸>의 수어 방송은 공영방송으로서, 재난 주관 방송으로서 충분하지 않았다.


물론 반문할 수 있다. 지금의 수어 방송이 그렇게 문제가 크냐고 되레 물을 수 있다. 수어 방송의 위치를 조정하고, 크기를 확대하면 비장애인의 시청을 오히려 불편하게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맞다. 지금까지 KBS <코로나 19 통합뉴스룸>이 해온 우리의 수어 방송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만족할 수 없다. 지금까지 지난 <코로나 19 통합뉴스룸>의 수어 방송이 장애인이 아니라 비장애인의 입장과 시선에서 만들어진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청각 장애인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려고 했다면, 그들의 언어와 문화, 분위기와 뉘앙스에 맞게 전했어야 했다. 관행이라는 이름에 숨어 오른쪽 구석 동그라미 안에 가둬 두지 않아야 했다. 


일본의 공영방송인 NHK와 미국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을 전달하는 외국 매체의 수어 방송


“9월 3일 저녁 9시부터 수어 방송을 하겠다.” 


이러한 상황에서 KBS는 지난 8월 10일 밝혔다. “지상파 최초”라고 강조하며, 9월 3일 저녁 종합 뉴스 <뉴스9>에 수어 통역을 제공하겠다고 했다. 코로나 19와 다양한 천재지변에 청각 장애인의 입장을 배려하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가 있은 지, 약 3개월이 지난 뒤 밝힌 입장이었다. 방송에서 9시가 갖는 상징성, 그것도 공영방송인 KBS에서 과거와 다르게 재해재난의 유무와 상관없이 수어 통역을 하겠다고 의지를 드러냈다. 여기에 KBS는 앞으로 재난방송에서 정확성과 신속성을 강조하며, 특히 재난 취약계층을 배려, KBS 사장이 이를 직접 챙기겠다고 선언했다.


고무적인 일이다. KBS의 이러한 모습은「방송통신발전 기본법」제40조(재난방송 등) “재난지역 거주자와 이재민 등에게 대피구조복구 등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방송심의규정」제24조의 2(재난 등에 대한 정확한 정보제공) “발생을 예방하거나 그 피해를 줄이기 위하여 정확한 정보제공”을 하라는 방송의 책무에 부합하는 태도다. 공영방송 KBS의 지금 자세는 장애인과 장애인 가족을 둔 시청자가 환영할 만한 조치다.


그런데 동시에 우려스럽다. 과거에도 청각 장애인과 시민단체의 요구에 개선된 수어 방송을 약속해 놓고 유야무야 된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2019년 7월 4일 방송통신위원회는 청각 장애인의 방송접근권을 확보하기 위해 ‘스마트 수어 방송’을 실시한다고 했다. 이는 사용자가 수어 화면의 위치와 크기를 조절하고, 수어 방송이 크게 제시될 경우 비장애인의 시청을 저해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절충안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스마트 수어 방송이 실시된 지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그 성과는 현재 잘 알려지지 않았다. 청각 장애인의 반응을 토대로 무엇을 개선하고 고민해야 하는지 대중에 공유되지 않았다. 스마트 수어 방송을 특정 시간대 예능과 드라마에 우선적으로 시행하고, 그 범위를 앞으로 확대하겠다는 취지가 지금 어떻게 됐는지 전해진 바가 거의 없다. 그래서 기존의 비효율적인 수어 방송 관련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내놓은 방송통신위원회와 방송사의 태도를 볼 때, KBS의 이번 조치가 단순 구호에 그칠까 봐 걱정이 앞선다.

  

한국은 두 개의 언어를 가진 국가다. 2016년 2월 6일에 제정된 한국수화법으로, 한국 수어는 한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갖게 됐다. 이 법은 “청각 장애인은 모든 생활 영역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하며, 한국수어를 통하여 삶을 영위하고 필요한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가 있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코로나 19와 이상 기후 현상이 돌발적으로 발생하는 현재 상황에서 앞으로 KBS와 <코로나 19 통합뉴스룸>은 거듭나야 한다. 현재 한국에 청각 장애인이 약 35만 명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앞으로 KBS는 청력을 상실한 정도와 나이, 기간에 따라 이해 수준이 다르다는 점을 고려, 수어 방송을 제작해야 할 것이다.


청각 장애인도 우리 공동체의 엄연한 일원이다. 뉴스 시청자이며, 수신료를 납부하는 시민이다. 앞으로 재난방송 주관 방송사인 KBS는 뉴스 수용자인 청각 장애인의 입장에서 수어 통역사의 위치와 모양, 크기와 속도의 조절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하면 곤란하다. 더 많은 고민이 요구된다. 기존 비장애인 중심의 수어 방송에서 제작과정에서 벗어나 장애인을 직접 참여시키고, 그 비중을 점차 높여 청각 장애인에게 더 정확하게 보도하면 어떨까. 지난 1년간 스마트 수어 방송에 참여한 KBS의 성과를 외부에 공개, 다른 방송보다 한 발 앞서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개선점을 제시하면 어떨까. 앞으로 KBS는 수어 방송 ‘최초’라는 타이틀을 넘어 ‘최고의 질’로, ‘최선’을 다해 수신료의 가치를 스스로 구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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