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영혼의 자유인 조르바(인간의 자유의지와 진정한 삶)

by 책 커피 그리고 삶


2016년 1월 어느 날...


올해 겨울.. 눈도 아닌 비도 아닌 차가운 비가 내리는 어느 날, 카페에서 지인을 기다리며,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카페 안은 두꺼운 점퍼 안쪽에 가벼운 옷으로도 따뜻함과 포근함을 느낄 수 있었고, 뜨거운 커피가 추운 겨울이라는 것을 잠깐 잊게 만들었습니다.


"샘은 삶이 행복하나요?"


삶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지인의 물음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습니다."


"10년 동안 명예에 대한 욕심으로 인해 제 스스로 저를 너무 많이 괴롭혔습니다. 하나의 프로젝트가 끝날 때마다 기분 좋은 성취감을 느꼈고 만족했습니다. 그런데, 잠시뿐이더군요. 성취감과 만족감은 잠시이고 며칠이 지나면, 알 수 없는 외로움과 허전함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런 기분을 잊기 위해 끊임없이 다른 일을 찾았고, 이에 만족하고 또한 허전함이 반복되는 삶이었습니다. 바보같이 성취감과 만족감을 '행복'이라고 착각했던 거지요."


"그래서 이전에 가치 있게 느끼고 열심히 했던 일들을 과감하게 끊어내는 중입니다."


"그런데.. 중독성이 있더군요. 제가 몸을 담았던 연구회에 대한 미련도 버리고 강의 요청도 거절했지만, "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동안 힘들었던 것은 다른 사람들이 연구회 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거나 강의 요청이 생길 때마다, 마음속으로 '미련'이란 것이 올라오는데, 그것이 저를 괴롭히는 것입니다."



조르바의 삶의 태도와 자유의지를 추구하는 나의 삶에 대해....


조르바의 삶은 열정과 자유의지를 통한 '영혼의 자유'를 추구하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르바는 자신의 자유의지를 가로막는 모든 것-종교, 사상, 철학, 재산, 심지어 조국-을 과감히 버립니다. 이를 통해, 그는 진정 자유로운 영혼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조르바의 삶에 대한 태도를 부러워하면서, 저를 돌아보면, 가끔씩 올라오는 미련, 명예에 대한 욕심으로 인해 어느 날 갑자기 외롭고 공허하게 만들며,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저를 덮쳐버립니다. 그 이유는 '나를 행복하게 만들지 않는 욕망'을 거짓으로 감싸고, 또 감싸 평소에는 더 이상 '거짓'이라는 표면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느껴지지 않게 만들지만, 너무나 약해 약간의 외부적 자극에도 쉽게 찢어지기 때문입니다.


'영혼의 완전한 자유'라는 강철처럼 강한 덮개가 아니라면, 나의 욕망은 뾰족한 송곳이 되어 둘러싸고 있는 '거짓'을 뚫고 나와 마치 '나(욕망)는 네가 버릴 수 없는 존재이다. 나를 숨겨두기에는 너는 너무 약해!'라고 자신의 건재함을 끊임없이 나타냅니다.


저의 이러한 모습은 책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나'와 비슷합니다. 책 속의 '나'는 항상 영혼의 외로움과 목마름을 느끼는 인물입니다. 그는 조르바의 삶을 부러워하고 종교와 사유를 통한 영혼의 자유를 추구하지만, 완전하게 조르바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단 한순간, 그는 항구 사업의 실패로 자신의 물질적인 모든 것을 잃었을 때, 영혼의 해방감과 자유를 만끽합니다.


그 순간 그(책 속의 '나')는 단지, 물질적인 것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동안 자신이 쌓았던 지식, 사상, 종교 등 인간 본성을 다듬고 제어하는 그의 모든 것입니다.


저 역시, 지인과의 대화에서 저의 문제점에 대한 해결 방법을 대략적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완전한 자유를 위해서는 그동안 노력했던 것들에 대한 모든 미련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욕망, 삶의 기준, 국가, 종교 심지어 인간과 가족에 대한 사랑까지..


이러한 것들을 버려야 다시 이러한 것들을 의미 있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의심 없는, 당연하게 느끼는 것은 인간의 본연의 마음이 아니라 교육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통해 어느 순간부터 족쇄가 되어 그렇게 생각하도록, 느끼도록 나의 뇌가 세뇌되어 있는 것일지 모릅니다.


"비우고 버려서 진정으로 소중한 이유를 알게 된다." 저는 이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책을 읽는 동안 계속 불편했던 이유는 조르바의 삶의 태도에서 현실과 적절한 타협점을 찾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는 여성에 대해 '비하'하는 말을 자주 하고 난잡한 성생활을 하였으며, 사람들의 마음속 욕망을 자극하여 파멸적인 행동을 이끌어냅니다.


이러한 조르바의 말과 행동은 종교적, 사회적 규범에 대해 철저하게 무시하는 동시에 오직 자신이 깨달은 본인만의 삶의 태도에 충실한 것에 기인한 것입니다. 조르바는 자신의 주체적인 삶을 방해하는 모든 것에 대해 "그깟 것들(사상, 철학, 종교 등) 악마에게 줘버리라지"라고 말합니다.


또한 자유의지를 통한 진정한 영혼의 자유를 추구하는 조르바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르바의 삶과 비슷한 삶의 경험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너무나 위험하고 일반적인 사람들의 시선으로 결코 인정받기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조르바의 삶은 한마디로 치열하고 광폭한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독립전쟁에 참여하여 살인을 하고, 여자를 겁탈했으며, 강도짓을 하는 등, 현대 사회에서 결코 인정받을 수 없는 그런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물론, 조르바가 살았던 시대는 크레타 섬이 터키의 지배를 받고 탄압받았으며,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는 점에서 정상적인 삶을 산다는 거 자체가 정상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조르바의 이런 삶이 그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하고 영혼의 자유를 가지게 된 계기가 된 것입니다.


조르바의 삶의 태도는 '경험'을 통해 형성되었기 때문에 저나 책 속의 '나'가 결코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즉, 책 속의 '나'는 사상과 철학, 종교를 탐구하고 연구함으로써 삶의 태도에 대한 기준을 형성한 반면, '조르바'는 치열한 삶의 경험과 신이 부여한 '자유의지'를 마음껏 활용하였으며, 자신의 삶이 진정한 삶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진정한 삶이란 무엇일까요? 가끔 저는 '신이 인간을 창조했을 때,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한 이유는 무엇일까? 만약 인간들이 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를 원했다면, 자유의지를 부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저는 진정한 삶이란 자유의지를 가진 주체적인 삶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조르바의 자유의지와 비슷한 부분이 있지만, 기존의 가치를 버림으로써 원래의 의미를 음미하고 다시 생각한다는 점에서 약간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알렉시스 조르바에 대해 이렇게 정리하고 싶습니다.


그는 도자기를 만들다가 자신의 걸리적거리는 검지 손가락이 과감하게 잘라버렸습니다. '자신의 신념을 표현하기 위해 새끼손가락을 잘라 혈서를 썼다는 이야기'와 '고대 아마존 여전사가 활을 쏘는데, 오른쪽 가슴이 방해가 되어 잘라내었다는 이야기' 등은 들어봤지만, 조르바가 검지 손가락을 자른 것은 신념이나 목적을 위해 신체를 절단한 이야기와는 다른 것입니다.


조르바는 자신의 신체 일부를 절단한 것은 그가 열정을 추구하고 자유의지를 통한 진정한 삶을 얻기 위한 것으로 조르바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열정과 욕심에 대한 구분


책을 읽는 동안, 마음속에서 '열정'이 꿈틀거리는 것을 느낍니다. 동시에 가끔.. '열정'과 '욕심'이 구분되지 않고 '욕심'이 '열정'이라고 착각하는 것이 아닌지 저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저에게 있어 문학작품이기보다는 인문학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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