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눈을 한 번 감았다가 십 분쯤 흘렀을 때였나? 눈을 떴는데, 눈이 안 감기는 것이다. 눈이 감기지 않는다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거울을 봤고 불을 끄고 누워봤고 벽에 얼굴을 찧어도 봤고 나를 눈 감게 하는 기적의 창세기를 음독해 봤지만 눈이 감기지 않았다.
다음날, 세안을 물티슈로 한 후 옷을 차려입고 부리나케 약국으로 달려가 수면 안대를 샀다. 다크서클이 진한 나를 보고 약사는 왜 그러냐고 물었다. 나는 별일 아니라고 에둘러 말했다. 수면안대의 착용은 어떤 도움도 주지 못했다.
시내에 있는 안과에 찾아갔다.
"눈이 감기지 않습니다."
안약 두 방울을 떨어뜨려 주었다. 눈을 깜빡이지 못하니 괴로웠다. 정신과를 가보라는 판단을 받았다. 스트레스가 많아서 생기는 기분 탓이란다. 간호사는 웃기까지 했다. 졸지에 정신병 환자가 된 나는 정신과를 찾아가기 전에 부모님께 말해야겠다고 생각해 전화를 걸었다.
다 컸지만 나는 무척 게으르다. 가끔 어머니가 내 방을 청소해 주시는데 오늘이 그날이었나 보다. 펼쳐진 일기장에 큼지막한 유서 같은 글이 엄마의 가슴을 찔렀던 게 분명하다. 전화상으로 안 좋은 생각하지 말라며 대뜸 친척분이 일하는 곳에라도 취업하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나는 그것보다 지금 정신과에 가려한다고 했다. 실은 허락보다 돈이 필요했다. 정신과는 얼마가 들지 몰랐다.
어머니는 일단 집에 나를 오라고 했고, 날 태우고서 점집에 데려갔다. 그 점쟁이는 가끔 부모님의 사업 상담을 무료로 해주시는 등 꽤나 친분이 두터웠다. 내가 어렸을 적 샛방에 아주머니 한 분이 살았는데, 그분의 친언니라고 했다.
자신이 신내림굿을 할 때 작두를 탔다는 인증샷도 걸려있었다. 내가 두 눈을 벌겋게 뜨고 그 사진을 바라보고 있으니 심각하게 말하기를 내게 신병이 의심된다고 했다. 신병 초기 증상이 아니라면 아홉수에 삼재도 있으니 이름 모를 애기귀신이 장난을 치는 거라고 했다. 엄마는 지갑에 있던 현금을 다 털어서 향이 피워져 있는 상 위에 고이 내려놓으셨다.
얼마 후 점쟁이 아주머니는 작두를 타던 사진 속 맨발의 위엄처럼 눈빛이 돌변하더니 돌연 쌀과 소금을 뿌리며 방울을 세차게 흔들고 고개를 흔들어댔다. 도금이 된 뭉툭한 두 개의 검을 챙챙거리며 나에 대고 주술 같은 걸 외우기도 했다. 난 그 광경을 눈뜨고 바라봐야 했다. 고개를 돌리면 어머니는 한 번 참아보라고 했다. 약 한 시간 정도의 체감 시간이 흘렀을까. 점쟁이 아주머니는 지쳐 보였다.
내 증상은 더 심해졌다. 어머니는 사태의 심각성을 느꼈다. 점쟁이 아주머니는 방울과 부채만 급히 챙겨서는 어머니 차에 함께 타고 내 방까지 동행했다. 집 안에서 창문을 열고 일기장을 불태웠다. 시끄러운 방울소리와 주술을 외우는 소리가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새해 결심한 일기쓰기가 새까만 재로 날려가고 있었다. 점쟁이 아주머니는 부채로 훠이훠이 더 멀리 재를 날려버렸다. 그다음부터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눈이 감긴 것이다.
암만 애를 써봐도 눈이 떠지질 않았다. 젠장, 소원대로 내가 죽은 건가? 아니다. 어머니와 점쟁이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살아있는데 눈만 떠지지 않는 것이다.
'따르르르르르르르릉 따르르르르르르르릉'
알람 소리에 눈이 번쩍 뜨였다. 꿈을 꾸었다는 걸 한참 뒤에 알았다. 아직 펼쳐져 있는 일기장에 나는 이렇게 썼다.
'현실은 아직 기회야. 포기하지 말자.'
나는 미소를 지으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______________________ <이동영 140216 소설 눈을 감다'>